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춤은 사라지지 않았다”… 故 이애주 명무 5주기, 디지털 아카이브로 다시 살아난 시대의 몸짓
故 이애주 명무의 삶과 예술세계를 집대성한 ‘이애주 춤 아카이브’가 공개되며, 한국 전통춤과 민주주의 예술운동의 기록을 미래 세대에 전하는 새로운 플랫폼으로 주목받고 있다.
이애주문화재단은 최근 학술행사를 열고 ‘이애주 춤 아카이브’ 디지털 플랫폼 구축 과정을 소개하며, 춤과 기록, 예술과 시대정신의 의미를 되짚었다. 이날 행사에는 무용학자와 기록학자, 연구자, 예술인들이 참석해 아카이브의 가치와 향후 과제를 함께 논의했다.
행사에서는 특히 1987년 6월 민주항쟁 당시 서울시청 광장에서 펼쳐졌던 이애주 명무의 춤이 다시 언급되며 깊은 울림을 남겼다. 발제자인 설문원 부산대 명예교수는 “이한열 열사가 최루탄에 맞아 숨진 뒤 서울광장 50만 시민 앞에서 추었던 그 춤은 평생 잊을 수 없는 장면”이라며 “이애주 선생은 춤을 통해 시대와 함께 호흡한 예술가였다”며 “이애주 선생의 춤은 공연예술을 넘어 민주주의 아카이브로서의 가치까지 가진다”며 “예술과 사회, 역사적 현장성이 결합된 매우 입체적인 기록 유산”이라고 평가했다.
이번에 공개된 디지털 아카이브는 단순 자료 저장을 넘어, 이애주 명무의 예술세계를 입체적으로 탐색할 수 있도록 구성됐다. 메인 페이지에서는 선생의 삶과 춤 세계를 네 가지 이야기로 나누어 소개하며, 승무·살풀이춤·태평춤·생명춤 등 다양한 작품 세계를 사진과 영상, 팜플렛, 음원, 메모, 연구자료 등과 함께 열람할 수 있다.
특히 이애주 명무가 남긴 안무 노트와 메모, 공연 자료들은 예술가의 창작 과정까지 생생하게 보여준다. 김연정 이애주문화재단 이애주춤연구소 소장은 “선생이 남긴 자료뿐 아니라 주변 예술가들과 연구자들이 기증한 자료도 함께 정리하고 있다”며 “앞으로도 지속적으로 자료를 수집하고 업데이트해 살아있는 아카이브로 발전시켜 나갈 계획”이라고 밝혔다.

김연정 이애주문화재단 이애주춤연구소 소장
발제자로 나선 이연실 이애주문화재단 자료실장은 “아카이브는 단순히 자료를 모아놓는 공간이 아니라 기억과 맥락을 연결하는 플랫폼”이라며 “이애주 춤 아카이브는 개인 아카이브이자 공연예술 아카이브이며 동시에 민주주의 아카이브”라고 설명했다. 이어 “한 예술가가 시대적 소명에 어떻게 응답했는지를 보여주는 매우 중요한 역사적 증거”라고 강조했다.
독일에서 한국 무용사를 연구해 온 정성윤 연구자는 해외 사례를 통해 “이애주 선생의 춤은 단순한 민속춤이 아니라 사회참여적 예술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며 “민주화 운동 현장에서 수행된 춤이라는 점에서 독일 학계에서도 큰 관심을 보였다”고 소개했다. 그는 “춤 역시 문화적 번역이 필요하며, 디지털 아카이브는 이러한 번역과 소통의 중요한 기반이 된다”고 설명했다.

특히 독일 베를린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펼쳐진 장순향 명무의 공연 사례를 언급하며, “이애주의 춤 이후 한국에서 꾸준히 이어져 온 의례적 형식의 춤이 독일이라는 공간 안에서 다시 수행되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고 분석했다. 이어 “장순향의 공연은 신체적 수행이 기념 공간과 결합하면서 새로운 기억의 아카이브를 생성한 사례였고, 이는 베를린 한인 교민 공동체에 일정한 위로와 연대감을 제공했다”고 평가했다. 동시에 그는 “이러한 공연은 단순한 재현에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이애주의 춤이 오늘날의 관객들, 더 나아가 독일을 비롯한 해외 관객들에게 어떤 의미로 읽힐 수 있는지를 능동적으로 해석하고 새롭게 제시해야 하는 과제 또한 함께 안고 있다”고 덧붙였다.
아카이브 구축을 맡은 안대진 아카이브랩 대표는 “가평 작업실을 처음 방문했을 때 집 전체가 하나의 박물관이었다”며 “춤 의상과 장신구, 비디오테이프, 메모, 공연자료 등 방대한 자료가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고, 이를 체계화하는 작업이 쉽지 않았다”고 전했다. 이어 “현재 공개된 자료는 전체의 일부에 불과하며 앞으로도 계속 확장될 예정”이라고 밝혔다.
이날 학술토론회에 참석한 김승국 전통문화컨텐츠연구원장은 아프리카 말리의 역사학자 아마두 함파테 바의 “한 사람이 죽는 것은 박물관 하나가 불타는 것과 같다”는 말을 인용하며 “고 이애주 명무의 삶과 예술 역시 하나의 거대한 박물관과 같았다”고 말했다. 이어 “이애주 선생은 생전에 기록의 중요성을 깊이 인식해 방대한 자료를 남겼고, 이를 체계적으로 정리해 둔 덕분에 제자들과 연구자들이 디지털 아카이브를 구축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또한 “민간 차원에서 이러한 공익적 아카이브를 지속적으로 운영하기 위해서는 재원과 전문 인력이 꾸준히 필요하다”며 “이번 구축이 한국 전통춤의 기록을 미래로 이어가는 살아있는 플랫폼으로 성장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토론에서는 향후 과제로 ▲국립예술자료원 및 아르코예술기록원과의 연계 ▲다국어 서비스 구축 ▲저작권 체계 정비 ▲이용자 참여형 플랫폼 확대 등이 제안됐다. 참석자들은 “이애주 춤 아카이브가 단순한 추모 공간이 아니라 후대 예술가들에게 영감과 창작의 원천이 되는 살아있는 플랫폼이 되어야 한다”고 입을 모았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