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특집] 가무악(歌舞樂)을 바탕으로 이론까지 겸비한 이 시대의 춤꾼 이성자
가무악(歌舞樂)을 바탕으로 이론까지 겸비한 춤꾼 이성자는 함흥 출신의 명무 장홍심의 큰 사랑을 받았던 애제자이고 함경북도 무형문화재 제3호 함경북도 선녀춤 보유자이기도 하다.
여유로운 가정환경과 부유했던 집안에서 태어나 행복한 유년시절을 보내던 이성자 선생은 초등학교 시절부터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고 거문고뿐만 아니라 장구와 북, 기타와 드럼까지 다룰 수 있을 정도로 악(樂), 가(歌), 무(舞)에 능했고 다재다능한 예술적 재능을 타고난 천상의 예인(藝人)이라는 주변의 칭송을 듣던 이성자 선생은 함흥 출신의 명무로 알려진 장홍심 선생으로부터 본격적인 함흥 권번의 전통춤을 배웠다.
2012년에는 함경북도 무형문화재 예능보유자로 지정되어 전통춤 보전 및 전승에 열정을 바치고 있는 이성자 선생을 만나 일생을 예인으로 살아온 과정과 큰 스승으로 모셨던 장홍심 선생님에 대한 회고와 이성자 선생의 춤을 이어가고 있는 제자 송미숙(진주교육대학교) 교수에 대한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당대 최고의 스승 장홍심과 이성자의 예술세계와 학습과정을 일문일답 형식으로 진행하였다.
▶선생님은 평안남도에서 출생하셨고 일생을 무용계에서 예술혼을 불태우셨다. 선생님의 유년시절은 어떠셨나요?
평안남도 성천, 대동강이 흐르는 마을의 다복한 가정에서 가족들의 사랑을 듬뿍 받으면서 태어났어요. 근데 태어난 것만 평안남도지 서울에 왔지요. 초등학교 5, 6학년 시절부터는 좋은 선생님들께 가야금을 배우기 시작했고 여유로운 집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악(樂), 가(歌), 무(舞)를 모두 배울 수 있었던 것은 행운이었어요.
다양한 악기를 다룰 수 있어야 그 세계를 모두 아우르고 완성된 춤을 출 수 있다고 생각해요. 그렇기에 어렸을 때 아무런 어려움없이 배울수 있는 기회를 갖을수 있었던 것은 다행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아요. 지금은 전공자들이 각자의 전공에 매진하지만, 예전에는 선생님들이 악, 가, 무를 기본으로 하셨던 것 같습니다.
1956년부터 한영숙 선생에게는 무용을, 김옥진 선생과 김윤덕 선생에게는 기악을, 박초월 선생님에게는 창을 배웠어요. 그리고 그 후 1967년에 ‘장홍심 무용연구소’에 들어가면서 장홍심 선생님과 제대로 된 인연이 된거죠. “악기, 노래, 춤 다 배워야 제대로 된 예술을 할 수 있다”라고 생각이 든 것은 그 즈음이었어요.
무용콩쿨 끝나고 장홍심 선생님과 이성자
▶ 어린시절 학습과정에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나는 어렸을 때 참 꿈이 많았죠. 그래서 할 이야기도 많아요. 제가 어릴 때 엄마 무릎에 앉아서 노래를 부르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춤을 추기도 했다고 하시더라구요. 한 마디로 흥이 많았던 거죠. 어릴 때 부모님께 야단을 맞아 시무룩했다가도 엄마가 “춤추게 해줄게”라고 하면 금방 기분이 좋아져서 하루종일 춤을 추었다고 하시더라구요.
라디오에서 음악이 나오면 그 가락을 기억했다가 방에 가서 똑같이 연습해보곤 했다고 하시더라고요. 이후 피아노도 배워서 동아일보 콩쿨에서 입상을 하기도 하고 음악이나 춤 이런 부분에 있어서 유난스러웠던 것 같아요. 나를 지금껏 살게 하는 원동력이 된 것 같아요. 행복한 삶이죠.
▶ 예술학교 다니시면서 기억나는 에피소드가 있다면?
옛날 돈암동 예술학교에 가야금을 배우러 갔는데 선생님이 너무 무서워서 다들 그만둔다는 거에요. 다 벌벌 떠는거에요. 그 정도로 선생님이 무서우셨어요. 그런데 저는 무서운 것보다 배우는게 더 좋았나 봐요.
선생님이 ‘너 할 수 있어?’ 하셔서 ‘할 수 있어요’ 그랬어요. 처음으로 ‘염불’을 배웠는데 선생님이 다 외워오라고 시켰어요. 말이 안되는 과제였는데 내가 밤을 새워서 해갔거든요. 그랬더니 선생님께서 ‘너는 뭘 해도 되겠다’라고 하시면서 격려해 주셨던게 기억이 납니다. 그 선생님이 가야금을 가르켜 주셨던 김옥진 선생님인데 최초로 레코드 취입도 하셨던 아주 대단하신 분인데 일찍 돌아가셔서 기록이 없어요. 그게 참 아쉬워요.
학교에는 한영숙 선생님도 계셨고 박초월 선생님도 계셔서 진짜 야무지게 배웠죠. 창을 배우긴 배웠는데 암만 봐도 내가 소리는 아니었나봐요. 그래서 춤을 본격적으로 추기 시작했는데 큰 언니들은 여성창극단 멤버들이었어요. 대단했어요. 언니들 보면서 악가무 세 가지 다 배우고 연습하고 그랬어요.
▶ 학교를 졸업 후에는 어떤 배움이 있으셨는지?
시조, 가야금, 무용을 계속 이어서 배웠어요. 좀 커서 김윤덕 선생님과 황병기 선생님도 만났는데 김윤덕 선생한테 산조를 배웠거든요. 선생님 가락은 춤추기가 참 좋아요. 가락이 아주 깊이가 있어요.
▶ 장홍심 선생님이 사랑하는 제자셨다고 들었는데, 스승에 대한 회고를 말씀해주시면?
우리 선생님은 20년간 부산에 계셔서 좀 사실 아쉬워요. 국보죠 우리 선생님, 지금도 인정하는 명무이시긴 하지만 서울에 계셨더라면 더 유명해지실 수 있지 않았을까요? 선생님 가시는 발걸음을 정리를 좀 해둘걸하는 아쉬움이 많이 남습니다.
스승인 장홍심 선생님이 돌아가신 후 2000년 1월에 故 명무 장홍심류 춤보존회를 설립하여 지금까지 함북선녀춤, 함흥검무, 바라승무 등 장홍심의 기반이 되는 전통춤을 이어가고 있지만 선생님의 흔적을 따라 배우고 터득한다는 것이 여전히 어렵고 그때마다 선생님에 대한 그리움이 가슴에 사무치듯 그립기만 합니다.
▶ 장홍심-이성자로 이어지는 바라승무가 어떤 춤인지, 어떻게 입문하시게 되셨는지?
참 운이 좋았어요. 다 가르쳐 주셨는데 그때는 살풀이가 아니고 수건춤이었다고 했어요. 그리고 바라승무는 바지저고리에 장삼을 입고 머리에는 고깔과 가사를 두르거든요.
한성준 선생이 너는 바라가 더 잘 어울린다며 바라를 가르쳐주셔서 북 대신 그걸 주로 하게 되었어요. 그러니까 한복을 입고 추던 춤이 바라를 잡는 순간 완전히 분위기가 달라지는 거에요. 한성준 선생님이 우리 선생님을 이뻐하셔서 특별하게 해주신거 같아요.
▶ 장홍심-이성자로 이어지는 바라승무를 전수받으실 때 당시 이야기를 해주시면?
선생님이 정말 무서웠어요. 그래서 많은 학생들이 와도 지레 겁먹고 도망가고 그랬거든요. 특히 선생님 표정이 그랬어요. 그래서 한날은 제가 앙큼하게 “선생님 표정을 따뜻하게 해주세요”라고 했더니 선생님이 웃으시더라구요. 마음은 정말 크시고 사랑이 많으셨거든요. 그걸 제가 알았어요. 춤 배우면서도 정말 많이 가르쳐주셨고 호흡, 자세, 표정 등 다 자세히 지도해주셨어요. 선생님이 나를 이뻐해 주셔서 편하게 배웠던 것 같아요.
▶ 장홍심의 유일한 제자로 바라승무를 이어가고 있는데, 바라승무의 멋은 무엇인지?
한성준과 이매방 선생님, 두 분의 아름다운 예술세계가 만났다는 것에서부터 다른 승무랑은 차이점이 있고, 무아지경을 느낄 정도로 음악의 흐름이 극적이라는 점에서 무용가들에게 어려운 춤이죠. 함흥에서 익힌 호방한 기법과 한성준의 단아한 정서가 함께 어우러지고 바라의 놀림도 다양하여 독특한 춤사위를 보여주죠. 일단 바라승무는 손놀림이 주목되면서 아름답다라고 느끼시는 분들이 많아요. 바라가 광이 나서 무대를 다채롭게 해주는거거든요. 그 느낌이 다른 춤과는 상이한거니까 굉장히 의미가 있지요.
▶ 바라승무가 다음 세대로 전승되면서 중요하게 생각하여야 할 가치는 무엇인지?
바라 자체는 일단 기술적으로 비비면서 소리를 내는 것에 시간을 투자해야 해요. 그렇지 않고는 진정한 춤사위를 얻을 수 없어요. 내 것으로 만들 수 없다는 이야기죠. 그리고 음악과 춤사위가 하나될 수 있도록 음악을 많이 듣고 느낄 수 있어야 해요. 타악기적인 기법을 연습해야 되는 거지요. 그리고 발현되는 음 감각도 크고 작고, 손을 비비는 것을 중요시해야 합니다. 일단 손으로 제대로 연주를 해야 되요. 우리 선생님 춤은 손이 아름다워요. 춤 전체가 신선하고 선비스럽다고 할까? 기교를 부리는 것보다 고고한 면들이 그 춤을 빛나게 하기 때문이지요.
▶ 이성자류 바라승무를 이어가고 있는 송미숙 교수와의 첫 인연을 설명해 주실 수 있으신지?
한 40대 후반에 만났어요. 참 열심히 하더라구요. 나한테 바라승무를 배우다가 학교 일이 워낙 바빠서 잠깐 쉬고 그랬지. 송미숙 교수는 책임감이 보통이 아니야. 그래서 한다고 했을 때도 내가 그 열정을 바라보고 시작한 거에요. 예술이라는거는 아무나 하겠다고 되는게 아니야. 진짜 지독하고 끝을 봐야 되는 근성이 있어야 돼. 그런데 송미숙 선생이 그런 강한 면이 있어요. 대충하면 안되고 또 열심히 하겠다 하면 답이 나오는거지. 미친듯이 빠져드는 열심을 다하는 사람이지.
▶ 스승이 바라보는 송미숙 교수의 춤은?
일단 송미숙 교수는 군산 출신으로 6살 때부터 무용을 배웠어요. 어렸을 때 접했단 이야기에요. 그만큼 무용에 대한 순수함을 갖고 있고 이를 잘 지켜서 성장했어요.
송교수의 야물딱진 몸에서 힘차게 휘두르는 춤사위는 그간의 학습의 결과인 것 같아요. 굉장한 내공의 결과물처럼 느껴집니다. 일단 숙명여자대학교와 동 교육대학원, 국립한국교원대학교에서 교육학 박사하면서 치열하게 공부했고 무용도 굉장히 학구적이고 진지한 자세로 접근하죠. 단순히 손만 흔들고 굴신하고 이게 아니라 송교수는 춤 안에 담겨져 있는 철학이나 세계관을 반드시 이해하고 춤을 제대로 추더라고요. 내가 가르치다보니 알게 되었어요.
국립진주교육대학교 교수로 재직하면서 아직도 배우는 사람, 제자이지만 대단합니다. 송교수는 최고의 춤 선생님이신 배명균, 양태옥, 김수악, 장금도, 이애주, 한정자, 유청자, 이성자, 유영희, 김태연 선생님한테 배웠어요.
▶앞으로 무용계에서 바라승무의 발전과 전승을 위해 송미숙 교수가 어떠한 역할을 해야 할지 스승으로서의 당부 말씀 부탁드립니다.
바라승무에 대한 가치를 제대로 이해하고 깊이 있게 춤을 이어갔으면 좋겠어요. 특히 연구활동도 활발히 해 바라승무에 대한 학문적 논의도 적극적으로 이어가고 있어서 내가 당부할 것이 없습니다. 앞으로 제자들에게도 역사를 품은 아름다운 춤을 전승해주는 귀한 사명을 감당해 주길 간절하게 바랄 뿐입니다.
이성자
11세에 함흥의 배씨 할머니
20대에 한성준에 사사
동양무용예술연구소 원장 역임
부산 대영극장 장홍심무용연구소 문하생 발표회
박초월 무용연구소 강사
국립극장/이성자 무용발표회 특별출연
제11회 한국명무전 출연(국립극장)
세계일보 전통예맥을 이어가는 사람들/재인 특별취재 기사
제9회 명인전(호암아트홀)
국민대학교 교육대학원 졸업(이학박사)
함경북도 무형문화재 제3호 함북선녀춤 예능보유자
송미숙
국립진주교육대학교 체육교육학과 교수
국립진주교육대학교 교육대학원 문화예술교육전공 주임교수
베트남투득대학교기술대학교 초빙교수(전)
사단법인 한국전통예술협회 이사장
한국문화예술컨텐츠연구소 소장
진주문화관광재단 이사
이북5도 문화재위원회 위원
경상남도 문화재위원회 전문위원
울산광역시 문화재위원회 위원
2005 한밭전국국악경연대회 명무부 대통령상
2010 대한민국 문화예술상
제41회 올해의 최우수예술가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