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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혼을 위로하는 세 개의 등불, 불교 재(齋) 의식에 담긴 대자대비와 종합예술의 정수
문화 칼럼니스트
김승국
오늘날 우리는 상실의 시대에 살고 있다. 물질적 풍요 속에서도 마음을 둘 곳을 잃어버린 현대인들은 눈앞의 갈등과 소외 속에서 보이지 않는 영혼의 갈증을 앓는다. 인간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고 온몸으로 껴안으려 했던 우리 전통문화의 유산 중에서, 이 해묵은 상처를 치유할 가장 거대하고도 아름다운 실마리를 발견할 수 있다. 바로 불교의 대표적인 세 가지 재(齋) 의식인 영산재(靈山齋), 수륙재(水陸齋), 그리고 예수재(預修齋)다.
불교에서 '재'는 단순히 망자를 추모하는 제사를 넘어, 산 자와 죽은 자 모두를 진리의 세계로 인도하는 엄숙한 수행이자 나눔의 장이다. 이 세 가지 재는 대상을 향한 자비의 시선과 목적에 따라 저마다 뚜렷한 차이점과 독창성을 지닌다.
불교의 대표적인 재(齋) 의식(儀式), 영산재(靈山齋), 수륙재(水陸齋), 예수재(預修齋)
첫째, 영산재는 '죽은 자를 위한 가장 장엄한 배웅'이다. 일종의 천도재이다. 석가모니불이 영취산에서 《법화경》을 설법하던 자리를 오늘날의 도량에 재현하는 의식이다. 영가를 부처님의 설법 현장으로 모셔와 번뇌를 씻기고 극락왕생을 기원한다. 살아생전의 업을 녹여내고 영혼을 해탈의 길로 이끄는, 가장 정통적이고 숭고한 불교 천도재의 정수다.
둘째, 수륙재는 물(水)과 육지(陸)를 떠돌며 갈 곳 없이 방황하는 고혼(孤魂)과 아귀들에게 음식을 베풀고 법을 설하는 의식이다. 수륙재의 위대함은 연고가 있는 조상뿐만 아니라, 전쟁이나 재난으로 억울하게 죽은 이름 없는 원혼까지 모두 평등하게 거둔다는 점에 있다. 조선을 세운 이성계가 건국과정에서 왕족을 멸한 것에 두고두고 죄의식을 느껴 그들의 고혼을 달래주고자 수륙재를 성대하게 열어주었다는 것에서 수륙재의 성격을 잘 보여주고 있다. 원한을 품고 떠도는 영혼을 위로하여 사회적 갈등과 재앙을 막고자 했던, 상생과 치유의 대동(大同) 한마당이다.
셋째, 예수재는 '내가 살아있을 때 닦는 미래의 구도'다. 사후(死後)에 치를 재를 살아생전에 미리(預) 닦는다(修)는 뜻으로 '생전 예수재'라고도 하며, 남이 대신해 주는 구도가 아닌 스스로 지은 업을 참회하고 보시를 행하는 주체적인 의식이다. 일종의 보험과 같은 재 의식이다. 죽음을 두려움의 대상이 아니라 현재의 삶을 반듯하고 가치 있게 가꾸는 거울로 삼았던, 가장 지혜롭고 역동적인 수행의 형태다.
불교 재(齋) 의식(儀式)은 불교 철학과 종합예술의 용광로
이렇듯 영산재가 영혼의 해탈을 구하고, 수륙재가 사회적 연대와 평등을 실천하며, 예수재가 주체적인 삶의 성찰을 이끈다는 점에서 세 의식은 각기 다른 결을 지닌다.
그러나 이 세 가지 재는 하나의 거대한 예술적 용광로에서 만난다. 불교의 심오한 교리와 대자대비의 정신이 언어의 장벽을 넘어 대중에게 직관적으로 다가갈 수 있었던 것은, 이 의식들이 가(歌)·무(舞)·악(樂)·희(戱)가 완벽하게 융합된 조선 최고의 종합예술 플랫폼이었기 때문이다.
의식의 시작을 알리는 장엄한 태평소와 바라 소리, 범종과 목탁이 만들어내는 음악(樂)은 도량을 순식간에 신성한 우주적 공간으로 탈바꿈시킨다. 그 위로 흐르는 소리(歌)인 범음(梵音)과 범패(梵唄)는 단순한 노래가 아니라 인간의 가장 깊은 곳에서 터져 나오는 영혼의 떨림이자 고도의 성악 예술이다.
부처님께 공양을 올리고 나비처럼 나풀거리는 나비춤, 번뇌를 부수듯 격렬하게 울리는 바라춤, 법고를 두드리는 승무 등의 작법(무용:舞)은 정중동(靜中動)의 미학을 극치로 보여주는 신체 예술이다. 여기에 사자를 맞이하고 함을 보내며 극락 세계의 환희를 시각적으로 연출하는 일련의 의례적 요소들은 관객과 연희자가 하나 되어 호흡하는 거대한 연극적 연희(戱)의 성격을 띤다.
세 가지 재는 불교라는 종교의 울타리를 넘어, 당대 최고의 예술가와 장인, 그리고 민초들이 함께 만들어낸 축제였다. 마당 가득 걸린 거대한 괘불 아래서 펼쳐지는 가무악희의 대향연은 죽은 자에게는 해탈의 기쁨을, 살아남은 자에게는 슬픔을 극복할 위로와 카타르시스를 선물했다.
오늘날 우리는 여전히 눈만 뜨면 편을 가르고, 타인의 아픔에 무감각하며, 스스로의 삶을 돌볼 여유조차 없는 조급한 시대를 살아가고 있다.
200년 전 우리 선조들이 영산재, 수륙재, 예수재를 통해 증명해 보였던 가르침은 명확하다. 예술의 힘으로 영혼을 치유하고, 차별 없는 자비로 공동체를 묶어내며, 살아있는 순간을 청렴하고 가치 있게 가꾸라는 것이다. 이 오래된 미래의 유산 속에, 어쩌면 우리가 잃어버린 '함께 살아가는 반듯한 삶'의 진짜 실마리가 들어있을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