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산조는 박제된 전통이 아니다”… 영암에서 다시 물은 산조의 미래
2026 김창조 산조 페스티벌이 지난 9월 11일부터 12일까지 이틀간 전남 영암에서 성대하게 펼쳐졌다.
가야금산조의 창시자로 일컬어지는 김창조의 고향 영암에서 열린 이번 축제는 전승 산조의 예술적 가치를 확인하는 한편, 오늘의 연주자는 어떤 산조를 만들어야 하는지, 어디까지를 산조라고 부를 수 있는지, 그리고 미래의 산조는 누구에게 어떻게 들려야 하는지를 연주와 학술, 대담을 통해 입체적으로 질문했다.
대한민국의 대표적인 지성 가운데 한 사람인 도올 김용옥이 함께하는 산조축제는 과연 어떤 모습일까. 그런 기대를 안고 영암으로 향했다. 현장에서 먼저 받은 인상은 각종 학술포럼과 다양한 산조 연주를 상당히 밀도 있게 배치했다는 것이었다.
우승희 영암군수의 적극적인 모습도 눈길을 끌었다. 우 군수는 ‘가야금의 본향 영암’이라는 문화적 자산에 강한 자부심을 보이며 공연과 학술행사에 함께했고 객석에서도 따뜻한 환대를 받았다. 김창조와 산조라는 영암의 소중한 문화유산을 더 많은 사람들이 알고 즐길 수 있도록 힘쓰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원일 예술감독, ‘공연하는 축제’에서 ‘질문하는 축제’로
2026 김창조 산조 페스티벌의 전체적인 색깔을 만든 이는 원일 예술감독이다.
원일 감독은 다양한 산조 연주를 늘어놓는 방식에서 벗어나 학술포럼과 연주, 연주자와의 대담, 비교음악적 프로그램을 서로 연결했다. 덕분에 산조의 탄생과 예술성을 돌아보는 동시에 오늘의 산조와 앞으로 만들어질 산조를 생각하게 하는 구조가 만들어졌다.

원일 예술감독
특히 원일은 연주가 끝난 뒤 연주자에게 직접 창작의 출발점과 음악적 아이디어를 묻고, 연주와 토론이 따로 존재한 것이 아니라 연주가 질문을 만들고 그 질문이 다시 산조의 본질에 관한 논의로 이어졌다.
그야말로 불꽃 튀는 연주와 논쟁이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축제는 산조의 역사를 돌아보는 데서 그치지 않고 산조의 현재를 진단하고 미래를 상상하는 자리로 잘 마무리됐다고 평가할 만하다.
이소영이 던진 질문, “도대체 어디까지가 산조인가”
이번 행사의 학술포럼 디렉터인 이소영은 좌장이자 평론가로서 토론의 중심을 잡았다. 특히 산조 연주자들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 결과를 토대로 “무엇을 산조라고 부를 것인가”라는 근본적인 질문을 던졌다.

설문 결과도 흥미로웠다. 새로운 산조를 만드는 데 필수적인 요소로 122명, 77% 이상이 ‘장단 구조’를 꼽았고 ‘조(調)’가 그 뒤를 이었다. 반면 산조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즉흥성’을 중요 요소로 꼽은 응답은 23%에 불과했다. 산조를 외부에서 바라보는 시각과 실제 산조를 배우고 만드는 연주자들의 인식 사이에 적지 않은 차이가 드러난 것이다.
젊은 세대의 산조 창작을 위해 필요한 것으로는 ‘스승과 원로의 인식 변화’가 가장 많이 꼽혔다. 교육과정 개편, 재정 지원, 창작 발표 무대 확대, 무형유산 제도의 유연화 등이 뒤를 이었다.
이소영은 복잡한 논쟁을 알기 쉽게 정리하고 서로 다른 세대와 입장을 연결하면서 좌장으로서 중재 역할을 충실히 수행했다.
도올 김용옥 “새로운 산조는 기존 권위의 승인에서 나오지 않는다”
토론의 온도를 단숨에 끌어올린 것은 도올 김용옥이었다.
도올은 새로운 산조를 만들면서 기존 권위가 인정해줄 것인가부터 걱정해서는 안 된다는 취지로 강하게 문제를 제기했다. 새로운 창조란 기존 질서의 승인을 기다리는 일이 아니라 때로는 기존 질서를 깨뜨리는 ‘반항’에서 시작된다고 말했다. 초기 산조 역시 처음부터 오늘날과 같은 고정된 규범을 가지고 출발한 음악이 아니었다는 것이다.

도올 김용옥과 이소영 음악평론가
그렇다고 무조건 새로우면 된다는 이야기는 아니었다. 도올이 강조한 것은 압도적인 예술적 수준이었다. 초기 명인들의 음악이 연주자마다 다르고 같은 연주자도 때마다 다르게 연주했음에도 살아남은 것은 결국 음악 자체의 수준이 높았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즉흥성에 대해서도 단순히 무대에서 아무 음이나 자유롭게 연주하는 것을 뜻하는 것이 아니라 ‘창작의 자유로움’이라는 보다 넓은 의미로 바라봤다. 새로운 산조는 1세대 산조 명인들이 그랬듯 이전에 없던 음악세계를 만들어낼 만큼 치열한 창조력을 요구한다며 “피눈물 나는 노력”을 강조했다.
원나경의 해금산조, 젊은 연주자가 들려준 새로운 가능성
‘젊은 산조’ 무대에 오른 해금 연주자 원나경의 연주도 인상적이었다. 해금 특유의 애잔하면서도 힘 있는 소리를 살리면서 장단이 바뀔 때마다 음악의 분위기를 자연스럽게 변화시켰다. 때로는 깊게 눌러내고 때로는 가볍게 풀어내는 해금의 소리가 산조의 다양한 맛을 잘 보여줬다.

해금 연주자 원나경
원나경은 요즘 연주자들이 새로운 산조를 만들기 어려운 이유 가운데 하나로 기존 산조를 정해진 가락 그대로 배우는 교육방식을 들었다. 옛 명인들은 자신이 오랫동안 듣고 연주해온 음악을 마치 ‘모국어’처럼 자연스럽게 몸에 익혔고, 그 바탕에서 자신의 가락을 만들어낼 수 있었다는 것이다.
원나경은 전통적인 산조의 맛을 잃지 않으면서도 자신만의 해금 소리와 표현을 보여주며 전통을 제대로 배우는 것이 새로운 산조를 만드는 출발점이며, 그렇게 익힌 음악을 자기만의 소리로 풀어낼 때 산조는 다시 살아 움직일 수 있다는 가능성을 보여준 무대였다.
이지영의 ‘나의 산조’, 기립박수로 답한 새로운 산조
학술포럼에서 ‘새로운 산조는 어떻게 만들어져야 하는가’를 놓고 뜨거운 논의가 이어졌다면, 서울대 이지영 교수의 ‘나의 산조’는 그 질문에 음악으로 답한 무대였다.

이지영 명인
이지영은 2011년부터 자신의 산조를 만들기 시작했다. 기존 명인들의 산조가 워낙 훌륭한 만큼 그것은 잘 보존하고 전승하되, 자신의 산조에서는 기존에 없던 새로운 가락을 만들어보겠다는 생각에서 출발했다.
그의 산조에는 그동안 경험한 여러 전통음악도 자연스럽게 녹아 있었다. 판소리 「춘향가」에서 이도령과 춘향이 서로 주고받는 음악적 대화에서 아이디어를 얻어 중중모리 가락을 만들었고, 오랫동안 즐겨 들었던 동해안별신굿의 장단에서도 새로운 리듬의 가능성을 찾아 자신의 산조에 담았다.
그리고 연주가 끝난 순간, 객석의 관객들이 일제히 자리에서 일어나 이지영에게 기립박수를 보냈다. 산조의 형식이 무엇인지, 즉흥은 무엇인지, 새로운 산조는 어디까지 가능한지를 두고 수많은 말이 오갔지만 그 순간만큼은 긴 설명이 필요하지 않았다.
이지영의 가야금이 들려준 긴 호흡과 새로운 가락, 장단의 변화가 관객들에게 그대로 전달된 것이다. ‘이것이 산조의 맛이구나’ 하는 감동을 객석 전체가 함께 나누는 듯했다.

원일 예술감독과 이지영 명인
연주 후 대담을 이끈 원일 예술감독은 이지영의 산조에서 기존 산조에서 흔히 들을 수 있는 익숙한 가락이 거의 나타나지 않는다는 점에 주목했다. 연주가 이어질수록 새로운 가락과 장단이 계속 등장한다며, 이지영이 새로운 산조를 만들기 위해 어떤 고민을 해왔는지를 하나씩 끌어냈다.
객석에서 이야기를 이어간 음악평론가 윤중강은 이지영의 산조가 가락뿐 아니라 한 대목을 끝맺는 방식까지 다양하다는 점에 주목했다. 특히 같은 방식으로 끝내지 않고 계속 다른 모습을 보여주는 점이 흥미롭다며, 자신이 과거 이지영 산조에 대해 글을 쓰면서도 미처 발견하지 못했던 부분이라 다시 한번 글을 쓰고 싶다는 뜻을 밝혔다.
김창조가 자신의 시대에 새로운 산조의 길을 열었듯이 산조는 완성된 과거에만 머무르는 음악이 아니라 오늘의 연주자에 의해 다시 만들어지고 성장할 수 있는 음악이라는 것. 이지영의 ‘나의 산조’와 연주가 끝난 뒤 쏟아진 기립박수는 이번 축제가 말하고자 했던 ‘살아 있는 산조’의 의미를 보여준 한 장면이었다.
조세린, 가야금·고토·고쟁을 한자리에서 비교하다
이번 축제에서 특히 흥미로웠던 프로그램 가운데 하나는 가야금산조 이수자 조세린의 특강이었다.

가야금산조 이수자 조세린
조세린은 한국의 가야금, 일본의 고토, 중국의 고쟁을 한자리에서 비교하고 직접 연주하며 세 악기의 역사와 구조, 연주법과 음색의 차이를 설명했다.
세 악기는 오동나무를 주요 재료로 사용하는 등 닮은 점이 있지만 현을 뜯는 방식과 손의 사용법, 연주 도구에서 상당한 차이를 보인다. 일본 고토와 중국 고쟁은 손가락에 도구를 끼워 현을 뜯는 방식이 발달한 반면 가야금은 손끝으로 직접 현을 뜯고 눌러 농현을 만들어낸다. 이러한 차이는 각각의 악기가 지닌 음색과 미적 감각으로 연결된다.
일본 고토의 오래된 전통곡을 실제로 들려주며 한국 산조가 탄생하기 훨씬 이전부터 존재했던 동아시아 현악음악의 역사까지 거슬러 올라간 점도 의미가 있었다. 고토와 고쟁의 개량과 현의 증가, 현대적인 연주기법, 저음악기와 현대 창작곡에 관한 설명도 이어졌다.
이는 한국의 산조를 고립된 음악으로 바라보지 않고 한·중·일 동아시아 현악문화의 역사적 흐름 속에서 바라보게 한 프로그램이라는 점에서 축제의 시야를 넓혔다.
좋은 축제, 더 많은 관객과 함께했더라면
무엇보다 개인적으로 가장 아쉬웠던 것은 축제의 마지막 프로그램이었던 명인산조 무대를 끝까지 함께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원장현 명인의 대금과 거문고, 태평소로 이어지는 무대는 이번 페스티벌의 대미를 장식하는 프로그램이었지만 이를 직접 보지 못한 아쉬움이 오래 남았다.
그러나 더 큰 아쉬움은 따로 있었다. 이틀 동안 이어진 학술토론과 연주 프로그램은 산조의 역사와 현재, 그리고 미래를 한자리에서 조망할 수 있을 만큼 내용이 충실했고, 국악계 안에서도 쉽게 만나기 힘든 밀도 높은 논의와 연주가 이어졌다. 그럼에도 이러한 축제의 가치가 충분히 알려지지 못해 정작 영암 군민들과 전국의 많은 산조 애호가들이 현장을 함께하지 못했다는 점은 안타까웠다.
내년의 김창조 산조 페스티벌은 올해의 깊이 있는 프로그램을 이어가면서도 보다 적극적인 홍보와 지역민의 참여를 통해, ‘가야금산조의 본향 영암’이라는 이름에 걸맞게 더 많은 사람들이 함께 숨 쉬고 즐기는 축제로 성장하기를 기대해본다.
김창조를 기리는 가장 좋은 방법은 또 다른 창조가 아닐까
2026 김창조 산조 페스티벌을 지켜보며 결국 하나의 질문으로 돌아오게 된다.
가야금산조의 창시자 김창조를 오늘 우리가 기억하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가 이미 존재하던 완성된 산조를 충실하게 전승했기 때문이 아니라, 자신의 시대에 존재했던 음악적 자산을 몸으로 받아들여 이전에 없었던 새로운 음악의 길을 열었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다면 김창조를 기리는 가장 적극적인 방식 역시 그의 음악을 박제하듯 보존하는 데만 있지는 않을 것이다.
전통 산조를 깊이 공부하고 지키는 일과 동시에, 오늘을 살아가는 연주자들이 자신의 삶과 시대를 담은 또 다른 산조를 만들어낼 수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렇게 만들어진 음악을 다음 세대가 듣고 다시 변화시킬 수 있어야 산조는 ‘과거의 위대한 음악’에 머물지 않고 살아 있는 장르가 된다.
이번 축제에서 나온 “산조는 시간을 먹고 자라는 음악”이라는 말이 오래 남는 이유다. 영암에서 이틀 동안 펼쳐진 연주와 토론은 ‘산조란 무엇인가’라는 질문에 하나의 정답을 내놓지는 않았다. 오히려 장단과 조, 성음과 즉흥, 전승과 창작, 권위와 자유, 연주자와 청중 사이에 수많은 질문을 새롭게 만들어냈다.
그러나 바로 그 질문들이야말로 산조가 아직 살아 있다는 증거일지 모른다. 김창조가 새로운 음악을 세상에 내놓았던 것처럼, 이제 산조는 다시 다음 김창조를 기다리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