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선의 진정한 마지막 광대, 이동안이 남긴 이야기’ 국악타임즈 연재 열 네번째 이야기

제14회
연재자 (註)
1934년 김활란 씨 남편이 큰돈을 후원하여 사무실도 마련하고 운영비를 충당할 수 있게 되어 조몽실, 오수암, 이동백, 김창환, 정정렬, 조진영, 임방울 등 남도 창(판소리) 명창들로만 구성된 조선성악연구회를 결성하였다고 증언한다. 이동안 선생은 임방울 명창과는 아주 절친한 사이였다고 회고한다. 명창들의 공연에는 한성준 선생이 북 장단을 맡았다고 한다. 그때 이동백, 김창환 명창들이 소리판에 손님 모집을 위하여 승무와 줄타기 재주를 보여주기 위하여 막내인 이동안 선생을 대동하였으며 인기가 좋았다고 증언한다. 춤꾼인 이동안 선생의 선배인 춤꾼 김광채 선생도 출연했다고 증언한다. 이동안 선생의 춤 스승인 김인호 선생은 고문으로 있었다고 증언한다.
당시 이동안 선생이 종로 5가에 살 때 조선성악연구회 명창들이 한성준 선생 문제로 회의를 소집하였다. 명창들보다 서울에 일찍 올라와 소리를 좋아하는 양반집이나 동호인들을 잘 알고 있었던 한성준 선생이 명창들을 소개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한성준 선생이 명창들의 고수를 맡게 되어 기고만장한 것을 문제 삼아 회의를 소집하게 된 것이다.
회의 석상에서 정정렬 명창이 한성준 선생을 앉혀놓고는 한성준 선생이 김창환, 이동백, 송만갑 등 선배 대 명창들에게 반말을 함부로 한다고 문제 삼자 한성준 선생이 반성하기는커녕 “살다가 반말도 할 수 있는 거지. 뭘 그러느냐?”고 항변하자 조선성악연구회 명창들이 한성준 선생을 제명하고 고수 활동을 못 하게 하였다. 한성준 선생이 몇 달 동안 고수로서의 활동을 못 하게 되자 정재하던 악사, 춤 반주하던 경기도 피리, 젓대, 해금 등 악사들을 경운동에 있는 자기 집에다가 불러모아 조선음악무용연구소를 만들게 되었다고 회고한다.
조선성악회와 한성준의 조선음악무용연구소의 탄생 배경
그때 조선성악회라고 있었어. 남도창하던 이들만 가입을 했지. 김활란씨 남편되는 사람이 큰돈을 내놔서 사무실도 내고 경비를 쓴거여.
조몽실, 오수암, 이동백, 김창환, 정정렬, 조진영 이런분들이 다 있었고 임방울이는 나랑 아주 절친했어. 한성준 선생이 꼭 북을 쳤고. 그때 이동백, 김창환씨 이런분들이 소리판에는 꼭 나를 데리고 간단 말이야. 나도 뫼시고 가고. 내가 막내였으니께.
그때 공연에는 줄을 안타면 안됐거든. 승무도 춰야하고, 소리는 극장안에서만 듣는거니께 줄을 타야지 구경꾼들이 사방에서 다 보고 몰려오거든. 그래 다 소리허는 사람들인데 나하고 김광채 형님이 춤꾼이었고 스승인 김인호씨는 고문으로 있었어. 인기가 참 좋았어.
내가 종로 5가에 살때여. 하루는 회의를 한다고 내려오라고 그려. 내려갔더니 다들있더구먼. 뭔일인고 허니 정정렬씨가 한성준씨보다 근 십년은 위거든. 이동백씨도 한참 위고. 다들 나이가 위란 말이여. 그런데 한성준씨가 자기가 고수를 치고 그러니께 기고만장한거여.
한성준씨가 다른이들보다 먼저 서울에 올라와서 양반네 집이고 어디고 잘아니께 이 양반이 와서 이런이런 소리 잘하는 광대가 있다고 소리한번 들어보시라고 다리를 놔서 데리고 오너라 해서 불러주면 몇천원씩 얻어 보내고 하니 장안에 고수가 그 양반 하나 밖에 없는줄 알았거든.
한성준씨를 앉혀놓고는 정정렬씨가 하는 말이 ”오늘 회의는 자네일 때문에 여는걸세. 김창환, 이동백, 송만갑 이런 쩡쩡 우는 이들한테 그렇게 버릇없이 굴고 우리 늙은 사람들한테 반말을 함부로 하니 우리가 자네보다 손위인데 그런 법이 어디있나 이 나쁜 사람아. 자네 말버릇 좀 고쳐야하네.” 그랬더니 한성준씨 대답이 “살다가 반말도 할 수 있는거지. 뭘 그러느냐”거는거여.
그러니 그냥 여럿한테 야단이 막 쏟아져 나오고 몰매가 나오는거여. 그러니께 꼼짝못하는거지 뭐. “너 같은 놈은 여기둘 수 없으니 나가.” 아주 제명을 시키고 손두를 줬어. 그때 손두라는 것이 뭐냐면 이름을 거꾸로 써서 사방으로 보내요. 이댁에서 보내면 저댁으로 보내고 거기서 보내면 내한테로 보내고 전부 돌리는거요.
손두공문인데 손두통문이라고도 해여. 사방 딱 돌려놓으면 그 사람하구 말을 못해요. 다른 사람이 그 사람하구 말을 해서 아무개가 말을 했다고 알려지면 같이 벌을 받는거여. 그래서 삼년을 말을 못해여. 그러니 그 양반이 북치구 저 혼자서 잘났다고 야단치던 이가 그게 딱 끊어지면 어디가서 북 한번 못치니께 돈을 벌어먹을데가 있어야지.
집에서 몇 달 있으니 답답하지. 그래 정재하던 악사, 춤반주하던 악사들을 불러다가 회를 만들었어. 조선음악무용연구소라고. 한성준선생이 경운동에 있는 자기 집에다가 경기도 피리, 젓대, 해금 노는 사람들을 전부 불러모은거여.
다음 연재일은 2026년 3월 16일 오전 9시입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