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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리뷰] 고혹적인 춤으로 엮은 '인드라망'의 장엄 - 김묘선의 '인연'

흑즉시백, 백즉시흑 (黑即是白, 白卽是黑)을 구현하는 최고의 춤 '승무'
영남산조춤에서 소고춤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진 풍류의 향연
가벼움과 무거움의 변증법 '이매방류 살풀이'
인드라망의 인연을 타고 우리의 춤이 온 세계로 뻗어가기를

 

고혹적인 춤으로 엮은 '인드라망'의 장엄 - 김묘선의 '인연'

 

임병걸
(전)KBS 부사장, 저널리스트

 

"연기암의 물봉선 하나가 지는 데도 필연적인 이유가 있고,

그 꽃잎 위에 내린 이슬 하나에도 실로 머나먼 여정이 있습니다 "


- 이원규 '지리산 편지' 중에서

 

흑즉시백, 백즉시흑 (黑即是白, 白卽是黑)을 구현하는 최고의 춤 '승무'

 

새벽 3시 칠흑같은 산사의 어둠을 몰아내고 삼라만상을 미망에서 깨우는 독경소리처럼 목탁소리가 울렸다. 이윽고 검은 무대 아래 하얀 고깔, 하얀 장삼, 하얀 적삼을 입은 여인이 엎드려 오체투지한 모습을 드러낸다.

 

무대 뒤편 검은 벽에는 한 겨울 흰 눈을 맞은 낙락장송의 가지가 허공에 드리웠고 그 위로 보름달이 두둥실 떠 올랐다.

 

일주일 뒤면 우리 민족 최대의 명절이라는 추석 한가위인데 서울 강남구 봉은사로 선정릉 앞 민속극장 '풍류'에는 일주일 먼저 둥근 보름달이 떠오른 셈이다.


여인은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 길게 뻗은 흰 장삼을 휘휘 저으며 검은 어둠을 몰아내기 시작했다. 하얀 고깔 아래 고운 여인의 얼굴과 눈동자는 하늘을 향해 살포시 열리고, 소매 넓은 장삼자락도 가로 세로로, 때로는 대각선으로 얇게 가르며 허공의 어둠을 몰아내고, 여인의 손짓은 좌로 우로 위로 아래로 작은 원을 그리며 어둠을 헤쳐간다.

 

여인의 느릿느릿한 춤사위에 맞춰 묵직하고 느리게 시작한 염불 장단은 시간이 지나면서 도드리, 타령, 굿거리, 자진모리로 빨라지고 살얼음 개울가를 건너가듯 조심스럽던 여인의 춤사위도 거침없이 돌고 휘감고 차오르면서 무대를 달구기 시작했다.

 

김묘선 '승무'

 

캄캄한 밤 눈썹같다는 초승달이 떠올라 반달로 부풀고 이윽고 온 하늘을 눈부신 빛으로 꽉채우는 보름달처럼, 여인의 춤사위도 무대를 꽉 채우고 이내 객석으로 밀려들어왔다.


아무나 출 수도 없고, 아무나 추어서도 안되는 춤 '승무' 사회자 윤중강 선생의 말처럼 종교성과 예술성을 동시에 갖춘 전통춤 '승무'에 관한 한, 내게는 춤이 먼저 눈에 들어오기 보다는 고교시절 국어교과서에 실렸던 조지훈 시인의 '승무'가 먼저 머릿속에 박히곤 한다.

 

전통춤의 태두이신 이매방 선생의 승무를 오롯이 전승받은 김묘선 선생의 '승무'는 그러나 한결 다른 느낌으로 다가왔다.


조지훈 시인의 묘사처럼 "두 볼에 흐르는 빛이 고와서 서럽지도" 않았고, "복사꽃 고운 뺨에 아롱질 듯 두방울에 번뇌가 별빛처럼" 어른거리지도 않았다.

 

그런 애잔함과 서러움보다는 뭐랄까, 이제 세속의 욕망과 번뇌를 모두 내려놓은 원숙한 여인이 한결 담담해진 마음으로 부처님께 올리는 거룩하지만 그리 무겁지 않고, 수수롭지만 그리 처연하지 않은 편안한 춤사위로 느껴졌다.

 

더욱이 신이 오르고 동작이 민첩해진 끝무렵에는 도리어 부처님께 자신의 가진 것 가운데 가장 소중한 것을 자신있게 펼쳐보이는 듯한 여유마저 느껴졌다.


조지훈 선생은 일찌감치 불교적 가르침에 통달하고 조선의 전통예술에도 조예가 깊으셨으니 약관의 나이에 '승무'라는 최상승의 춤을 우리 언어가 다다를 수 있는 최고의 경지로 묘사하셨으리라. 스무살 젊은 혈기와 세속의 욕망이 들끓는 청년의 눈에 비친 조선 최고의 무희 최승희의 승무는 한없이 고왔으나 애처로왔을 터,

 

그러나 인생의 황혼에 접어든 내가 춤의 원숙기에 접어든 대가의 '승무'를 보노라니 그 사이를 흐르는 정서도 사뭇 달랐나 보다.


김묘선 선생의 '승무'를 보는 내내 머릿속에 떠오른 부처님의 가르침은 '색즉시공, 공즉시색'(色即是空 空即是色)이었다.

 

반야심경의 핵심 가르침이라는 이 여덟자가 김묘선 선생의 춤판에서는 '흑즉시백, 백즉시색'이라는 변형된 여덟자로 다가왔다.

 

세속에서 우리를 번뇌로 이끄는 온갖 탐욕, 정욕, 분노, 증오, 질투, 어리석음을 색으로 표현한다면, 이 모든 것을 섞은 색깔이 무명을 뜻하는 까만색이겠다.

 

반면 무명과 번뇌의 근원이라는 탐, 진, 치를 없애는 부처의 가르침을 '빛'이라고 한다면, 모든 색깔의 구원의 빛을 하나로 섞은 색깔이 흰색이리라.


김묘선 선생과 그 제자들이 꾸민 인연의 춤판 무대는 검은 배경과 흰 옷으로 뚜렷하게 대비돼 내 눈에 들어왔고, 검은 배경 위에 내린 흰 눈과 떠오른 둥근 달 역시 내게는 흑과 백의 극명한 대조로 느껴졌다.

 

반야의 지혜대로 무명(無明)은 깨달음의 원천이고, 번뇌는 해탈의 도구이니 색과 공이 둘이 아니듯이, 흑과 백 또한 둘이 아니리라.


춤을 몸으로 배워보지도, 머리로조차 제대로 공부해보지도 않는 내가 김묘선 선생의 춤사위를 평가하는 것은 주제넘은 일이다.

 

다만 승무를 보는 내내 그저 물 흐르듯, 대숲에 바람 불어오듯, 소나무 가지 위에 함박눈 소복소복 쌓이듯, 그 눈 벌판 위로 둥두렷 보름달이 떠오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 춤을 따라가다 보니 번뇌투성이인 내 마음도, 여기저기 삐걱대기 시작한 내 몸도 그저 편안했다고 말하려는 것뿐이다.

 


김묘선 선생의 일인 승무에 이어 7인의 남성 춤꾼, 9인의 여성 춤꾼, 다시 7인의 여성 춤꾼의 사뿐거리는 윤무에 이어, 북을 힘차게 두드리는 북춤에 이르러서는 프로그램 해설처럼, "가슴을 울리고 영혼마저 뒤엎어버릴 듯 세차고 풍요로우면서 멋들어져" 속이 다 후련했다.

 

영남산조춤에서 소고춤까지, 파노라마로 펼쳐진 풍류의 향연


무채색 승무의 조용한 춤판이 걷히고 이윽고 무대에서는 우리 풍류의 고갱이들이 총출동하는 단아하고 고혹적이고 신명나는 춤판이 열렸다.

 

정진욱 경남대 교수의 일인무 '영남산조춤'에서는 님을 그리워하는 여인의 몸짓이 그야말로 '절절하게' 전해졌다.

 

정진욱 '영남산조춤'

 

영남지방의 온갖 춤기법을 버무렸다는 영남산조춤의 부제는 왜 '몸의 눈'일까? 무용자의 손끝에서 춤을 췄던, 님 오실 날 그리며 고운 얼굴을 비추는 거울 같은 역할을 한 '방구부채'가 눈이라는 말일까?

 

이제나 저제나 님 오시기를 기다리는 여인의 팔 다리 손 어깨 허리 손가락 마디마디, 내쉬는 한숨 한자락까지 온통 눈 아닌 것이 없다는 말일까?


흔히 한민족의 정서를 '한'이라고 이야기하지만 정진욱 교수의 영남산조춤을 보노라면 '한'은 분명 서럽고 슬프기만 한 소극적 정서 아님을 알게 된다. 도리어 '한'은 '신명'으로 승화되는 역동적인 정서인 듯하다.

 

그녀의 춤은 분명 떠나간 님의 회귀를 기다리는 연약하고 수동적인 몸짓에서 시작했지만, 끝으로 갈수록 그리운 님을 찾아나서는 듯한 기운차고 생동감 넘치는 능동의 정서로 대반전을 보여주었다.

 

가락은 휘몰이로 달려가고 자그마한 여인은 지상에서 하늘의 달을 향해 뛰어오르니. 억압에서 해방으로 박차고 나아가는 당찬 조선 여인의 기개가 느껴졌다.


9명의 여인이 화려하지만 사치스럽지 않은 한복을 차려입고 남도 민요 성주풀이인듯한 소리에 맞춰 흥겹게 선보인 '입춤'은 관객들의 엉덩이를 들썩이게 했고, 춤사위에 맞춰 객석에서는 절로 박수 장단이 이어졌다.

 

'입춤'

 

영남 산조에 이어 호남기방의 세련되고 요염하기까지 한 입춤도 이매방 선생의 손길을 거쳐 탄생했다고 하니, 새삼 선생이 이 땅의 춤에 남겨놓으신 거대한 족적에 감사와 감탄이 절로 난다.


입춤이 여인들의 섬세하고 애교넘치는 춤사위였다면 이어진 '사풍정감'은 남정네들의 풍류와 호방함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사풍정감'

 

근엄한 유교의 가르침을 상징하듯 검은 갓을 머리에 쓰고 흰 도포를 입은 선비들이 지조와 절개를 뜻하는 매화 부채를 쥐락펴락 하면서 도포자락을 앞뒤로 열었다 닫았다, 거드렁거리는 양반다리로 물러갔다 나아갔다, 때로 빙글빙글 돌기도 하면서 흥취를 한껏 부렸다.

 

무대는 주안상이라도 펼쳐놓고 동동주 한 잔 걸치고 시 한 수 읇조리고, 다시 걸판지게 한판 추어야 될 것같은 흥에 달아올랐다.


유교의 태두 공자께서도 시(詩)와 예(禮)를 통해 사회질서를 세우고, 악(樂)을 통해 질서를 완성한다고 했으니, 따분한 경전에만 매달리던 선비들도 때로 정과 흥을 멋들어진 춤으로 푸는 풍류의 시간이 어찌 필요하지 않았을까.

 

다른 춤은 몰라도 선비들의 그윽한 남성적 기품과 내면의 풍부한 파토스를 절제의 미학으로 풀어내는 '사풍정감'만큼은 나도 꼭 한번 배워보고 싶다.

 

'검무'

 

얼핏 들으면 살벌할 것 같은 '검무'도 날렵하고 요염하기까지 한 여인들의 춤사위로 변모하면 얘기가 다르다. 앙징맞은 두 개의 검을 요리조리 흔들어대며 포졸의 모자를 연상시키는 빨간 모자를 쓴 여인들이 들락날락, 한없이 사뿐거리는 춤을 보노라니 저런 포졸이라면 경범죄라도 지어서 잡혀가보고 싶다는 응큼한 생각도 했다.

 

가벼움과 무거움의 변증법 '이매방류 살풀이'


인생을 살다보면 누구나 시련과 불행을 맞게 된다. 예고없이 때로는 한꺼번에 밀려드는 쓰나미 같은 재앙 속에서 인간은 두려움과 공포를 느끼게 되고, 자연 초자연적인 무엇인가에 매달리게 된다.

 

'벽사진경' (劈邪進慶) 무속의 존재이유이기도 한 '사악한 기운을 몰아내고 경사스러운 것을 오게' 해달라는 간절한 기원이 만들어낸 몸짓, 살풀이춤은 언제 봐도 비장하면서도 신비롭다.

 

김묘선 '살풀이춤'

 

불과 물, 물과 기름, 공포와 환희, 한과 신명..... 양립하기 불가능할 것 같은 이 상극의 자연요소, 감정요소들이 서로 교차하면서 만들어내는 최고의 미학, 카타르시스의 절정이 아닌가 한다.

 

그러니까 살풀이춤이야말로 머리로 하는 로고스의 영역이 아니라, 철저하게 몸으로 느껴야 하는 파토스의 영역이라는 말이다.


이매방 선생이 고도로 다듬어 내신 '살풀이춤'을 충실하게 전승한 김묘선 선생의 살풀이 또한 내게는 '한'보다는 '신명'이, '눈물'보다는 '환희'가 느껴지는 춤이었다.

 

 

그녀가 작은 발을 천천히 내딛는 순간 순간, 50킬로그램도 되지 않는 작은 몸이 누르는 엄청난 힘, 용암덩어리 지구를 잠재우는 듯한 저 묵직한 힘은 도대체 어디서 오는 것인가?

 

수천년 내려온 피맺힌 여인의 한이 그 발아래 녹아내리고, 전쟁과 질병 굶주림과 비바람에 통곡하던 민초들의 한이 그 발 아래서 풀어진다.

 

그런가 하면 민들레 홀씨보다 가벼워져 하늘하늘대는 저 여인의 가는 손가락 따라 천근만근 가슴을 짓누르는 시름들이 허공으로 날아간다.

 

빙글빙글 돌아가는 여인의 허리춤이 일으키는 회오리 바람 따라 삶을 갈아먹던 사악한 기운들이 자취를 감추며 사라져간다.


인문학자 문철영은 이매방류의 살풀이춤을 이렇게 평했다.

 

"그의 승무와 살풀이춤에는 춘하추동과 흥망성쇠의 거대 서사가 깃들어 있고, 삶과 죽음 사이의 거리가 없었다."

 

 - 문철영 '하늘이 내린 춤꾼 이매방 평전'


가벼운 신명은 묵직해지고, 무거운 근심은 가벼워지는 살풀이춤을 보노라면 내 몸과 마음 어딘가에 진드기처럼 붙어있는 걱정과 근심도 떨어져나간다.

 

가슴이 후련해진다. 스스로 떨쳐버리기에는 버거워졌다는 말, 젊어서는 대수롭지 않게 보았던 살풀이춤이 이렇게 좋아진다니, 나이가 들었다는 말이기도 하리라.

 

인드라망의 인연을 타고 우리의 춤이 온 세계로 뻗어가기를


김묘선 선생과 그 전수자들이 펼친 이번 춤판의 제목은 '인연'이었다. 사회를 맡은 윤중강 선생이 '인연'을 공연의 제목으로 한 이유를 묻자 그녀는 이렇게 말했다.

 

"우리의 시간은 오늘도 춤과 함께 흐르고 있습니다. 또 부모와의 인연, 스승과 제자의 인연, 사회와의 인연, 관객과의 인연, 우리는 무수한 인연 속에 살고 있습니다."


지당한 말이다. 따지고 보면 세상 속에 나올 때 인간은 실존주의자들의 말처럼 그저 자신의 의지와 관계없이 '던져진' 존재일지 모르겠으나, 세상에 나올 때까지의 조상들과의 인연, 나온 후 낳아주고 길러주고 도움주신 분들과의 부모와 이웃들의 인연을 생각하면 이 땅에 존재하는 모든 생명체들은 인연의 덩어리인 셈이다.

 

그녀는 또 춤과 인연의 관계를 이렇게 말한다

 

"춤의 소중한 인연은 눈빛으로 시작하지만, 손끝의 정성으로 깊어지고, 하나의 춤으로 이어져 비로소 찬란해집니다"


한국 전통 춤을 매개로 그녀와 전수자들이 만들어가는 인연이 우리 전통춤을 어제에서 오늘로, 오늘에서 미래로 흘러가고 있고, 영남과 호남에서 한반도로, 한반도에서 세계로, 세계에서 우주로 흘러가고 있다.


화엄경에는 부처가 계시는 도솔천 내원궁에 걸려있는 보석구슬망을 '인드라망'이라고 부른다. 이 구슬 속 생명체들은 촘촘히 그물망처럼 연결돼 있고 서로를 비추고 있다. 중중무진의 세계에 사는 존재들은 이렇게 서로 관계맺고 의지하면서 살아간다.

 

불교의 핵심가르침인 '연기'(緣起)도 '인연'이라는 말이다.


그녀는 또 이렇게 말한다

"한 자락의 흰 수건에 수많은 시간이 흐르고, 한 번의 손끝에 스승의 숨결이 묻어납니다. 슬픔도 아픔도 기억도 품은 채 그 모든 마음을 춤으로 풀어내겠습니다."


그러니까 70 평생 그녀가 춤판 위에서 풀어낸 춤은 태어나면서부터 그녀가 맺어온 무수한 인연들의 수많은 시간과 추억, 기억을 몸으로 풀어낸 것일 게다.


실제로 팜플렛을 보니 그녀가 대나무 뿌리처럼 온누리 사방에 뻗어내린 춤의 인연은 놀랍다. 인천, 대구, 목포, 대전, 부산, 광주, 한반도를 넘어 일본 나고야, 도쿠시마, 오사카 그리고 미국 뉴저지, 필라델피아, LA, 텍사스까지, 그러니까 지금 세계를 휩쓸고 있는 한류 가운데 전통 춤 영역에서의 한류는 김묘선 선생으로부터 시작된 셈이다.


그녀는 앞으로의 소망을 묻는 사회자의 질문에 '승무'가 세계무형문화유산에 등재되는 것이라고 했다. 또 지난해에 이어 내년에도 미국의 수도 워싱턴에 있는 세계 최대의 자연사 박물관 '스미소니언'에서 승무를 펼칠 예정이라 했다.

 

전통 춤을 여전히 정당하게 평가하지 않는 이 척박하고 외로운 땅에서 혼신의 힘으로 황무지를 개척해가는 김묘선 선생과 그 전수자들께 한없이 미안하고 감사하다.


뜨거웠던 여름을 몰아내는 초가을의 선들바람 같이 청량하기 그지없는 이성준 선생의 대금산조에 이어 아취에 흥취를 더한 '소고춤'으로 이번 춤판의 인연은 대미를 장식했다.

 

김묘선 선생이 재구성한 소고춤을 따라 가을이 오고 있었다. 아리따운 춤꾼들의 방망이 따라 앙징맞은 소고는 팽이처럼 돌고, 소고 따라 눈부신 여인들의 비단치마폭도 돌았다.

 

끓어오르는 신명은 무대를 돌아 객석으로 넘어와 돌고 또 돌고, 흥에 겨운 박수소리와 추임새도 이 객석 저객석을 돌고, 신록의 터널을 지나 무더운 여름을 지나 계절도 풍요로운 가을로 돌았다.


연신 흐뭇한 표정으로 공연을 지켜보시던 국수호, 박범훈, 최창덕 선생님..... 김묘선 선생님과 끈끈한 인연으로 전통 춤, 그 고난과 영광의 시간을 함께 흘러가고 계시는 대가 선생님들도 흥겨운 박수로 춤의 도반 김묘선 선생과 그 제자들을 격려해주셨다.

 


김묘선 선생의 이름 가운데 함자 '묘'를 사전에서 찾아보니 '별이름 묘'라고 돼 있다. 뜻을 풀어보자면 토끼(卯)가 해(日)를 머리에 이고 있는 셈이다.

 

토끼처럼 작지만 영민하고, 성실하게 꾀 안부리고 춤 인생 외길을 달려 온 그녀의 머리에 늘 햇님이 밝은 빛을 비춰주기를 소망한다. 하여 그녀의 소원대로 우리 예술과 인문정신의 정수 '승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에 등재되고, 우리의 전통춤이 더 많이 더 멀리 더 높이 오대양육대주로 뻗어가기를 응원한다.


내년 스미소니언 박물관 공연에 가려면 술 한잔 줄이고 부지런히 노자돈을 모아야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