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국악진흥법’은 과연 순항하고 있는가
문화 칼럼니스트
김승국
2023년 「국악진흥법」이 국회 본회의를 통과하고 2024년 본격적인 시행에 들어갔을 때, 국악계 전체는 비로소 오랜 염원을 풀었다며 열렬히 환호했다. 국악의 보전과 전승을 넘어 창작과 교육, 전문인력 양성, 국악문화산업의 진흥 등 지속 가능한 발전을 위한 법적·제도적 기반이 마침내 마련됐기 때문이다. 우리 국악이 K-컬처의 새로운 핵심 콘텐츠로 도약하리라는 기대는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다.
그러나 법 시행 이후의 현주소를 돌아보는 국악 현장의 공기는 냉랭하다 못해 참담하다. 당시의 뜨거웠던 기대는 어느새 깊은 한숨과 성토로 바뀌어 있다. 문화체육관광부가 거창하게 발표한 '제1차 국악진흥 기본계획(2025~2029)'의 화려한 청사진 뒤편에는, 주무 부처의 탁상행정과 무책임한 거버넌스 파행이 뼛속 깊이 자리 잡고 있기 때문이다.
지금 국악계는 묻고 있다. 과연 ‘국악진흥법’은 바른 항로를 따라 순항하고 있는가? 현장의 대답은 냉정하게 ‘아니다’이다. 선언만 요란할 뿐, 이를 실천할 정부의 진정성과 의지는 보이지 않는다.
컨트롤타워 부재가 낳은 '유령 진흥계획'의 비극
문화체육관광부는 5개년 기본계획을 거창하게 발표했으나, 정작 법 제16조에 명확히 규정된 '국악진흥 전담 지원기관' 지정 조치조차 취하지 않고 있다. 공사를 진두지휘할 현장 소장이 없으니, 기본계획은 공중에 뜬 구호에 그치고 만다. 관련 사업들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 예술경영지원센터, 한국문화예술위원회, 국가유산진흥원, 국립무형유산원 등 기존 유관기관들에 임시방편으로 쪼개져 위탁 수행되는 파행을 겪고 있다.
5개년 법정 계획이라는 거대한 배가 출항했는데, 정작 키를 잡고 항해를 책임질 정식 선장이 없는 격이다. 책임지고 예산을 집행하며 성과를 도출할 컨트롤타워가 부재한 상황에서, 정부의 정책 선언은 현장에 아무런 실질적 온기를 전해주지 못하는 '유령 정책'으로 전락하고 말았다.
전문성을 무시한 '졸속 통폐합', 전형적인 행정 편의주의
더욱 기가 막힌 대목은 전담 지원기관 지정 문제를 둘러싸고 정부가 검토·추진 중인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과 국악방송의 통폐합안(가칭 국악문화산업진흥원 신설안)이다. 이는 현장의 구조적 맥락과 전문성을 완전히 무시한 행정 편의주의적 폭주다.
두 기관은 모두 전통예술의 발전에 기여하지만, 그 기능과 전문성의 DNA가 전혀 다르다. 국악방송은 방송·미디어를 통해 국악을 알리고 향유 기반을 넓히는 전문 매체다. 반면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현장 예술인과 단체를 지원하고 공연의 창작과 유통을 담당하는 현장 지원기관이다. 전통공연예술 기획과 창작 현장 지원이 본업인 재단과, 24시간 미디어적 전문성을 핵심으로 하는 언론 기관을 단지 '국악'이라는 이름이 겹친다는 이유만으로 하나로 묶겠다는 구상은 국악인들 사이에서 실소를 자아내고 있다.
이는 ‘국악진흥법’ 제16조(지원기관)와 제17조(국악방송)로 두 기관의 법적 근거를 엄연히 따로 명시한 법률의 제정 취지마저 정면으로 무시하는 행위다. 정부의 '공공기관 가짓수 줄이기'라는 외형적 실적을 채우기 위해 억지로 밀어붙인 전형적인 탁상행정의 산물에 불과하다.
게다가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은 그동안 최고 책임자가 비상근으로 운용되며 책임경영의 부재와 행정력 약화라는 고질병을 앓아온 조직이다. 이사장 상임화나 책임경영 체제 확립을 통해 기관의 기초 체력과 내실부터 다지기는커녕, 무리한 덩치 키우기 통합만 시도하니 현장의 불신이 극에 달하는 것은 필연적인 결과다. 조직의 외형을 바꾸는 꼼수 부리기에 앞서, 정책의 목표와 추진체계를 분명히 하는 것이 순서다.
파견직 뒤에 숨은 주무 부처, 정책 의지는 있는가
그렇다면 이제 물어야 할 것은 법과 계획의 유무가 아니다. 그 법과 계획을 실제로 이행할 정부의 조직과 인력, 행정적 의지가 충분히 갖추어져 있느냐는 것이다.
문화체육관광부 홈페이지에 공개된 공연전통예술과 업무분장표를 확인하면서 이러한 의문은 확신으로 바뀌었다. 업무분장표상 국악진흥 업무를 전담하는 주무 부처의 정규직 사무관은 단 한 명도 없다. 대신 국립국악원에서 파견된 학예관 1명과 학예사 1명이 해당 업무를 간신히 도맡아 처리하고 있다.
국악에 대한 전문성을 갖춘 학예직이 업무를 담당하는 것 자체를 문제 삼는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들의 전문성과 노고는 존중받아야 마땅하다. 그러나 국악에 대한 이해와 국가 정책을 기획·조정하며 실행하는 행정 역량은 엄연히 다른 영역이다. 국악진흥 기본계획을 구체적인 사업과 예산으로 전환하고, 정부 내 타 부처와 협의하며 관계 기관의 역할을 조정하는 일에는 강력한 정책·행정 권한을 가진 정규 행정인력이 필수적이다.
특히 파견 인력 중심의 임시방편적 구조에서는 부처 내부의 지속적인 소통과 협업, 담당자 교체 이후의 정책 연속성을 기대하기 어렵다. ‘국악진흥법’을 제정하고 5개년 기본계획까지 수립한 정부가 정작 그 정책을 이끌어갈 정규직 전담 사무관조차 두지 않았다면, 정책의 실효성과 책임성은 어디에서 담보할 수 있겠는가. 주무 부처 내부에 전담 조직과 정규 인력도 갖추지 않은 채 산하 기관의 통합부터 추진하는 것은 정책의 우선순위가 완전히 뒤바뀐 모순이다.
국악의 독자성을 지우는 장르 중심 행정의 한계
현재 국악진흥 업무를 담당하는 부서의 명칭은 '공연전통예술과'다. 연극·무용·음악 등 다양한 공연예술 분야를 함께 아우르려는 취지는 이해하나, 우리 민족의 문화적 정체성이 축적된 국악을 대하는 행정으로는 지극히 미흡하다.
국악은 단지 서양 예술과 대등하게 분류되는 전통공연예술의 '한 장르'에 그치지 않는다. 우리 문화의 역사적 뿌리이자, 오늘날 세계로 확산하는 K-컬처를 뒷받침하는 핵심 자산이다. 창작 생태계 조성, 청년 국악인 육성, 디지털 환경에 맞는 산업화, 국제교류 등 복합적인 과제를 안고 있는 국악 정책을 일관성 있게 추진하려면 국악을 독립적인 정책 영역으로 설정해야 한다.
따라서 공연예술 전반을 담당하는 '공연예술진흥과'와 국악 정책을 전담하는 '국악진흥과'를 분리 신설하는 방안을 적극적으로 검토해야 한다. 이는 국악에 특혜를 주자는 주장이 아니다. 정책의 대상과 목적이 뚜렷한 분야에 그에 걸맞은 행정적 책임과 전문성을 부여하자는 최소한의 요구다.
‘국악진흥법’을 정상 궤도로 돌려놓기 위한 3대 촉구 과제
‘국악진흥법’이 한낱 보여주기식 행정의 헛구호로 끝나지 않고, 피폐해진 국악 생태계를 살리는 참된 토대가 되기 위해서는 지금이라도 정부가 진정성을 가지고 행정의 기본 원칙을 바로잡아야 한다.
첫째, 문체부 내 '국악진흥과(가칭)'를 신설하고 정규 전담 인력을 즉시 확충하라.
소수 인원과 파견직으로 연명하는 기형적 구조를 철폐해야 한다. 과 단위의 정식 전담 조직을 신설하고 전문 행정력을 갖춘 정규 인력을 배치하는 것만이 정책 추진력과 연속성을 확보하는 유일한 출발점이다. 정부가 먼저 답해야 할 질문은 '기관을 어떻게 합칠 것인가'가 아니라, '국악진흥법이 약속한 정책을 누가, 어떤 권한과 자원으로 책임지고 실행할 것인가'이다.
둘째, 국악방송 통폐합 안을 즉각 철회하고 독립적 전담 지원기관을 지정하라.
미디어 고유의 자율성과 전문성을 지닌 국악방송의 억지 통폐합 구상을 중단하고, 법적 취지에 맞게 각자의 영역을 존중해야 한다. 아울러 전통공연예술진흥재단을 법상 전담 지원기관으로 공식 지정하되, 조속히 '상임 이사장' 체제로 전환하여 책임경영과 전문 행정의 기틀을 단단히 다져야 한다.
셋째, 원형의 '보존·전승'과 현대적 '산업화'의 명확한 이원화 전략을 확립하라.
모든 국악 예술을 단편적인 '산업화'나 'K-컬처'라는 유행의 단일 잣대로 평가해서는 안 된다. 국립국악원과 국가유산원을 중심으로 한 정통 국악의 '철학적 보존·전승 축'과, 전담 지원기관을 통한 '현대적 재해석 및 산업화 축'을 명확히 이원화하여 전통의 깊이와 대중적 확장이 건강하게 선순환하는 생태계를 구축해야 한다.
정부의 진정성과 실천 의지를 촉구한다
국악은 과거의 유물로 박제되어서는 안 되며, 전승의 토대 위에서 새로운 창작을 낳고 미래 세대의 자산으로 이어져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현장의 전문성과 정부의 정책 역량이 긴밀하게 결합해야 한다. 법률 조항 몇 개를 만들고 기본계획 청사진을 발표했다고 해서 정부의 책무가 끝나는 것은 아니다. 이제는 그 약속을 실현할 실질적인 행정적 기반을 갖추어야 할 때다.
정부는 화려한 정책 발표회와 공공기관 가짓수 줄이기라는 수치 맞추기에 혈안이 된 현재의 '껍데기 행정'을 즉시 멈추어야 한다. 지금이라도 국악 현장의 절박한 목소리에 귀를 기울이고, 정책을 제대로 추진할 수 있는 단단한 인프라와 조직 체계부터 바르게 세워야 한다.
‘국악진흥법’을 만든 정부가 이제 답해야 한다. 국악을 진흥하겠다는 국가의 약속을, 그에 걸맞은 조직과 인력과 예산으로 책임질 의지가 있는가? 국악계가 간절히 바라는 것은 허울뿐인 법률 조항이 아니다. 우리 소리의 맥을 이어가는 국악인들이 자부심을 품고 마음껏 나래를 펼칠 수 있도록, 실질적이고 지속 가능한 생태계를 구축해 주겠다는 정부의 진정성 있는 '실천'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