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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의 문화산책] 조선 최고 여류 예인 '계섬(桂纖)'의 삶과 예능

 

[김승국의 문화산책] 조선 최고 여류 예인 '계섬(桂纖)'의 삶과 예능
 

문화칼럼니스트
김승국

 

조선 영·정조 시대, 신분의 한계를 깨고 당대 음악계를 사로잡은 전설적인 여류 예인이 있다. 바로 황해도 출신의 예기(藝妓) 계섬(桂纖)이다. 우리에겐 다소 낯설지만, 그녀는 18세기 조선 국악사의 중심에 서 있던 인물이다.

계섬은 황해도 송화현(松禾縣) 출신으로, 대대로 고을의 아전(衙前)을 지낸 집안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열두 살에 어머니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온전한 고아가 되었다.
의지할 곳이 없어지자, 나라에 의해 관노(官奴)로 적이 올려졌고, 이후 한 고관대작 집안의 예하 노비로 예속되었다. 열여섯 살이 되던 해에 주인집에서 창(唱)을 배우기 시작했는데, 타고난 천부적 재능 덕분에 소리를 배우자마자 자못 이름을 떨쳤다.
권세가들의 잔치나 한량들의 술판에 그녀의 노래가 없으면 부끄럽게 여길 정도로 한양 전역에 소문난 예기로 급부상하며 본격적인 기생 생활을 시작했다.

이후 계섬은 당대 고관이었던 원의손의 집에서 약 10년간 소리 기생으로 머물렀다. 이후 대제학 이정보의 문하로 들어가 그를 친부모처럼 모시며 본격적인 가곡, 가사를 배웠다. 이정보의 체계적인 가르침과 후원 아래, 소리를 단련한 계섬은 당대 사대부와 문인들을 사로잡으며 명성을 전국으로 떨쳤다.

정조 조에는 한때 세도가 홍국영의 집에서 소리 기생으로 머물기도 했다. 이때 권력의 무상함을 체감한 그녀는 중년 이후 강원도 정선으로 내려가 은거했다. 예순두 살에는 정선에서 문인 심노숭(沈魯崇)을 만나 평생에 걸친 자신의 삶을 구술했고, 심노숭은 한 시대를 풍미한 예기의 드라마틱한 일대기에 감동하여 《계섬전(桂纖傳)》을 남겼다.

계섬은 단순히 노래만 부르는 소리꾼에 머물지 않고 가무악의 예능을 두루 갖춘 '융합형 예인'이었다. 가곡과 가사의 독보적인 성음으로 전국 시골 기생들의 스승 역할을 맡았으며, 거문고와 가야금, 생황을 자유자재로 다루며 소리의 깊이를 더했다.
화려한 미색보다는 고고한 자태와 당당한 지성, 그리고 압도적인 예술적 아우라로 시대를 매료시킨 진정한 종합 예술가였다.

노년에 접어든 계섬은 수원 화성유수부의 소속 기생이자 화성 지역 기생들을 가르치는 총감독인 수기생(首妓生)이 되었다. 그녀의 예술적 역량은 국가적 행사에서 빛을 발했다.
1795년 정조가 어머니 혜경궁 홍씨를 모시고 수원 화성으로 내려와 거행한 을묘년 원행 회갑 잔치(봉수당 진찬례)에서, 계섬은 수많은 기생을 이끌고 가무 공연을 총지휘하는 중책을 완수했다. 노년의 나이에도 조선 최고의 명창으로서 국가 최대 행사의 대형 무대와 궁중 정재를 성공적으로 이끈 것이다.

 

봉수당 진찬도


이후 자식 없이 외롭게 늙어갔으나, 모은 재산으로 밭을 사 조카에게 주며 부모의 제사를 부탁했고, 자신이 죽으면 화장해 달라는 유언을 남겼다.

오늘날 K-컬처와 전통 콘텐츠 시장에서 계섬이라는 인물은 가장 강력한 원천 IP(Intellectual Property)가 될 자격을 갖추고 있다.
관노 출신에서 조선 최고 가객으로 올라서는 성장 서사, 권력의 흥망성쇠 앞에서도 기개를 잃지 않았던 당당함, 화성 원행의 화려한 궁중 연회까지 드라마와 영화의 스토리텔링 요소가 차고 넘친다.

계섬이 남긴 정가(正歌)의 아름다운 율조와 거문고 연주, 화려한 궁중 무용(정재)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여 창작 뮤지컬이나 소리극을 제작한다면 시각과 청각을 모두 사로잡는 대형 무대극이 완성될 것이다.
18세기 한양과 화성을 배경으로 신분적 한계에 도전하며 자신만의 예술 세계를 구축해 간 강렬한 여성 캐릭터이기에, 소설이나 웹툰으로 창작되어도 현대 대중에게 깊은 울림을 줄 수 있다.

계섬이라는 한 여인의 서사는 소설, 공연, 영상, 웹툰으로 끊임없이 변주될 수 있는 매력적인 OSMU(One Source Multi-Use) 원천 콘텐츠다. 전통문화의 현대적 재해석이 절실한 지금, 18세기 예인 계섬의 삶을 다시 조명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