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숨결과 호흡까지 전해지는 아쟁의 울림” - 선릉아트홀 [명인의 발자취], 서영호 명인으로 첫 포문 열다
2025년 6월 15일, 선릉아트홀이 다시 한 번 전통예술의 중심이 되었다. '2025 제7회 명인명창 기획공연 [명인의 발자취]'의 첫 무대를 연 인물은, 바로 민속악의 계보를 잇는 아쟁 명인 서영호. 그리고 그 장단을 이끈 이는 명창이자 명고로도 손꼽히는 윤진철 고수였다. 이날 공연은 한 시대를 관통한 음악가들의 삶과 철학이 녹아든 깊은 울림이었다.
선릉아트홀의 송영숙 대표는 공연에 앞서 마이크를 잡고 떨리는 목소리로 관객에게 말을 건넸다. "이 공연은 제가 오래전부터 꼭 하고 싶었던 무대였습니다. 아쟁의 위대한 세 분, 그중 첫 주자로 서영호 선생님을 모신 것은 제게 큰 감동이자 영광입니다." 객석을 가득 메운 관객들 앞에서 송 대표는 서영호 명인에 대한 존경과 애정을 감추지 않았다. "선생님은 무대보다는 방에서, 연구와 연습에 몰두하시는 분입니다. 저는 선생님을 '방구석 예술가'라고 부릅니다. 하루 종일 아쟁만 연주하시며, 밥을 먹을 때도 음악 이야기를 하세요."
서영호 명인은 부친 서용석 명인의 음악세계를 고스란히 이어받아, 본인의 철저한 수련으로 자신만의 아쟁산조를 만들어낸 예술가이다. 이날 연주된 김일구류 아쟁산조와 서용석류 아쟁산조는 시대를 관통한 음악 유산의 재현이자 재창조였다.
공연 중간, 무대 위에서 진행된 서영호 명인과 윤진철 고수의 대담은 관객들에게 음악 너머의 이야기까지 전해주는 소중한 시간이 되었다. 서영호 명인은 "19살 때부터 김일구 선생님께 배웠는데, 이 산조는 지금도 어렵습니다. 오늘도 연습이 더 필요하다는 걸 깨달았어요"라며 겸손한 소감을 전했다. 그는 가야금 병창처럼 ‘소리의 맛’을 표현하는 방식으로 아쟁을 다룬다며, 음악은 ‘절제 속의 감동’이어야 한다는 신념을 밝혔다.
송영숙 대표, 서영호 명인, 윤진철 명인(왼쪽부터)
윤진철 고수는 “서영호 선생님과는 오래전부터 함께했지만 오늘 무대는 새로웠다. 우리가 이제 60대가 되었기에, 그 연륜과 세월이 녹아든 성음이 무대 위에서 느껴졌다”고 전했다. 그는 또 “장단이야말로 공연의 흥을 돋우는 핵심”이라며, 음악은 연주자와 장단, 그리고 청중이 함께 엮어가는 살아 있는 예술임을 강조했다.
관객들의 반응도 뜨거웠다. 송영숙 선릉아트홀 대표는 추임새에 대해 “너무 어렵게 생각 말고, 쉬고~ 좋다~ 한마디라도 꼭 해보라”며 민속음악 공연에서 청중의 참여가 얼마나 중요한지를 재치 있게 설명했다. 그리고 실제로 공연 중, 관객들은 추임새와 박수로 무대와 호흡하며 공연을 함께 완성해갔다.
마지막 곡에서는 정철호-서용석-서영호로 이어지는 아쟁산조의 계보가 깊이 있게 연주되었고, 그 역사적인 흐름을 따라 들려오는 성음은 단순한 감상을 넘어 전통의 생생한 체험이 되었다. 송 대표는 “이 공연은 관객 여러분이 함께 만들어주신 소중한 무대입니다. 아쟁의 역사를 여러분이 목격하고 계신 겁니다”라고 강조하며 진심 어린 감사를 전했다.
아쟁의 소리는 슬프지만 슬프지 않고, 기쁘지만 과하지 않다. 그 안에 담긴 감정의 농도는 연륜과 수련의 깊이에서 비롯된다. 그리고 그날 선릉아트홀 무대 위에서 펼쳐진 서영호 명인의 연주는, 그 절제된 깊이와 따뜻한 울림으로 관객 한 사람 한 사람의 마음속에 오래도록 남을 공연이었다.
오는 6월 29일 4시에는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예술감독을 역임한 김영길이 스승 박종선 명인의 아쟁산조와 백인영류 아쟁산조를 들려주며, 장단은 윤호세가 맡는다. 7월 6일 4시 목원대학교 국악과 교수인 이태백이 자신의 창작인 이태백류 아쟁산조와 더불어 박종선류 아쟁산조로 대미를 장식할 예정이다.
전통의 깊이를 계승하며 각자의 예술세계를 구축해온 세 명인의 무대는, 한국 아쟁음악의 흐름을 입체적으로 조망할 수 있는 특별한 여정이 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