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명옥의 춤, 〈강아: 달빛 아래 흐르다〉… 전통의 미학으로 되살린 여인의 서사
전통춤의 깊은 정신성과 서정적 미학을 한 무대에 응축한 박명옥의 무용극 〈강아·달빛 아래 흐르다〉가 오는 11월 18일 오후 7시 30분, 서울 동대문종합시장 신관 9층 전통공연창작마루 광무대에서 공연된다. 조선의 시인 송강 정철과 그의 마음속에 평생 자리했던 여인 ‘강아’의 이야기를 토대로 한 이번 공연은 사랑, 회한, 이별을 전통춤의 언어로 풀어낸 서사무용극이다.
한 인간이 겪어낸 고난과 순수한 정서, 그리고 깨달음까지 이르는 여정을 춤으로 빚어낸 박명옥 대표는 “강아의 삶에는 인간의 진정한 슬픔과 사랑, 그리고 깨달음의 숨결이 흐른다”고 작품의 의미를 밝힌 바 있다. 이번 작품은 전통춤의 형식미를 바탕으로 한 서사 구조에 박명옥 특유의 현대적 감각이 더해져 관객에게 깊은 몰입을 선사할 것으로 기대된다.
〈강아: 달빛 아래 흐르다〉는 강아의 삶을 다섯 개의 장면으로 나누어 구성한다.
공연의 첫 장면은 불교 의식인 탑돌이에서 시작된다. 강아는 북을 치며 번뇌를 털어내고 마음을 닦아내려 한다. 오른쪽으로 탑을 돌면 살아 있는 이들의 번뇌를 씻고 안정을 기원하는 의미가 있고, 왼쪽으로 돌면 이미 세상을 떠난 이들을 위한 슬픔의 추모 의례가 된다.
강아는 북을 치며 자신의 삶을 돌아보다가 어느 순간 왼쪽으로 선회하며 깊은 슬픔에 잠긴다. 이때 그녀의 내면은 정철과의 인연이 스쳐 지나가며 과거의 초년 기녀 시절로 되돌아간다. 북의 울림 속에서 법고의 장단에서 동초수건춤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며 그녀의 생애를 본격적으로 풀어낸다.
이어 전라교방무와 호남산조춤을 통해 강아의 삶의 굴곡과 정한의 미학이 드러나고, 마지막으로 박명옥 명무의 지전무로 그녀가 감내해 온 기원·애원·체념의 감정이 의식무의 형식으로 승화된다. 이 일련의 장면들은 강아의 기억과 정서를 전통춤의 원형적 조형미로 잇는 촘촘한 서사로, 관객은 한 여성의 삶을 깊은 호흡으로 따라가게 된다.
이 서사는 전통회화풍의 일러스트와 함께 구성되어 강아의 내면 여정을 한층 더 선명하게 전달한다.
이번 공연은 박명옥과 함께 전통춤을 계승해 온 주요 전승자들이 무대를 채운다. 김경화, 은혜량, 정도겸, 조용주, 한승철 등 무형유산 이수자들이 참여해 작품의 완성도를 더했다. 각 작품은 박명옥이 오랜 시간 수련하고 연구해 온 춤 세계의 핵심이며, 이번 무대는 그가 지켜온 전통의 결을 한자리에 모아낸 집약적 구성이다.
현재 그는 사)한국십이체장고춤보존회 상임이사, 사)호남산조춤보존회 이사, 사)한국전통춤협회 이사로 활동하며 전북·전남 지역 무형유산 보유자들의 제자로서 전통의 맥을 잇는 데 앞장서 왔다. 전통춤의 본질을 지키면서도 현대적 감각을 더해 새로운 무대 미학을 구축해온 그의 행보는 이번 작품에서도 여실히 드러난다.
그는 전통춤이 가진 원형의 결을 지켜내면서도 시대의 감각을 반영한 새로운 무대를 통해 전통예술의 확장 가능성을 보여주었다. 이번 공연은 스승에게 드리는 감사의 예경이자, 사랑과 예술, 수행과 화합을 동시에 품으려는 그의 내면적 고백이 담긴 무대이다.
〈강아: 달빛 아래 흐르다〉는 강아의 일생을 통해 한 인간이 삶의 고비를 지나 마침내 도달하는 성찰의 순간을 전통춤의 미학으로 풀어낸 작품이다. 산사의 종소리처럼 고요히 울려 퍼지는 춤의 숨결과, 송강과 강아의 영혼이 엮인 서사는 관객들에게 긴 여운을 남길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