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공연리뷰] 명인이 깨운 한판의 신명… 전통농악,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다

'판을 깨우다' 이틀간의 대장정 마무리
장구춤·버꾸춤·부포춤·진도북춤·설장구·채상북놀음·웃다리북상놀음까지 명인들의 예술혼 빛나

 

명인이 깨운 한판의 신명… 전통농악, 무대 위에서 살아 숨 쉬다

 

전통농악의 최고 명인들이 한자리에 모여 우리 가락의 깊이와 신명을 선보인 '2026 명인전 판을 깨우다'가 관객들의 뜨거운 박수 속에 이틀간의 일정을 성황리에 마무리했다.

 

행사 마지막 날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은 오전까지 이어진 폭우가 무색할 만큼 뜨거운 열기로 공연장을 채웠다. 사회를 맡은 임웅수 명인은 "전국 최고의 명인들이 함께해 하늘도 비를 멈춘 것 같다"며 공연의 시작을 알렸고, 객석에서는 큰 박수와 환호가 이어졌다.

 

사회/임웅수 광명농악보유자

 

첫 무대는 장구춤 명인 박은하 선생이 장식했다. 박은하 명인은 다섯 살부터 농악에 입문해 송순갑 선생에게 쇠가락을, 양도일 선생에게 장구를 사사했으며, 국립국악원 최초의 여성 사물놀이 단원으로 활동한 우리나라 여성 농악계의 대표적인 예인이다.

 

무대를 마친 뒤 임웅수 명인은 "세월의 흔적은 보이지 않고 다섯 살 아이가 나비처럼 날아다니며 장단을 빚어내는 듯했다"고 평하며, 공연 직전 긴장한 나머지 치마를 거꾸로 입을 정도였던 일화를 소개해 객석에 웃음을 안겼다. 그는 "명인도 무대 앞에서는 늘 긴장한다. 그런 삶이 있었기에 오늘의 명인이 된 것"이라며 예술가의 끝없는 수련을 강조했다.

 

이어 무대에 오른 서한우 명인은 전남 고흥에서 태어나 어린 시절 마을 농악과 벅구를 자연스럽게 익히며 성장했다. 이후 고등학교 농악대를 창단하고 대학에서 무용을 전공했으며, 민속촌과 88서울예술단, 정동극장을 거쳐 현재 천안흥타령시립예술단 감독으로 활동하고 있다.

 

서한우 명인

 

장구춤의 명인으로도 널리 알려진 서한우 명인은 이날 버꾸춤을 선보이며 특유의 역동성과 화려한 기량으로 관객들의 탄성을 이끌어냈다.

 

서한우 명인의 버꾸춤은 전통의 생명력을 오롯이 보여준 무대였다. 오랜 세월 예인들의 손끝과 몸짓으로 이어져 온 농악의 가락은 그의 춤을 통해 오늘의 무대에서 다시 살아났다. 절제된 춤사위와 힘찬 장단 속에는 공동체의 역사와 신명이 녹아 있었으며, 명인의 예술혼은 전통이 과거의 유산이 아니라 오늘도 관객과 함께 호흡하는 살아있는 문화임을 새삼 일깨웠다.

 

후반부에는 경기·충청 북가락의 대표 명인 김복만 선생이 무대에 올랐다. 김복만 명인은 초등학교 시절 송순갑 선생을 만나 농악에 입문한 뒤 김덕수 사물놀이 단원과 전설적인 풍물패 '뜬쇠' 활동 등을 거치며 독자적인 예술세계를 구축해왔다. 특히 함께 활동했던 고(故) 김경수 명인을 떠올리며 깊은 여운을 남겼다.

 

박은하 명인과 김복만 명인

 

공연 중 객석에 있던 김운태 명인을 즉석으로 무대에 초청하는 깜짝 순서도 마련됐다.

 

김운태 명인은 "요즘은 전통이 홀대를 받는다는 생각을 많이 했는데 오늘 와서 보니 그렇지 않았다"며 "명인들이 출연한다는 이야기를 듣고 기를 쓰고 달려왔다. 공연을 보며 다시 희망을 봤다"고 소감을 밝혔다.

 

이어 "기운은 예전 같지 않을지 몰라도 오래 묵은 예술에는 깊이가 있다"며 "이런 명인전이 앞으로도 계속 이어지길 바란다"고 말했다.

 

이에 임웅수 명인은 "옛 어르신들은 농악 소리가 들리지 않고 아이 울음소리가 없는 마을은 죽은 마을이라고 했다"며 "우리는 석유는 나지 않지만 풍부한 문화를 가진 민족이다. 함께 웃고 박수칠 수 있는 문화가 우리를 건강하게 만드는 힘"이라고 화답했다.

 

 

마지막 무대는 이번 공연의 기획과 연출, 섭외, 무대감독까지 맡으며 '1인 5역'을 소화한 이윤구 명인이 장식했다. 사회자는 "1982년 처음 만난 소년이 오늘날 예술감독이자 교육자로 성장했다"며 오랜 인연을 소개했고, 이윤구 명인의 북놀이와 생피지는 공연의 대미를 장식했다.

 

공연을 마친 뒤 이윤구 명인은 "이틀 동안 단 한 분도 빠짐없이 찾아와 주신 관객 여러분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며 "더 좋은 공연으로 다시 찾아뵐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마지막으로 무대에는 박은아, 서한우, 김복만, 이윤구 명인이 다시 올라 관객들과 인사를 나누며 축제의 막을 내렸다.

 

이번 '명인전 판을 깨우다'는 한평생 농악의 길을 걸어온 명인들의 삶과 철학, 그리고 전통예술이 오늘날에도 여전히 살아 숨 쉬고 있음을 확인하는 자리였다. 무엇보다 명인들의 몸짓과 장단은 세대를 잇는 문화유산이자 공동체를 하나로 묶는 힘이라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 준 뜻깊은 무대로 기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