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밴드 이날치 [잔파 제공]
[김승국의 문화산책] 19세기 ‘가왕’ 이날치, 21세기 글로벌 K-콘텐츠의 보물창고가 되다
문화칼럼니스트
김승국
‘범 내려온다’라는 중독성 깊은 멜로디로 전 세계에 신드롬을 일으킨 얼터너티브 팝 밴드 ‘이날치(LEENALCHI)’. 전통 판소리를 베이스와 드럼이라는 현대적이고 리드미컬한 비트 위에 얹어 ‘춤출 수 있는 팝 음악’을 선사한 이 밴드의 이름은 조선 후기 8 명창 중 한 사람인 명창 이날치(李捺治)에서 따온 것이다.
수많은 역사 속 명창 가운데 왜 하필 ‘이날치’였을까. 음악감독 장영규에 따르면 밴드 이름을 고민하던 중 발견한 ‘날치’라는 단어가 주는 생경하면서도 날쌔고 생동감 넘치는 이미지, 그리고 전통의 틀을 깨고 시대를 앞서갔던 예인의 활기찬 에너지가 밴드가 지향하는 방향성과 완벽히 부합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렇다면 19세기를 흔들었던 예인 ‘이날치’는 과연 어떤 인물인가. 본명이 이경숙(李景淑, 1820~1892)인 그는 전남 담양의 천민 출신으로 양반가의 노비(머슴)였다.
10대 후반, 가세가 기운 주인의 집을 나와 신분에서 해방된 그는 마을에 들어온 남사당패의 공연에 매료되어 유랑 길에 올랐다. 줄 위에서 날쌔게 재주를 넘는 모습이 마치 “날아다니는 날치 같다” 하여 붙은 별명이 바로 ‘이날치’였다. 어름산이(줄광대)로서 명성을 떨친 그는 한양 무대까지 진출하며 당대 최고 수준의 줄타기 예능을 선보였다.
그러나 줄타기는 극심한 도약과 균형감각을 요구하는 고난도의 기예였기에, 서른쯤에 이르러 신체적 한계에 직면했다. 이에 그는 판소리 반주를 맡는 고수(북재비)로 전향하여 당대 동편제의 대명창 박만순(朴萬順)의 수행 고수로 활동했다.
하지만 소리꾼이 절대적 갑(甲)으로 군림하던 시절, 고수에 불과했던 그는 심한 냉대와 설움을 겪어야 했다. 남의 소리나 받쳐주는 조연에 머물지 않고 판의 주인이 되겠다고 다짐한 그는 과감히 박만순의 곁을 떠났다.
30대 중후반의 늦은 나이, 그는 자신보다 한참 어린 천재 명창 박유전(朴裕全)을 스승으로 모시고 피나는 독공(獨功)에 들어갔다. 줄타기로 익힌 독보적인 호흡과 신체 감각을 소리에 접목해 마침내 득음의 경지에 이른 그는, 스승의 소리를 계승·발전시켜 절제미와 양반층의 기품을 더한 강산제(보성소리)의 기틀을 다졌다.
그가 〈새타령〉을 부르면 실제 새들이 날아들었다는 소문이 퍼지고, 소리 하나로 대중을 웃기고 울리는 능력은 가히 독보적이었다. 50대 초반에 이르러 그의 명성은 한양 궐 안까지 전해졌고, 고종의 아버지이자 최고 권력자인 흥선대원군의 부름을 받아 어전 공연을 펼쳤다.
천대받던 광대 신분이었으나 대원군과 왕실 종친들의 마음을 완전히 사로잡은 그는 정식 관직인 ‘무과 선달’ 교지를 하사받고 운현궁을 출입하는 당대 최고의 가왕(歌王)으로 입전했다. 그의 소리는 정재근, 정응민, 정권진, 조상현 명창으로 이어지며 한국 판소리사의 거대한 줄기로 자리 잡았다.
천민 출신이라는 신분적 한계를 예술적 천재성으로 극복하고, 줄광대에서 고수를 거쳐 당대 최고의 명창으로 거듭난 이날치의 삶은 그 자체로 역동적인 서사를 품고 있다. 오늘날 K-컬처가 글로벌 시장에서 독창성을 인정받는 시점에서, 그의 인생과 예술은 원소스 멀티유즈(OSMU)의 무궁무진한 보물창고라 할 수 있다.

이날치전, 사진제공=국립창극단
우선, 공인된 역사적 기록 뒤에 숨은 여백은 창작자의 상상력을 자극한다. 천민 줄광대가 국창이 되기까지의 신분 역전극, 권력 암투의 격동기 속에서 펼쳐진 독공의 외로움, 그리고 사료에는 드러나지 않은 인간적인 사랑과 고뇌는 대형 사극 영화나 드라마의 훌륭한 소재가 된다.
또한, 무대 위 아슬아슬한 줄타기 액션과 폭발적인 판소리가 결합한 형태는 시각적 스펙터클을 갖춘 융복합 픽션 뮤지컬로 재탄생하기에 부족함이 없다. 줄타기의 신체 감각과 판소리의 스피릿을 시각적으로 구현한 웹툰이나 웹소설로의 확장성 역시 열려 있다.
이미 밴드 '이날치'가 입증했듯, 그의 이름이 지닌 브랜딩 파워는 전통과 현대, 국악과 팝을 넘나드는 퓨전 에이블(Fusion-able)의 아이콘으로 기능한다. 천대받던 예인이 오직 실력과 예술의 힘으로 자신을 증명해 낸 이날치의 삶은, 21세기 무대에서도 무한한 상상력으로 재해석될 수 있는 가장 현대적이면서도 한국적인 문화 자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