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장순향 명무, 히로시마에서 춤으로 전한 평화의 메시지
2026년 8월 6일 히로시마 원폭 투하 81주년을 맞아 열린 '히로시마·나가사키 원폭 조선인 희생자 추모제'에서 장순향 명무가 추모춤 '망향'을 선보이며 조선인 피폭 희생자들의 넋을 위로하고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이번 추모제는 원폭 피해자와 그 후손들에 대한 연대를 확인하고 전쟁과 핵무기 없는 세상을 염원하기 위해 마련됐다. 행사 준비위원회는 성명을 통해 "1945년 8월 6일 미국의 원자폭탄 투하는 민간인을 대상으로 한 무차별적 공격이자 제노사이드적 성격을 지닌 사건"이라며 "특히 식민지 조선인들이 다수 희생된 사실은 역사적으로 더욱 깊이 조명돼야 한다"고 밝혔다.
또한 "피폭의 고통이 현재까지 이어지는 상황에서 원자력발전소 재가동은 피해자와 후손들에게 또 다른 상처를 주는 일"이라며 시마네 원전 2호기 재가동 중단과 신규 원전 및 중간저장시설 건설 반대, 전쟁과 핵무기 개발 중단, 원폭 투하에 대한 책임 인정과 사과를 촉구했다.

행사에서는 일본 주고쿠전력 노동자들의 반원전 투쟁과 야마구치현 축도(祝島) 주민들의 반대 운동에 대한 연대의 뜻도 함께 전해졌다.
전날인 8월 5일 열린 추모문화행사에서는 장순향 명무가 조선인 희생자를 위한 추모춤 '망향'을 공연했다. 지난해 원폭 투하 80주년 추모제에서 '검은비'를 선보인 데 이어 올해에는 '망향'을 통해 타국에서 희생된 조선인 피폭자들의 삶과 죽음, 끝내 고향으로 돌아오지 못한 이들의 한을 춤으로 형상화했다. 작품은 단순한 추모를 넘어 피폭의 고통이 세대를 넘어 이어지고 있음을 환기하며 반전·반핵·평화의 메시지를 담아냈다.
전통춤의 맥을 잇는 명무
장순향 명무는 한국 전통춤의 정통 계보를 이어온 대표적인 무용가다. 어린 시절부터 춤을 시작해 이필이, 이매방, 김수악, 김애정, 박병천 등 한국 전통춤의 거장들에게 사사했으며, 국가무형유산 살풀이춤 이수자로 활동하고 있다.
특히 1983년 이후 전승의 맥이 끊겼던 김애정류 살풀이춤과 승무를 오랜 연구 끝에 복원하는 등 전통춤의 원형을 계승하는 데 힘써 왔다. 승무 전승과 교육에도 꾸준히 참여하며 우리 춤의 전통을 다음 세대에 전하는 역할을 이어가고 있다.
그러나 그의 춤은 단순히 전통을 재현하는 데 머물지 않는다. 전통춤의 호흡과 장단, 정·중·동의 미학을 바탕으로 현대 사회가 안고 있는 역사와 인간의 아픔을 몸짓으로 풀어내는 것이 장순향 명무 춤의 가장 큰 특징이다.
1989년 첫 춤내력을 시작으로 2023년 스무 번째 춤내력 '숨'에 이르기까지 그는 전통의 계승과 시대적 창작을 함께 이어오며 자신만의 예술세계를 구축해 왔다.
역사의 현장에서 춤추는 예술가
장순향 명무는 공연장 안에서만 활동하는 무용가가 아니다.
중학교 교사로 교육 현장을 지켰으며, 민족예술인총연합회 활동과 함께 한국민족춤협회를 창립해 초대 이사장을 맡으며 전국의 춤꾼들을 하나로 모으는 데 기여했다. 또한 문화예술 행정과 후학 양성에도 힘쓰며 전통춤의 사회적 확산을 위해 꾸준히 활동해 왔다.
그가 '민중춤꾼'으로 불리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세월호 참사, 국가폭력, 역사 왜곡, 과거사 문제 등 우리 사회의 아픈 현장마다 춤으로 함께하며 희생자와 유가족의 슬픔을 위로하고 기억의 의미를 환기해 왔다. 최근에는 독일의 평화의 소녀상 앞에서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들의 기억과 존엄을 담은 즉흥 창작춤을 선보이며 국제사회에도 평화의 메시지를 전했다.
장순향 명무에게 춤은 단순한 공연예술이 아니라 역사적 기억을 현재로 불러오고 침묵을 깨며 연대를 만들어내는 몸의 언어인 셈이다.
반핵과 평화를 위한 몸짓
장순향 명무는 오랫동안 합천 원폭 피해자 위령제를 비롯한 다양한 반핵 행사에서 '반핵춤'을 이어왔다.
원폭 피해를 과거의 비극으로만 남겨두지 않고 핵무기와 원자력발전, 전쟁과 폭력의 문제를 오늘의 현실과 연결해 표현해 온 것이다.
이번 히로시마 공연 역시 이러한 예술적 실천의 연장선에 있다.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의 원폭 피해는 일본인만의 역사가 아니다. 당시 일본의 식민지였던 조선인 수만 명이 강제동원과 이주 등으로 일본에 머물다 피폭됐고, 해방 이후에도 오랫동안 피해 사실조차 제대로 인정받지 못했다.
장순향 명무의 '망향'은 이러한 조선인 피폭자들의 존재를 역사 속 중심으로 불러내고, 그들의 고통과 한을 오늘의 기억으로 되살리는 작업이라는 점에서 깊은 의미를 갖는다.
시대를 춤으로 기록하다
장순향 명무는 전통을 지키는 명무이면서도 시대의 현실에 응답하는 창작자이다.
전통춤의 깊은 호흡과 몸의 기억을 바탕으로 역사적 희생자들을 위로하고 사회적 부조리와 폭력에 저항하는 춤을 꾸준히 만들어 왔다.
이 같은 예술적 실천은 지난해에도 높이 평가됐다. 그는 2025년 제1회 이애주 춤 문화상 시대창작 부문 수상자로 선정됐으며, 심사위원들은 세월호 참사 이후 탄핵 국면에 이르기까지 거리와 현장에서 펼쳐온 춤과 한국민족춤협회를 중심으로 민중춤의 흐름을 이끌어온 공로를 높이 평가했다.
장순향 명무에게 춤은 과거를 보존하기 위한 형식이 아니라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들의 고통과 희망을 미래로 전하는 살아 있는 예술이다.

지난해 '검은비'에 이어 올해 히로시마에서 선보인 '망향'은 전통춤의 깊은 미학과 반핵·평화운동의 실천이 하나로 만난 작품이었다. 원폭으로 희생된 조선인들의 넋을 위로하는 동시에 전쟁과 핵 없는 세상을 향한 염원을 담은 그의 몸짓은 국경과 세대를 넘어 깊은 울림을 남겼다.
장순향 명무는 이날 공연을 통해 다시 한번 예술이 기억을 지키고, 기억이 평화와 연대로 이어질 수 있음을 보여주었다. 그의 춤은 역사를 잊지 않기 위한 몸의 기록이자, 다시는 같은 비극이 반복되지 않기를 바라는 시대의 기도였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