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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의 문화산책] 국적 불명의 전통 창작춤, 길을 잃었다

 

[김승국의 문화산책] 국적 불명의 전통 창작춤, 길을 잃었다

 

문화칼럼니스트
김승국

 

오늘날 일부 전통춤의 창작무대는 종종 본질을 상실한 채, 현대무용의 언어를 설익게 답습하는 양상을 보여 안타까움을 자아낸다. 안무가의 난해하고 독단적인 연출은 관객과의 접점을 찾지 못하고 방향을 상실하기 일쑤다. 무용수들이 흘리는 진정성 있는 땀방울이 무색하게도, 불친절하고 해체적인 작품 구성은 객석에 깊은 소외감과 피로감만 안겨준다.

 

관객이 자신의 미적 수용 능력을 의심해가며 무대에 몰입해 보아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다. 집중하고 응시해보지만, 전통의 호흡과 한국적 춤사위의 전형(典型)을 발견하기란 결코 쉽지 않기 때문이다.

 

모름지기 전통춤 창작의 핵심은 고유의 전통적 뿌리 위에 동시대성(Contemporary) 옷을 입혀 오늘의 관객과 호흡하는 데 있다. 현대적 변용이 아무리 전위적이고 파격적이라 할지라도, 그 미학적 근간까지 흔들려서는 안 된다. 전통 의상이라는 시각적 껍데기만 남겨둔 채 알맹이는 국적 불명의 현대무용으로 채워 넣는 지금의 창작 경향은, 과연 '전통춤의 창작'이란 무엇인가에 대한 무거운 미학적 회의를 품게 만든다.

 

육체의 중심에서 피어나는 내면과 호흡의 미학

 

우리의 전통춤은 세계 무용사적 지평에서 바라보아도 독보적인 미학적 전형을 구축해 온 예술이다. 서양무용이 사지(四肢)의 가시적인 도달 거리를 넓히고 신체의 외형적 역동성을 극대화하는 '외향(外向)의 예술'이라면, 한국의 전통춤은 철저히 자아 성찰적인 '내면(內面)의 춤'이다. 우리 춤은 한복의 풍성한 실루엣으로 육체의 선을 은밀하게 감춘다. 따라서 밖으로 드러나는 외적 선형성보다, 옷자락 속에 갈무리된 춤꾼의 내적 정서와 응축된 긴장이 훨씬 중요한 미적 조형 요소로 작용한다. 타인의 동작을 기계적으로 복제하는 꼭두각시의 몸짓을 철저히 배격하고, 춤꾼 스스로 예(藝)와 도(道)를 닦아 내면의 예술성을 주체적으로 발현하는 까닭이 여기에 있다.

 

 

이 모든 움직임이 발원(發源)하는 우주의 중심은 배꼽 밑 '단전(丹田)'이다. 무용수가 무릎을 가볍게 굽히며 양손을 단전으로 모아 올릴 때, 비로소 내면의 기운(氣)이 싹튼다. 이 기의 흐름은 호흡을 매개로 온몸의 관절과 근육을 깨우며 어깨를 거쳐 손끝과 발끝으로 무한히 확장된다. 우리 춤에서 가장 보편적인 '어깨춤'이 단순한 물리적 흥을 넘어 감정을 조절하고 장단의 흐름을 정밀하게 통제하는 핵심 기제로 기능하는 이유 역시, 이 단전의 유기적인 호흡과 직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처럼 한국 전통춤은 서양무용과 비교했을 때 대단히 복잡하고 정교한 호흡의 메커니즘을 지닌다. 호흡이 흐트러지면 미적 표현 자체가 불가능해진다. 춤꾼은 강하고 짧게 내쉬거나 약하고 길게 천천히 내쉬는 호기(呼氣), 그리고 이와 대칭을 이루는 흡기(吸氣)를 자유자재로 다스린다. 나아가 숨을 멈추어 기운을 가두는 지식(止息)과 단전 호흡의 묘리를 통해 신체의 외연을 완벽하게 통제한다. 손춤의 정수인 섬세한 발림과 손가락 동작 또한 백제 불상인 금동미륵보살반가사유상의 수인(手印)을 연상시키는 깊은 호흡이 연장되어 도달한 예술적 극치다.

 

언어의 구조를 닮은 역동성, '맺고 얼렀다 푸는' 이중성의 미학

 

한국 전통춤의 구조적 역동성은 고유의 리듬감에서 기인한다. 서양의 클래식 발레는 첫 박을 부드럽고 유연하게 시작하여 끝 박에 순간적으로 강한 동작을 취하며 정지하는 '후강박(後强拍)'의 지배를 받는다. 반면, 한국 전통춤은 첫 박에 강한 에너지를 실어내는 '선강박(先强拍)'과 변칙적인 '엇박'을 바탕으로 삼는다. 이는 우리말의 발음 구조가 첫음절에 강세가 있고 끝으로 갈수록 유연하게 풀어지는 언어학적 특징과 궤를 같이한다.

 

 

옛 선조들은 이를 두고 "맺고 얼렀다 푸는 춤"이라 일컬었다. 신체의 움직임이 극도의 긴장 상태인 '맺음'과 이완 상태인 '풀어짐', 그리고 그사이를 매끄럽게 연결하는 '어름'의 주기적인 교차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이를 통해 우리 춤은 고요함 속에 역동적인 힘이 있고(정중동·靜中動), 가벼움 속에 묵직함이 있으며, 약함 속에 강함이 숨 쉬는 독특한 운동성을 확보한다. 정적인 멋과 동적인 멋이 한 동작 안에서 이분법적으로 나뉘지 않고 유기적으로 공존하는 '이중성의 미학'인 셈이다.

 

마음으로 그리는 상상의 공간, 여백과 유장(悠長)의 미학

 

우리 춤이 도달하는 가장 고차원적인 미학적 경지는 '여백의 미(餘白美)'와 '유장미(悠長美)'에서 발견된다. 춤에서의 여백은 단순히 무대 위의 물리적인 빈 공간을 의미하지 않는다. 무용수가 사방으로 움직이며 허공에 보이지 않는 궤적을 그릴 때 발생하는 여백은 시각적 형상을 초월한 '시간성을 지닌 마음의 여백'이다. 이 보이지 않는 공간은 관객에게 시각적 자극보다 훨씬 더 거대한 상상력의 영토와 신비로운 미적 체험을 선사한다.

 

이러한 여백은 한국 전통춤 특유의 느린 템포와 결합하여 무한히 흐르는 '유장미'로 승화된다. 혹자는 한국 전통춤의 정적인 특성을 두고 움직임이 정체되어 있다고 오해하기도 하지만, 이는 외형적 신체의 움직임을 고도로 억제함으로써 내면에 무한한 가능성을 축적하는 '내공의 무용'이기 때문이다. 명무(名舞)들은 장단이 흐르는 동안 무릎을 굽히고 손을 모은 채 수십 초 동안 미동도 하지 않고 대치하기도 한다. 물리적 공간의 이동은 멈춰 있되, 속으로는 숨을 길게 들이마시며 오직 의식(意識)만으로 거대한 우주를 유동시키는 상태, 이 정중동의 팽팽한 장력(張力)이야말로 한국 전통춤이 도달하는 가장 고요하면서도 폭발적인 미학적 정점이다.

 

자연의 선(線)이 이루는 순리, '무기교의 기교'

 

결과적으로 우리 춤의 모든 미의식은 인위적인 작위를 거부하는 '자연 순응의 정신'으로 귀결된다. 척추를 세우고 발끝으로 중력을 거스르며 천상을 향해 솟구치는 서양 발레의 수직적 미학에 반해, 우리 춤은 대지를 품고 자연에 동화되는 수평과 순응의 미학을 따른다. 발바닥을 땅에 밀착하여 디디거나 무릎을 유연하게 굽히는 굴신(屈伸)은 땅의 기운을 몸 안으로 겸허히 받아들이는 순리의 몸짓이다.

 

여기에 승무나 살풀이춤, 탈춤 등에서 보여주는 사위와 고개의 움직임은 언제나 태극(太極)의 궤적을 닮은 S자형의 부드러운 곡선과 원(圓)을 그려낸다. 이 오묘한 선의 조화는 억지로 꾸미지 않는 소박한 자연미를 지향한다. 딱딱한 양식화의 틀을 벗어던진 자유로움, 인위적인 가공을 걷어낸 어울림 속에서 한국 전통춤은 마침내 기술적인 작위를 뛰어넘는 '무기교의 기교’라는 최상의 미적 가치를 완성한다.

 

 

이렇듯 우리 전통춤은 단전의 깊은 호흡으로 내면을 닦고, 맺고 푸는 호흡의 변주를 통해 정중동의 역동성을 구현하며, 비움으로써 채우는 여백의 미를 지향한다. 자극적인 시각 효과와 외형적 기교에 경도된 현대 무용계에, 우리 전통춤의 본질적인 내면 미학과 유장한 호흡은 진정한 미적 체험이 어디에서 비롯되는지를 묵직하게 일깨워주는 소중한 나침반이다.

 

뿌리 잃은 전통춤의 창작은 국적 없는 현대무용의 아류일 뿐이다

 

오늘날 전통춤을 창작하는 안무가들이 마주한 가장 준엄한 시대적 과제는 '전통의 창조적 계승'과 '동시대적 변용' 사이의 균형을 잡는 일이다. 시대적 흐름과 동시대 관객의 미감에 발맞추어 현대적인 작품을 개발하고 소통하려는 예술적 시도는 지극히 자연스럽고 타당하다.

 

그러나 변화의 거센 물결 속에서도 우리 전통춤 고유의 호흡, 춤사위, 그리고 전형미라는 핵심 가치는 결코 타협되거나 훼손되어서는 안 된다. 세계 무대에서 우리 춤이 독보적인 차별성과 경쟁력을 가질 수 있는 유일한 무기는 역설적이게도 '가장 우리다운 독창성'이기 때문이다. 전통이라는 견고한 뿌리를 상실한 창작은 결국 국적 없는 현대무용의 아류나 조잡한 파편으로 전락할 뿐이다.

 

우리의 안무가들이 전통의 전형을 깊이 있게 통찰하는 엄격한 태도 위에서, 비로소 진정한 의미의 '창조적 혁신'을 이뤄내기를 강력히 촉구한다. 뿌리 깊은 나무만이 거센 바람 흔들림 없이 푸른 잎을 틔우는 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