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춤꾼이 되다니, 이 낯설고도 눈부신 고행
글 김세철(의사/재인청춤전승보존회)
소리를 배운 지 채 1년이 되지 않았을 때였다. 소리 선생님의 정기공연 무대에 불려 나가 소리를 냈다. 처음엔 무척 긴장되고 떨리더니, 차츰 무대가 익숙해지자 욕심이 생겼다. 장단에 맞춰 팔다리를 가볍게 휘저으며 '발림(소리꾼의 몸짓)'을 해보고 싶었다. 그러나 마음과 달리 팔다리는 바위처럼 굳어 있었다. 초등학생 시절 학예회 무대에서 차렷 자세로 얼어붙어 노래하던 아이의 모습이 노년의 나에게서 겹쳐 보였다. 결국 나는 발림의 근간이 되는 전통춤의 기본동작을 배우기로 마음먹었다.
고양시에 있는 병원 업무를 마치고 나면, 과천에 있는 춤 선생님을 찾아 머나먼 길을 나섰다. 김포공항역까지 차로 이동한 뒤 다시 지하철로 갈아타기를 두 시간, 겨우 수업 시간에 맞춰 도착하곤 했다. 엄동설한 김포공항역의 칼바람은 매서웠다. 내가 승용차에서 내려 지하철로 서둘러 가는 모습을 보고 기사는 병원장님이 무엇이 아쉬워 사서 저런 고생을 하시지, 의아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곤 했다. 여름엔 소나기에, 겨울엔 폭설에 흠뻑 젖어 밤 11시가 넘어 귀가하는 내 꼴이 오죽했으랴. 아내는 측은한 듯 "그게 그렇게 좋아요?"라고 물었지만, 나는 즉답을 찾지 못했다. 그저 그 춤의 길 위에 서 있는 것 자체가 이유였기 때문이다.
소리를 배울 때는 효율성을 따져 집 근처를 고집했건만, 춤 앞에서는 그 논리가 무색해졌다. 길 위에서 허비하는 시간이 너무 많아 삶의 효율은 바닥으로 떨어졌지만, “기본기 3개월만 버텨보자”는 오기가 나를 지탱했다.
평생 춤을 배워본 적도, 배울 상상을 해본 적도 없었다. 처음 무용복을 입고 슈즈를 신었을 때의 그 어색함과 부끄러움이란. 거울 속의 내 모습이 꼴불견처럼 느껴져 누가 볼세라 어깨를 잔뜩 움츠렸다. 3개월이면 소리에 맞춰 팔다리를 움직이는 데 충분하리라 믿었던 것은 오만이었다. 착각에는 커트라인이 없다더니 딱 내 꼴이었다. 72년이라는 세월을 견뎌온 노구는 머리털 나고 처음 해보는 동작 앞에서 속수무책이었다. 헬스장에서 애써 키운 어깨 근육은 춤의 유연성을 가로막는 방해꾼이 되었을 뿐이다. 내 팔다리임에도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굴욕의 시간이었다. 결국 나는 선생님의 권고에 따라 「팔박타령」 춤부터 다시 시작하며 1년의 시간을 온전히 춤의 기본에 바치기로 했다.
수업을 받을 때는 고난의 연속이었다. 남들 모두 오른쪽으로 갈 때 나 혼자 왼쪽으로 가고, 남들 앞으로 나갈 때 뒤로 물러나며, 회전 궤도를 이탈하여 벽에 부딪히기도 하였다. 병원에서는 1,600명의 직원을 지휘하는 수장이건만, 연습실에서는 길 잃은 어린아이처럼 수모를 자처하고 있었다. 당장이라도 그만두고 싶었으나, 열정적으로 가르치는 선생님의 눈빛을 차마 외면할 수 없었다. 그렇게 1년 반이 흘러 동료들과 군무로 첫 무대에 올랐다. 태어나 처음으로 춤을 추며 무대를 밟던 그 순간, 나는 미지의 세계를 여행하는 탐험가가 된 듯한 희열을 맛보았다.
드디어 소리 공연에 맞추어 발림을 별도로 배웠다. 하지만 소리와 춤을 합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고비였다. 소리에 신경 쓰면 팔다리가 멈추고, 발림에 신경 쓰면 목소리가 잠겼다. 머리로 외워 춤을 추려 하니 몸과 소리가 따로 놀았다. 춤 수업은 주로 여성들과 함께였는데, 공연 때마다 좁은 분장실에서 서로 등을 돌린 채 급히 옷을 갈아입는 풍경도 처음엔 곤혹스러웠다. 그러나 환경은 사람을 변화시킨다. 부끄러움은 어느덧 사라지고, 이제는 무용복을 입은 채 당당히 지하철을 타고 귀가할 만큼 내면이 단단해졌다.
어느덧 춤을 배운 지 9년째에 접어들었다. 병원 업무에 지쳐 "이 짓을 계속해야 하나" 싶은 날도 많지만, 신기하게도 수업을 마치고 돌아오는 길은 몸이 한결 가벼워졌다. 리듬에 몸을 맡기고 스트레스를 털어낸 치유의 마법일 것이다. 「팔박타령」 춤과 「굿거리타령」 춤을 거쳐 「입춤」에 이르기까지, 나는 춤의 아름다움은 화려한 기교가 아니라 견고한 기본기에 있다는 진리를 몸소 터득했다.
무대 위에서 홀로 서는 두려움은 여전하지만, 곁에서 함께 호흡하는 동료들이 있어 든든하다. 소리나 춤을 배우는 남자들 중에는 배우자의 반대로 포기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고 한다. 외간 여성과 호흡을 맞추는 모습이 질투의 대상이 되기 때문이다. 그런 면에서 나는 참 복이 많은 사람이다. 아내는 단 한 번도 시샘의 눈빛을 보낸 적이 없다. 오히려 거실에서 내가 춤 연습을 하면 소파에 앉아 아낌없는 박수를 보내준다.
아내의 그 따뜻한 박수 소리가 있기에, 나는 오늘도 노구의 몸을 이끌고 우아한 춤꾼을 꿈꾸며 연습실로 향한다. 굳어있던 내 삶에 소리가 찾아오고, 이제 그 소리가 춤이 되어 흐르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