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승국의 문화산책] 대통령의 성공과 국민의 삶을 위한 마지막 고언
문화칼럼니스트
김승국
이 글은 현 정치의 파행을 외면할 수 없는 한 문화예술인의 글임을 밝혀둔다.
평생 문화예술 현장에서 예술행정과 시 창작을 해온 사람으로서, 가급적 정치의 한복판에 직접적인 목소리를 내는 일은 피하려 노력해 왔다. 예술은 진영을 넘어 사람의 마음을 잇는 일이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러나 최근 여권과 진보 진영 내부에서 격화되는 분열과 갈등을 바라보며 더 이상 입을 다물고 있을 수만은 없다는 결론에 다다랐다. 정권의 실패와 정치적 파행이 초래할 피해는 결국 고스란히 국민에게 돌아가며, 신뢰를 잃은 사회 속에서 우리 문화예술의 지속 가능한 토양 역시 고사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 정권이 반드시 성공한 국민의 정권이 되기를 바라는 절박한 마음으로, 오늘 이 사태의 본질을 짚고 타개를 위한 제언을 남기고 자 한다.
지금의 갈등을 두고 한쪽만을 비난하거나 양쪽 모두를 뭉뚱그려 비판하는 양비론은 지극히 쉬운 선택이다. 하지만 이는 비겁한 방관일 뿐, 엉킨 실타래를 푸는 데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는다.
국민대통합과 실용주의 국정 운영이라는 방향성 자체는 비판의 대상이 될 수 없다. 여소야대의 엄혹한 현실 속에서 중도와 보수를 아우르는 탕평과 실용은 정권의 지속 가능성을 위한 고민의 결과물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통합이라는 목표를 향해 가는 과정에서 치명적인 과오가 있었다. 정권의 태동을 함께하고 최전선에서 헌신했던 핵심 지지층, 그리고 진보적 가치를 수호해 온 스피커들에 대한 ‘진정성 있는 소통과 설득의 과정’이 부재했다는 점이다.
"왜 우리가 피 흘려 만든 결실을 반대편과 나누어야 하는가"라는 물음은 단순한 떼쓰기나 기득권 주장이 아니다. 자신들의 헌신에 대한 최소한의 존중과 정체성을 묻는 절박한 목소리였다.
그들의 서운함과 자존심을 어루만질 상징적 예우와 비공식적 숙의 과정이 생략된 채 추진된 탕평은, 결국 ‘통합’이 아닌 ‘소외’와 ‘배신’으로 전달되고 말았다.
내부를 온전히 품지 못하는 리더십은 결코 밖으로 힘있게 확장될 수 없다. 자신을 받쳐주는 뿌리를 상수(常數)로 치부하고 외연으로만 눈을 돌릴 때, 정권의 토대는 흔들리기 마련이다.
현 갈등 국면을 타개하고 정권의 성공을 이루기 위해 다음의 대안을 제언한다.
첫째, 국정 주체들은 감정적 대응을 거두고 소통 채널을 즉각 복원해야 한다.
비공식 대화의 장을 열어 국정 운영의 현실적 고충을 진솔하게 설명하고 양해를 구하는 겸손함이 선행되어야 한다. 정치에서 '무엇을 하느냐'라는 결과만큼이나 중요한 것은 '어떻게 설득하느냐'라는 과정이다.
둘째, 진보 진영의 스피커들과 지지층 역시 정권의 안정적 운용이라는 현실적 무게를 인정해야 한다.
성역 없는 비판은 권력 견제를 위해 필수적이지만, 자극적인 언사로 내부의 골을 깊게 만드는 방식은 정권의 국정 동력을 스스로 갉아먹을 뿐이다. 비판 뒤에는 국정을 함께 견인하겠다는 책임감이 동반되어야 한다.
셋째, 탕평 인사를 단행하더라도 진보적 정체성과 개혁 과제의 우선순위를 분명히 밝혀야 한다.
중도·보수 인사의 기용이 '개혁의 후퇴'로 오인되지 않도록 핵심 국정과제에 대한 추진 의지를 지지자들에게 투명하게 설득하고 성과로 증명해야 한다.
정치의 안정 없이 문화와 예술의 미래도 없다. 지금의 진통이 서로를 배척하는 파국이 아니라, 더 단단한 집을 짓기 위한 성찰의 계기가 되기를 간절히 바란다.
대통령과 정권의 성공은 결국 국민의 삶과 직결되어 있다. 소통과 예우의 회복에서 다시 시작해야 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