[장순향 칼럼] 명진 스님을 추모하며

  • 등록 2026.08.24 08:58: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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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진제공 ⓒ채원희

 

명진 스님을 추모하며


여성시국회의 공동대표 · 민중춤꾼

장순향

 

웃음과 용기로 시대의 곁을 지킨 수행자
엄숙한 수행자의 모습만으로는 다 담아낼 수 없는 분이셨다. 아이처럼 해맑게 웃으시고, 때로는 누구보다 익살스럽게 사람들을 웃기시던 명진 스님. 오랜 수행과 사회적 실천의 길을 걸어오신 스님은 푸른 바다에서의 불의의 사고로 우리 곁을 떠나셨다.


지인들에 따르면 스님은 최근 제주 남선사에 머물며 내년 독도 출정과 통일 다크투어를 준비하고, 바닷가에서 해양훈련을 하던 중 사고를 당하셨다고 한다. 정확한 사실관계와 사고 경위는 공식 확인을 통해 분명히 밝혀져야 할 것이다. 다만 마지막까지 분단의 바다를 건너 평화와 통일을 향한 길을 준비하고 계셨다는 이야기는 스님의 삶을 다시금 생각하게 한다.


동안거와 하안거의 묵언수행 속에서 오랜 시간 가부좌를 틀고 정진하신 탓에 스님의 무릎은 오래도록 편치 않으셨다. 스님은 수영으로 몸을 돌보셨고, 최근에 프리다이빙을 하며 자신의 수행을 새롭게 돌아보셨다.


스님은 평소 “힘을 빼고 삽시다”라고 말씀하셨지만, 정작 자신은 아직 힘이 완전히 빠지지 않았다는 사실을 프리다이빙을 통해 알게 되었다고 솔직하게 말씀하셨다. 물속 깊이 내려가면 흙탕물에 앞도 뒤도 보이지 않아 두려움이 일어난다고 하셨다. 그러나 수행자가 그 두려움을 마주하고 넘어설 때 비로소 마음의 자유를 느끼며 겸허해질 수 있다고 하셨다.


수심 40m 이상을 내려가는 프리다이빙 전문 강사들을 보며, 스님은 그들이 욕망도 생각도 내려놓은 ‘무심도인’ 같다고 말씀하셨다. 물속에서 힘을 빼야 더 깊이 내려갈 수 있듯이, 삶에서도 마음의 힘을 내려놓아야 비로소 자신과 세상을 온전히 만날 수 있다는 뜻처럼 들렸다. 그래서인지 푸른 바다에서 홀연히 떠나셨다는 소식 앞에 “참 명진 스님다운 마지막”이라는 말도 들린다.


필자는 스님께서 봉은사 주지로 계실 때, 내한한 금강산가극단 단원들과 함께 스님을 찾아뵌 적이 있다. 이후 집회 현장에서 만날 때마다 스님은 필자에게 “시대의 춤꾼”이라며 따뜻한 격려를 건네셨다. 그 한마디는 예술이 시대와 사람들의 삶을 외면해서는 안 된다는 스님의 믿음을 전하는 말처럼 오래 남아 있다.


지난해 백기완노나메기재단이 주최한 군산 하제마을 팽나무 지키기 문화제에서도 스님의 모습은 선명하다. 오래된 팽나무를 빙 둘러싼 사람들은 필자가 이끄는 대로 손에 손을 잡고 빙글빙글 돌며 춤을 추었다. 스님은 어린이들과 손을 잡고 손을 흔들며 누구보다 즐거워하셨다. 생명을 지키고 공동체를 지키려는 그 자리에서 스님은 수행자의 위엄보다 한 사람의 이웃으로, 더없이 다정한 어른으로 함께 계셨다.

 

사진제공 ⓒ채원희

 

행사가 끝난 뒤, 무릎이 편찮으셨던 스님과 마찬가지로 무릎 통증을 안고 있던 필자는 일행과 떨어져 잠시 둘만 남게 되었다. 스님은 무릎의 고통을 줄이는 방법을 유쾌하게 설명하셨고, 우린 한참을 웃었다. 고통마저 스님 특유의 유머와 따뜻함으로 감싸 주시던 그 기억은 지금도 생생하다.

 

사진제공 ⓒ채원희

 

스님에게 수행은 고통을 외면하거나 세상과 담을 쌓는 일이 아니었을 것이다. 고통과 함께 살아가는 법을 배우고, 고통받는 이들의 곁으로 내려가 함께 아파하고 함께 웃는 일이었을 것이다. 스님의 웃음은 가벼움이 아니라 삶의 무게를 감당해 내는 힘이었다. 스님의 자유는 침묵과 고립이 아니라 부당함 앞에서 물러서지 않는 용기였다.


명진 스님은 ‘승려’라는 이름 안에 자신을 가두지 않으셨다.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 이웃의 아픔 곁에 서고, 시대의 부조리에 맞서며, 불교가 세상 속에서 무엇을 해야 하는지를 몸으로 보여 주셨다.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과 함께 살아가고, 더 나은 세상을 향해 나아가는 실천이었다.


2017년 무렵 종단 개혁을 외치던 스님에게 조계종은 ‘외부세력″을 운운했다. 그러나 스님을 떠나보내는 길은 이미 종단의 경계를 넘어섰다. 봉은사에서 종교·시민사회장으로 열리는 영결식에는 수많은 시민이 함께할 것이다. 그들은 외부인이 아니다. 스님이 평생 품고 지켜 온 이웃이며 벗이고, 스님의 뜻을 기억하고 이어갈 사람들이다.


조계종 또한 이제는 되새겨야 한다. 불교를 지키는 일은 문을 닫고 경계를 세우는 데 있지 않다. 세상의 아픔을 향해 문을 열고, 고통받는 이들과 함께하는 데 있다. 수행자의 권위는 직함이 아니라 가장 낮은 곳에서 사람들과 함께한 시간에서 비롯된다.


“명진 스님, 푸른 바다 위에서 홀연히 떠나가신 스님.

무릎의 고통은 조금 나아지셨습니까.
이제는 가부좌를 풀고, 아픈 무릎도 내려놓으시고, 아무 걱정 없이 마음껏 웃으시기를 빕니다.”

 

스님께서 남기신 웃음과 용기, 사람을 향한 자비와 실천은 우리의 삶과 이 시대의 양심 속에 오래 남을 것이다.

 

 

봉은사에 마련된 추모분향소에서 스님의 발에 이마를 대고 마지막 예를 올리는 접족례를 마치고 나오니, 참아왔던 눈물이 쏟아졌다. 그러나 스님이 가시는 길이 울음만의 길은 아니기를 바란다.

 

시민들의 합창과 스님들의 노래가 어우러지는 길이기를 바란다. 슬픔 속에서도 서로의 손을 잡고, 스님이 사랑하셨던 사람들과 세상을 향해 함께 노래하는 배웅길이기를 바란다.

 

 

 

송혜근 기자 mulsori7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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