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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의 문화산책] 조선조 여성 시인 매창(梅窗)의 시문(詩文)이 새긴 정한(情恨)의 울림

 

조선조 여성 시인 매창(梅窗)의 시문(詩文)이 새긴 정한(情恨)의 울림

 

문화 칼럼니스트

김승국

 

조선 중기, 전라도 부안의 산천을 배경으로 거문고를 타고 시를 읊으며 시인들의 마음을 사로잡았던 여인이 있었다. 황진이, 옥봉 등과 더불어 조선 문학사에 커다란 족적을 남긴 여류 시인, 본명 이향금(李香今), 호 매창(梅窗)이다.

 

신분제 사회에서 천기(賤妓)라는 한계에 갇혀 살아갔지만, 매창은 정제된 언어와 서정적 시풍으로 당대 최고의 문사들과 교유하며 시인으로서의 당당한 정체성을 확립했다.

 

매창은 1573년(선조 6년) 부안 현리였던 이양종의 서녀로 태어났다. 어린 시절부터 아버지에게 글을 배워 한시와 거문고에 뛰어난 재능을 보였다. 계유년에 태어났다 하여 계생(桂生)이라 불리기도 했으며, 스스로 '매화 창문'이라는 뜻의 매창(梅窗)을 호로 삼아 맑고 절개 있는 정서를 표현했다.

 

허균, 유희경도 인정한 매창의 시문

 

기녀라는 신분적 특성상 다양한 문인들을 맞이해야 했으나, 매창은 결코 가볍게 웃음을 파는 인물이 아니었다. 그녀는 평생 몇몇 문인들과 지고지순한 교유를 나누며 문학적 영감을 주고받았다.

 

특히 허균, 유희경과의 교유는 당대에도 깊은 인상을 남겼다. 허균은 《성소부부고》에서 매창에 대해 "말을 잘하고 시를 잘 짓는 교양 있는 기생으로, 남녀 간의 정욕을 넘어서 시문과 사상을 나누는 친구였다"라며 그녀의 절개와 문재(文才)를 높이 평가했다.

 

38세라는 짧은 생을 마치고 세상을 떠났을 때, 부안의 아전들과 민중들은 그녀를 가련하게 여겨 거문고와 함께 매창애(매창의 무덤)에 묻어주었다.

 

사후 58년이 지나 부안의 아전들이 그녀가 남긴 원고를 모아 목판본 《매창집(梅窗集)》을 간행하면서 그녀의 시는 오늘날까지 전해지게 되었다.

 

매창은 총 50여 편의 한시와 한 편의 시조를 남겼다. 그녀의 시는 화려한 미사여구보다는 담담하면서도 가슴을 파고드는 애절한 감정선이 특징이다.

 

매창의 시조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 널리 알려져

 

매창의 대표작으로 꼽히는 시조 '이화우(梨花雨) 흩날릴 제'는 광해군 시절 유희경과의 이별을 아파하며 지은 시로 널리 알려져 있다.

 

이화우(梨花雨) 흩뿌릴 제 울며 잡고 이별한 님

추풍낙엽(秋風落葉)에 님도 날 생각는가

천 리에 외로운 꿈만 오락가락 하매오

 

배꽃이 비처럼 내리던 봄날의 이별에서 가을 낙엽이 떨어지는 계절의 변화로 이어지는 정서적 흐름은 이별의 애달픔을 극대화한다. 한문 시에 익숙했던 그녀가 시조를 통해 우리말 고유의 서정성을 완벽히 풀어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그녀의 한시 《자한(自恨)》이나 《봄날의 회포》 등에서는 기녀로서 겪어야 했던 내면의 외로움과 인간적인 고뇌가 짙게 묻어난다.

 

눈물로 세월 보낸 시름겨운 이 마음 (恨怨頻添淚滿衣)

화려했던 청춘도 부질없이 흘러가네 (羅衫不惹桂香飛)

거문고만 홀로 뜯으며 타는 마음 달래니 (獨倚瑤琴彈一曲)

오동잎에 비 뿌릴 때 시름만 길어지네 (雨打梧桐秋恨長)

 

시 속의 '오동잎에 떨어지는 빗소리'는 매창 특유의 감성적 이미지를 대표하는 문구로, 이별의 상처를 예술적 완성도로 승화시킨 대목이다.

 

매창은 신분제와 가부장제가 엄격했던 조선 사회에서 자신의 이름으로 시문집을 남긴 몇 안 되는 여성 시인이다.

 

그녀의 시는 단지 개인의 애정을 노랫소리로 만든 데 그치지 않고, 시대의 한계를 뛰어넘어 인간의 본질적인 외로움과 사랑을 고결하게 그려냈다.

 

배꽃이 비처럼 떨어지는 날이나 가을 오동잎에 빗방울이 스치는 밤, 부안 매창공원에 새겨진 그녀의 시구는 오늘날을 사는 우리에게도 여전히 깊은 울림을 전해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