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김승국의 문화산책] 조선조 붓 한 자루로 천하를 조롱한 광기의 천재, 화가 '최북(崔北)'의 삶과 예술

 

[김승국의 문화산책] 조선조 붓 한 자루로 천하를 조롱한 광기의 천재, 화가 '최북(崔北)'의 삶과 예술

 

문화칼럼니스트
김승국

 

조선 후기 영·정조 시대에 활동한 최북(崔北, 1712~1786?)은 신분제 사회의 견고한 틀을 깨부수고 자신만의 독창적인 예술 세계를 구축한 전설적인 화가다.


그는 기술직 중인 계급 출신으로 안정적인 벼슬길이 보장된 궁중 도화서 화원의 길을 거부하고, 스스로 '붓으로 먹고사는 사람'이라는 뜻의 호생관(毫生館)을 자처하며 중인(中人) 이하 계층 출신의 전업(직업) 민간 화가를 뜻하는 조선 최초의 여항(閭巷) 화가로 평생을 살았다.

최북의 삶은 한 편의 강렬한 드라마와 같았다. 서른 즈음에는 본명이었던 '식(埴)' 대신 이름의 글자를 쪼개면 '칠칠(七七)'이 되는 '북(北)'으로 개명하며 세상의 질서에 정면으로 도전했다.


성격이 불같고 괴팍했던 그는 예술가로서의 자존심이 짓밟히는 것을 죽기보다 싫어했다. 어느 날 한 권세가가 찾아와 터무니없는 트집을 잡으며 그림을 강요하고 협박하자, 최북은 "남이 나를 저버리는 것이 아니라 내 눈이 나를 저버린다"라며 송곳으로 스스로 한쪽 눈을 찔러 애꾸눈이 되었다. 이후 그는 한쪽 눈에만 끼는 반 안경을 쓴 채 오직 자신의 가치를 알아주는 이들을 위해서만 붓을 들었다.

그의 예술은 당대 주류였던 중국풍 화보의 맹목적인 답습에서 벗어나, 조선의 거친 자연과 실생활을 과감하고 거침없는 필치로 담아낸 진경산수화와 속화의 정점이었다. 금강산 구룡연의 절경에 취해 "천하의 명사가 천하의 명산에서 죽는 것이 옳다"라며 물속으로 뛰어들었다가 구출되거나, 평생 모은 돈을 모두 술값으로 탕진했던 기행 역시 그의 예술적 광기를 대변한다.

평생 자유로운 영혼으로 살았던 최북은 노년에 이르러 며칠을 굶다 그림 한 점을 판 돈으로 만취한 채, 한양의 모진 겨울 눈구덩이 속에서 얼어 죽으며 자신의 대표작인 《풍설야귀인도(風雪夜歸人圖)》 속 나그네처럼 쓸쓸하고도 강렬하게 생을 마감했다.

 

《풍설야귀인도(風雪夜歸人圖)》


오늘날 글로벌 콘텐츠 시장에서 최북이라는 인물은 흔히 '조선의 반 고흐'라 불릴 만큼 강렬한 시각적 아우라와 비극적 천재성, 그리고 현대인들이 열광하는 '아웃사이더 거장'의 매력을 완벽히 갖춘 원천 IP로서 독보적인 OSMU 가치를 지닌다.

최북의 일대기는 영화나 드라마 같은 영상 매체에서 시청자를 단숨에 압도할 수 있는 최고의 캐릭터 서사다. 자신의 예술적 신념을 지키기 위해 세도가 앞에서 스스로 눈을 찌르는 자해 시퀀스는 영화적 텐션을 극대화하는 킬러 필름의 명장면이 될 수 있다.


신분적 한계를 지닌 중인 화가가 한양 화단을 평정하는 과정, 금강산 폭포 투신 사건, 그리고 눈보라 속에서의 비극적인 최후까지 극적인 완급 조절이 완벽하여 시각 예술을 다루는 하이엔드 사극의 주인공으로 최적이다.

웹툰 시장의 메가 트렌드인 '미치광이 천재', '독고다이 능력자' 키워드에 완벽하게 부합하는 인물이다. 사대부들의 가식적인 문인화를 비웃으며 거친 붓질 하나로 장안의 눈길을 사로잡는 최북의 행보는 MZ세대가 갈망하는 파격적인 카타르시스를 준다.


권력자의 협박에 굴하지 않고 탕아처럼 살아가면서도, 메추라기 한 마리를 그릴 때만큼은 순수한 영혼을 보여주는 입체적인 캐릭터성은 현대적인 걸크러시 및 다크 히어로 문법으로 재해석하기에 유용하다.

무대 위에서 최북 IP는 그의 실제 회화 작품인 《공산무인도》, 《풍설야귀인도》 등을 활용한 미디어아트 융합 공연으로 시각적 극대화를 이룰 수 있다.

 

《공산무인도》


가로막힌 신분제의 벽과 어두운 시대를 향해 최북이 거대한 붓을 휘두를 때마다 무대 전체에 먹선과 색채가 흩뿌려지는 미디어 파사드 연출을 도입하고, 그의 광기 어린 삶을 록(Rock) 스피릿이나 격정적인 오케스트라 사운드로 풀어낸다면 뮤지컬 <미술관 옆 동물원>이나 <노트르담의 꼽추>를 뛰어넘는 압도적인 무대극이 완성될 것이다.

미술품 디지털 에셋 및 공간 브랜딩 (K-아트 메타버스): 최북의 독창적인 화풍과 거침없는 필선은 현대 패션, 가구 디자인, 혹은 디지털 NFT 에셋으로 리브랜딩하기에 훌륭한 자산이다.


그가 남긴 그림 속 세계관을 VR(가상현실)이나 메타버스 공간으로 구현하여 사용자가 직접 조선의 산수를 거니는 미디어 전시를 기획하거나, '호생관(毫生館)'이라는 브랜드를 현대적인 프리미엄 아티스트 스튜디오 및 로컬 디자인 문화 공간의 앵커 브랜드로 확장하여 대중문화와 순수 예술의 경계를 허무는 경제적 부가가치를 창출할 수 있다.

최북은 신분제와 주류 화단의 권위에 온몸으로 맞서며 오직 붓 한 자루로 자신의 자주성을 증명해 낸 시대를 앞서간 현대적 예술가였다.


예술가의 주체성과 대담한 개성이 핵심 가치로 떠오른 지금, 18세기 기인 화가 최북의 삶을 오늘날의 콘텐츠로 다시 소환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