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채정례를 기억하다. “ 채정례본 진도씻김굿 ”
2025년 10월 25일(토) 오후 3시 진도에 자리 잡은 국립남도국악원 진악당 무대에 펼쳐진 12폭 화조병풍 앞에 두 분 신위를 모신 제사상이 차려져 있고 4개의 대형 사각 조명등이 천정 좌우에 각각 2개씩 매달려 있다. 등과 등 사이 공간에는 넓고 긴 하얀 무명베가 천정을 가리며 떠있어 등과 조화를 이루며 조명과 어우러져 무대전체가 굿청(㖌廳) 분위기를 표출했다. 아니 커다란 굿청이었다.
하얀 무복(巫服) 차림의 채수정이 굿청 앞쪽 중앙에서 객석을 향해 엎드려 큰절을 올리고 일어나 이 무대에서 열리는 “채정례본 진도씻김굿”의 의미, 채정례에 대한 간략한 이야기, 무당이 아닌 유일한 학습제자로 인연, 일반 굿상이 아닌 자연물로 차린 채정례·함인천 두 분 제사상 차림이야기 등으로 굿의 서막을 알리고 본인이 주무(主巫)가 되어 굿판을 열었다.
채정례(1925~2013)는 전남 신안군 하의도 세습무 집안의 넷째딸로 태어나 10살 때 집안이 진도로 이주해 왔다. 진도 무계(巫系) 집안의 “함인천”과 결혼하여 비교적 늦은 나이인 서른셋에 아픈 언니를 대신하여 처음 굿을 연행하였다.(세습무계의 전통은 결혼 전에는 굿을 연행하지 않는다)
채정례본 진도씻김굿은 망자의 영혼을 천도(天道)하는 곽머리(출상 전날 관 옆에서 한다 하여) 굿으로 가창과 장단, 사설, 덕담으로 이어지며 길게는 날밤을 새우며 하는 씻김굿이다. 이를 축약 정리하여 굿청에서 행하던 “초가망석-손굿 쳐올리기-제석굿-넋올리기-희실-씻김-고풀이-길닦음-액 막음” 아홉 거리만 약 100분 동안 무대에 올린 예술작품 공연이다.
“신이로고나 신이여 어허 어이혀 허 어허어 어허어허로구나 ~ ~ ”
무가(巫歌)를 시작으로 망자와 굿을 위한 신들을 청배(불러 모시고)하여 굿을 하게 된 내력을 알리는 거리 - 초가망석
“넋이로세 넋이로세 넋인 줄을 몰랐더니 오날보니 넋이로세 신이로세 ~ ~ ”
한 손에는 손대와 지전을 들고 다른 한 손에는 넋 당석(넋을 담아두는 용기)을 들고 손님신과 제왕신을 청해 해를 끼치지 말고 좋게 해주고 가시라는 축원을 하는 거리 - 손굿 쳐올리기
“오시더라 오시더라 천하 제석 일월 제석 산중 제석 님이나려를 왔네 ~ ~ ”
무복위에 장삼을, 목에는 염주를 걸치고, 머리에는 고깔을 쓰고, 한손에 정주(놋그릇 주발)를 들고 다른 한손에 사슴뿔을 들고 두들겨 승천하는 소리가 가정의 번창과 자손의 수복(壽福) 및 재수를 관장하는 제석신을 청배하였다.
“ 나무야 나무야 나무나무 나무야 ~ ~ ” 제석신에게 귀의(歸依)하고,
“ 시주 시주야, 시주 시주 시주많이 허시오 ~ ~ ” 망자를 새왕극락으로 인도하러 내려온 스님에게 시주하여,
“ 어허야 어여라 어기야 청청청 지경이나 다구세 ~ ~ ” 지경(地境)다지기
“ 어어야 에헤에야 허기야 청청 노적이로구나 ~ ~” 노적(露積)청하기 등
복덕을 축원하는 가정과 자손에 대한 구복적(求福的) 성격이 강조되는 거리로 아홉 거리 중 가장 시간이 길며 비중이 있는 거리 – 제석굿
이렇게 신들을 모셔 놓고 망자의 영혼을 굿청에 모셔서 위로하고 달래어 망자를 이승에서 저승으로 보내는 의미를 담고 있는 거리로 본격적인 천도 의례의 시작인 – 넋올리기
지전을 들고 무가를 부르고 춤추며, 돗자리 위 옥색 남자 옷과 분홍 여자 옷에 놓인 채정례·함인천 두 망자 필보살( 한지로 오린 사람모양으로 죽은 자의 넋)에 지전을 비비니 종이 넋이 지전을 따라 올라와 망자의 한이 풀렸다.
초가망석부터 손굿 쳐올리기-제석굿-넋올리기까지 채수정소리단 조무(助巫)들과 함께 주무로 굿을 이끈 체수정의 한이 서린 무가에는 울음이 담겨 있었고, 눈가에 흐르는 눈물을 연신 훔쳐냈다. 객석의 관람객들은 굿의 흥에 젖어 박수로 장단을 맞추었다. 나도 모르게 입에서 흘러나오는 “나무야 나무야 나무나무 나무야 / 시주 시주야 시주 시주 시주많이 허시오 / 어허야 어여라 어기야 청청청 지경이나 다구세 ” 각 거리의 후렴구들을 따라 부르며 신의 부름에 빨려드는 것 같은 열기와 환희가 넘치는 행복한 “채정례본 진도씻김굿” 1부 현장이었다.
1970년대 진도에는 진도씻김굿을 하는 열네 개 성씨의 세습무가가 있었고, 이후 “함·박”두 무가가 2013까지 이어오다 현재는 박씨 무가만 남아있다. “채정례본 진도씻김굿”은 2010년부터 국립남도국악원에서 학습을 통해 무대예술로 이어지고 있으며, 유일한 학습제자 채수정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와 함께 이 공연을 올린 큰 뜻 등 국립남도국악원 박정경원장의 간략한 “채정례본 진도씻김굿” 해설에 이어 국립남도국악원 성악단원들이 주도하는 2부가 시작되었다.
무가에 불교적 저승세계가 자세히 묘사되고, 망자의 60갑자에 따라 통과하는 시왕문이나 불교적 신 이름 등 어려운 문자(文字)가 많아 큰무당이 주로 무가를 부르는 거리로 한명의 무녀가 망자가 극락에 갈 때까지의 각종 어려운 관문을 무사히 넘기고 가라고 무가를 부르며 축원하는 - 희설
돗자리를 둘둘 말아서 매듭으로 묶어 망자의 육신으로 간주 되는 영돈(망자의 모습 상징)을 세워 넋을 담은 밥그릇을 얹고, 그 위에 누룩을 놓고, 마지막으로 솥뚜껑으로 덮어두고 무녀가 망자의 천도를 비는 무가를 부르며 향물·쑥물·맑은 물을 차례로 빗자루에 적셔 위로부터 아래까지 골고루 물로 씻으면서 망자의 넋을 불순하고 더러운 것으로부터 깨끗하게 씻어 정화하는 씻김굿 절차 중 가장 절정인 중요한 거리 – 씻김
원래 씻김에는 없는 국립남도국악원 무용단의 길고 흰 수건대신 지전을 들고 보여준 “살풀이” 떼춤은 씻김의 정화 모습을 더욱 더 숭고하고 장엄하게 빛나게 하였다. 하얀 치마 단을 비집고 나와 부끄러운 듯 내딛는 디딤발 한발 한발에서 씻김의 지워짐이 보이고, 흰 저고리가 감싼 가냘픈 손끝에서 노니는 지전의 너울거림은 망자가 넘어가는 관문 통과를 뒤에서 밀고 앞에서 끌어주었다. 흰 치마 단을 살짝 치켜들며 미끄러지듯 돌아서는 춤사위의 아름다움은 관문지기 수문장의 가슴을 녹여 내렸을 것이다.
무가를 부르며 하얀 긴 무명베에 묶인 일곱 개의 매듭을 풀어 망자가 생전에 맺힌 한(恨)을 풀어주는 거리 - 고(시신을 묶은 매듭)풀이
하얀 긴 천을 길게 펼쳐 놓은 무명베가 이승과 저승을 이어주는 길 또는 다리를 상징하며 이 길을 지나 망자의 넋이 저승에 들어가 극락으로 가게 된다고 여겨, 대를 엮어 지전(紙錢)을 매단 30㎝ 크기의 망자 넋이 담긴 용선(龍船=넋당석)을 무녀가 베 위로 왔다 갔다 움직이면서 무가를 부르며 길을 닦는 거리- 길닦음

유족들의 안녕과 복을 축원하는 거리로 씻김굿을 관람하는 모든 사람의 액(厄)을 막아 주는 “액막음”을 끝으로 국립남도국악원 성악단, 기악단이 “채정례”에게 직접 학습하여 십 오년 세월동안 무대예술로 발전시켜 가는 “채정례본 진도씻김굿”이 마무리 되었다.
그동안 진도씻김굿은 많은 예술인과 예술단체, 무업인과 무업인 단체들이 무대예술로 보여 주었지만, 씻김굿의 내면과 깊이가 없는 예술인과 예술의 가치가 몸에 배지 않은 무업인이 각각하는 무대예술로서 굿과 무대공연으로 그 한계가 있었고 종합예술로의 최고의 아름다움은 미진했다.
이에 비해 판소리 명창과 소리꾼, 국립남도국악원 예술단이 하나가 된 “채정례본 진도씻김굿”은 씻김굿과 공연예술이 화합하여 조화를 이루고 새로운 가능성이 표출되는 대단한 무대였다. 똑같은 시나리오를 일반인이 읽는 것과 성우가 낭독하는 것의 차이를 누구나 알 수 있듯이, 씻김굿을 알고하는 채수정과 씻김굿을 이해하는 국립남도국악원예술단이 하나 되어 관객에게 전달되는 아름다움은 마음속 깊이 진하게 파고들었다.
“채정례본 진도씻김굿”은 진도씻김굿이 진도를 떠나 무대에 올라오면 어떤 모습으로 어떻게 관객들에게 보여주어야 하는지를 인식시켜주는 교과서였다. “채정례본 진도씻김굿”을 각각 학습으로 배운 채수정과 국립남도국악원 예술단이 하나가 되어 무대에서 펼친 아름다움의 극치였다.
이 감동의 아름다운 꽃을 피울 수 있게 피리‧대금‧해금‧아쟁‧가야금‧거문고‧장구‧징‧북이 펼쳐 보인 국립남도국악원 기악 단원들의 굿거리장단, 살풀이장단, 엇모리, 자진모리 등 다양한 씻김굿 반주 음악 또한 “채정례본 진도씻김굿”의 더할 나위 없는 생명수로 최고의 음악이라 칭찬한다.
전국의 다양한 많은 굿중에서도 가‧무‧악이 완벽하게 집대성되어 있고 화려하면서도 아름다운 종합예술로 가치가 최상인 진도씻김굿의 표상을 만끽할 수 있는 귀한 기회 “채정례를 기억하다. 채정례본 진도씻김굿” 공연을 기획하여 국립남도국악원 진악당 무대에 올린 국립남도국악원의 가치와 노고에 한없는 고마움을 보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