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낡은 골목의 시간, 인간의 흔적을 그리다… 김정아 개인전 《푸른 골목의 안쪽》
낡은 골목의 벽, 비에 젖은 횡단보도, 아무도 기억하지 않는 도시의 모서리. 화가 김정아는 오랫동안 그 풍경들을 응시해왔다. 화려한 중심이 아닌, 밀려난 주변부의 시간을 화면 위에 붙들어온 그의 시선이 개인전 《푸른 골목의 안쪽》으로 관객과 만난다. 전시는 오는 5월 20일부터 6월 7일까지 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토포하우스에서 열린다.
이번 전시는 1990년대부터 이어져온 김정아의 작업 세계를 집약적으로 보여준다. 작가는 오래 쓰일 것을 전제하지 않은 채 급하게 세워진 건물들, 재개발의 그림자 속으로 사라져가는 풍경들, 그리고 시대의 속도를 따라가지 못해 뒤편으로 밀려난 존재들을 지속적으로 화폭에 담아왔다.
특히 화면 속에는 낡고 빛바랜 도시의 흔적들이 반복적으로 등장한다. 투박하게 덧대어진 벽면, 오래된 간판, 비에 젖은 골목의 반사된 불빛은 단순한 풍경의 재현을 넘어, 도시 속에서 익명화된 인간의 초상처럼 읽힌다. 작가는 이러한 풍경들을 통해 “곁에 있으나 아무도 눈길을 멈추지 않는 것들”을 다시 바라보게 만든다.
작업의 시선은 거제에서 보낸 25년의 시간 속에서 더욱 깊어졌다. 홀로 작업에 몰두하며 체감한 고독은 자연스럽게 소외된 사물과 존재에 대한 감각으로 이어졌다. 바다 위를 떠다니는 쓰레기를 수집하고 분류해온 해양 환경 프로젝트 또한 이러한 문제의식의 연장선이다. 반짝이는 새것보다 낡은 골목의 벽과 빛바랜 플라스틱 조각에 마음이 머무는 이유에 대해 작가는 “뒤처진 존재들의 모습이 결국 오늘을 살아가는 인간의 얼굴과 닮아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김정아의 회화는 현실을 닮았으나 어딘가 낯선 감각을 남긴다. 이는 작가가 오랫동안 탐구해온 평면성과 입체감의 충돌에서 비롯된다. 재현을 통한 3차원의 환영 위에 평면적 요소가 공존하면서, 화면은 익숙하면서도 이질적인 긴장감을 만들어낸다. 안과 밖, 과거와 현재, 현실과 환영이 한 화면 안에서 충돌하고 화해하며 묘한 정서를 형성하는 것이다.
팬데믹 시기 작업한 ‘밤의 숲’ 연작 역시 이번 전시의 중요한 흐름이다. 작가는 깊이를 알 수 없는 어둠의 숲을 반복적으로 그리고 덮는 과정을 수행처럼 이어갔다. 쉽게 위로하지 않지만 묵묵히 곁을 지켜주는 존재로서의 숲은, 결국 시간의 흔적을 견뎌낸 인간 존재와 맞닿아 있다. 작가는 이 공간이 단순한 장소성을 넘어 ‘시간의 공간’으로 확장되기를 바란다고 전한다.
최근 작업에 등장하는 ‘요정’과 ‘접시’의 이미지 또한 눈길을 끈다. 이는 자본 중심의 사회 속에서 가격으로 환산될 수 없는 시간과 노동, 그리고 연민의 감각을 상징한다. 버려진 쓰레기에 자신의 시간을 들이는 행위는 자본의 논리를 향한 조용한 저항이자, 인간성 회복을 위한 예술적 실천이라는 설명이다.
결국 김정아의 작업은 ‘버려진 것들 속에서 인간성을 기억하는 일’에 가깝다. 사람이 가장 많지만 정작 인간의 온기를 발견하기 어려운 도시 속에서, 작가는 익명성과 속도에 마모된 존재들의 흔적을 다시 연결한다. 30여 년 전 알루미늄 판 위에 도시의 그림자를 새기던 작업은 이제 소외된 존재들을 위로하고 함께 살아갈 자리를 모색하는 제의적 예술로 확장되고 있다.
한편 전시 오프닝 리셉션은 5월 20일 오후 5시에 진행된다. 전시는 서울 종로구 인사동11길 6 토포하우스에서 오전 10시부터 오후 7시까지 관람할 수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