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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의 문화산책] 분절된 개인의 시대, 우리가 다시 ‘마을굿’의 마당을 열어야 하는 이유

 

 

분절된 개인의 시대, 우리가 다시 ‘마을굿’의 마당을 열어야 하는 이유

 

문화 칼럼니스트
김승국

 

전통 사회에서 공동체의 가장 큰 축제이자 종교적 의례였던 대동굿은 그 규모와 성격에 따라 나라의 안녕을 비는 나라굿, 고을 단위의 고을굿, 그리고 가장 기저에서 민초들의 삶을 지탱하던 ‘마을굿(동제·동신제)’으로 나뉘었다.

 

거대 권력이나 제도적 종교가 채워주지 못했던 평범한 사람들의 결속력은 바로 이 마을굿에서 나왔다. 각자도생과 외로움이 사회적 질병이 된 현대사회에서, 오래된 미래인 마을굿의 마당을 다시금 주목해야 하는 이유가 여기 있다.

 

전통 사회에서 마을굿의 일차적인 목적은 ‘생존과 안녕’이었다. 농경 사회나 어촌 마을에서 자연재해와 질병은 개인의 힘으로 막을 수 없는 거대한 공포였다. 주민들은 마을을 지켜주는 동신(洞神)에게 공동체의 풍요와 평안을 빌며 불안을 통제했다. 하지만 진짜 목적은 그 너머에 있었다. 바로 ‘공동체의 통합과 결속’이다. 굿을 준비하고 치르는 과정에서 마을의 크고 작은 갈등은 잠시 유예되었고, 신성한 의례를 통해 ‘우리는 하나’라는 강력한 연대감을 확인했다.

 

공동체의 축제, 마을굿은 소중한 무형유산

 

이 거대한 의례를 이끄는 주체는 결코 무당(샤먼) 한 사람이나 권력자가 아니었다. 바로 ‘마을 주민 전체’였다. 물론 신과 인간을 매개하는 사제로서 무당이 초빙되거나 마을의 덕망 있는 제관이 선출되었지만, 비용을 추호의 치우침 없이 가구별로 나누어 내고(출동), 굿판에 쓰일 음식을 함께 만들며, 풍물을 치고 춤을 추는 모든 과정은 주민들의 자발적인 참여로 이루어졌다. 신분 계급이 엄격했던 조선 시대조차 마을굿 앞에서는 양반과 상민, 남녀노소의 구분이 옅어졌다. 모두가 제관이자 관객이며, 동시에 주인공인 축제였던 셈이다.

 

보편적인 마을굿의 절차는 긴장감 넘치는 정화로 시작해 대동의 해방감으로 마무리되는 정교한 서사를 지닌다.

 

첫 번째는 ‘금기(禁忌)와 정화’단계다. 굿을 하기 며칠 전부터 마을 입구에 금줄을 치고 황토를 뿌려 부정한 외부인의 출입을 막았으며, 제관들은 목욕재계하며 몸과 마음을 깨끗이 했다.

 

두 번째는 ‘신령 맞이(신청)’로, 마을의 수호신을 굿판으로 모셔오는 과정이다.

 

세 번째는 본 의례인 ‘오신(娛神)과 축원’이다. 신을 즐겁게 해드리기 위해 화려한 가무와 연희가 펼쳐지고, 마을 구성원 개개인과 공동체의 소망을 담은 축문을 읽거나 소지를 올렸다.

 

마지막은 ‘송신(送神)과 음복(飮福)’이다. 만족한 신을 돌려보낸 뒤, 신에게 바쳤던 음식을 마을 사람들이 골고루 나누어 먹으며 밤새도록 술을 마시고 노래하며 춤을 추었다(대동놀이). 신성함으로 시작해 철저한 세속적 즐거움과 화합으로 끝나는 흐름이다.

 

대동(大同), 동락(同樂), 상생(相生)의 마을굿의 정신 오늘날에 되살려야

 

그렇다면 초연결 사회이자 초개인화 사회를 살아가는 오늘날, 이 구식의 마을굿은 우리에게 어떤 의미를 가질 수 있을까?

 

현대인은 그 어느 때보다 외롭다. 아파트 벽 하나를 사이에 두고도 이웃의 이름조차 모른 채 살아가며, SNS의 화려한 연결 속에서 정작 지독한 고립감을 느낀다. 마을굿이 현대사회에 던지는 가장 큰 화두는 ‘상실된 로컬(Local) 공동체의 회복’이다. 마을굿은 단순히 미신적 행위가 아니라, ‘우리가 같은 공간에 살며 서로 연결되어 있다’는 장소성을 확인시켜 주는 문화적 장치였다. 현대적인 감각으로 재해석된 마을 축제나 지역 커뮤니티 의례는 파편화된 개인들을 다시 묶어주는 훌륭한 사회적 접착제가 될 수 있다.

 

또한, 마을굿의 대동놀이는 ‘일상의 스트레스를 치유하는 집단적 카타르시스’를 제공한다. 현대인들은 각자의 방에서 모니터를 보며 스트레스를 풀지만, 인간은 본래 타인과 몸을 부딪치고 목소리를 섞으며 에너지를 얻는 존재다. 마을굿 마당에서 일어났던 집단적인 신명과 신바람은 불안과 우울에 시달리는 현대인들의 정신적 건강을 회복시키는 훌륭한 대안적 치유 모델이 될 수 있다.

 

마을굿은 미개한 과거의 유산이 아니다. 그것은 인간이 홀로 살아갈 수 없음을 깨달은 선조들이 만들어낸 가장 지혜로운 공동체 생존 방정식이었다. 비록 신에게 제사를 지내는 종교적 형태는 사라질지언정, 서로의 안녕을 빌고 함께 음식을 나누며 마음의 빗장을 풀었던 ‘마을굿의 정신’만큼은 이 삭막한 현대사회에 반드시 되살려야 할 소중한 유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