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은서의 문화예술교육 한마디] 학교 문화·예술 교육 다 돌려놓아야

  • 등록 2025.07.02 10:3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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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격 발탁한 노동자 출신 노동부 장관, 교사 출신 교육부 장관은 왜 안 되나?
학교 현장에 아르떼 강사들이 안 보인다. 이들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사라지는 건 순간, 다시 세우긴 어렵다.

 

학교 문화·예술 교육 다 돌려놓아야

한성여중 교사 최은서


전격 발탁한 노동자 출신 노동부 장관, 교사 출신 교육부 장관은 왜 안 되나?

 

이번 주말이면 새 정부가 출범한 지 한 달이 된다. 지난 12월 3일 '계엄령의 밤' 이후 밤잠 설쳐가며 유튜브 채널을 뒤지던 습관은, 이재명 대통령 당선 이후에도 멈추지 않았다. 쏟아지는 새 정부 뉴스에 희망을 걸다 보니, 그 습관은 이제 내 일상이 돼버렸다. 일상을 되찾겠다고 정권을 바꿨는데, 정작 내 일상은 뉴스의 알고리즘에 점령당해 있다.

 

이진숙 교수가 교육부 장관 후보자로 지명되자 대통령 공약을 실현할 적임자라는 기대와 함께 교육 개혁에 대한 시대인식이 부족하다는 우려가 동시에 제기되고 있다. 이재명 대통령은 ‘서울대 10개 만들기’라는 공약을 통해 대학 서열화로 인해 유치원 시기부터 입시 경쟁에 내몰리는 과열된 교육 현실에 변화를 모색하고자 한다. 국·공립대 신입생을 통합 선발하고 공동 학제를 운영하자는 제안은 이미 오래전부터 논의되어 온 과제였으며 이제는 그 논의가 정책으로 실현되어야 할 시점이다. 이번 정부에서 이러한 구상이 실질적인 개혁으로 이어져 입시 중심의 교육이 만들어낸 구조적 문제들이 조금이나마 해소되기를 기대한다. 적어도 초·중학교 학생들에게 저녁이 있는 삶이 생겨나고 그 생때 같은 목숨을 버리지 않는 세상이 되어야 하지 않겠는가.

 

아직 정부의 첫 출발에 불과한 시점이지만 현장 교사인 필자 입장에서는 인사에 대한 아쉬움이 크다.

 

우리 사회가 갖고 있는 교육 문제가 모두 ‘대학 입시 문제’에서 비롯된 것은 아니다. 입시 문제와 상관없이 일상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가 학교 현장에는 산적해 있다. 초등학교는 아동학대 신고라는 제도를 무기로 학부모의 과도한 갑질 민원으로 교사들이 병들고 있다. 중학교는 아직 사회성이 부족한 사춘기 시기에 생겨난 갈등이 교사 중재보다는 학교폭력 신고로 확대되고 학부모 간의 분쟁이 되는 등 골머리를 앓고 있다. 고등학교는 현실성이 없는 ‘고교학점제’ 강행으로 교사, 학생, 학부모 모두 갈피를 잡지 못하고 혼란에 빠져 있다. 교사라는 직업이 생명에 위협을 느낄 정도에 척박한 환경에 처해 있음을 지난 칼럼 ‘모두가 갑(甲)이고자 하는 사회가 만든 슬픔’에서 지적한 바 있다. 이런 복잡한 문제는 현장을 아는 교사만이 그 엉킨 실마리를 풀 수 있다.

 

민주노총 위원장 출신 노동자를 과감히 노동부 장관으로 기용한 실용정부의 인사에서 희망을 봤지만, 현장 교사 출신 교육부 장관은 이번에도 먼 꿈으로 남았다. 아마도 이는 교수는 되지만 교사는 안 되는 ‘정치적 불가촉천민’으로까지 희화되는 교사의 사회적 신분과 무관하지 않을 것이다. 게다가 노태우 정부 이후 대부분의 정권에 존재했던 대통령실의 교육 문화수석실이 이번에는 보이지 않는 것이 걱정된다. 이재명 정부가 초·중등학교 현장의 교육 문제를 그만큼 중요하게 여기지 않기 때문은 아닌지 심히 우려스럽다.

 

학교 현장에 아르떼 강사들이 안 보인다. 이들을 포기해서는 안 된다.

 

입시교육으로 학교 현장이 척박해진 건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이러한 현실 속에서도 학교를 아이들의 희망이 싹트는 현장으로 만들기 위한 다양한 노력이 실천되어 왔다. 이러한 다양한 노력 가운데 2006년 노무현 정부 시절 ‘한국 문화 예술교육 진흥원(아르떼)’의 출범은 학교 현장 변화에 지대한 역할을 하였다. 문화 예술의 전문적 역량을 갖춘 국악, 연극, 영화, 무용, 만화·애니메이션, 공예, 사진, 디자인 등 다양한 분야의 강사들이 전격적으로 학교 현장에 투입되었다. 예술적인 전문성에 비해 학생 교육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첫걸음은 순탄치 않았지만, 점차 강사들의 교육적 역량은 성장하였다. 강사들을 대상으로 한 교육 활동 워크숍, 문화 예술 교육사 제도 등이 도입되더니 20년 세월 동안 학교라는 시스템에 적응하며 학교 문화 예술교육의 한 축을 담당해 왔다.

 

문제는 2024년부터 시작되었다. 윤석열 정권이 대기업의 법인세를 깎아주더니 세수가 모자라게 되고 모자란 세수는 학교 문화 예술 교육의 축소를 불러왔다. 아르떼로부터 2~3과목의 강사 파견 혜택을 받던 학교에 예외 없이 1학교 1분야 강사라는 원칙이 통보되고 그 강사의 수업시수도 100시간 이내로 제한되었다. 올해는 AI 교과서와 리박 스쿨로 떠들썩한 누리 교육 과정이 전격 도입되면서 교육 예산이 모두 그쪽으로 흡수해 갈 거라는 소문이 돌더니 소문이 현실이 되어 4500여 아르떼 강사들이 학교에서 설자리가 아예 사라지게 되었다.

 


물집을 자랑하는 학생 (아르떼 강사의 가야금 수업)

 

교육을 아무나 할 수 있는 일로 바라보는 것은 오산이다. 내가 경험한 학창 시절을 떠올리며 학생 입장에서 바라본 교사의 모습만 생각하며 나도 적당히 그리하면 될 거라 생각하고 교단에 섰다가는 40~50분의 수업 시간이 엄청나게 길고 고통스러운 경험으로 다가갈 수 있다. 무능력한 존재감으로 여러 눈망울 앞에서 진땀을 빼게 될 것이 분명하다. 민망함을 감출 수 없어 내 의도대로 되지 않는 상황을 아이들 탓으로 돌리며 버럭버럭 화를 내고 있는 나를 발견하게 될 것이다. 교육자가 되기 위해서는 자격증도 필요하지만 현장 경험이 더욱 중요하다. 아이들과 소통하는 능력은 교사의 끊임없는 자기성찰 과정을 통해서 습득된다. 4,500여 명에 이르는 아르떼 강사들은 학교 현장에서 다져진 교육자이다. 학교 문화 예술 교육의 한 축을 담당하며 파트너가 된 이들을 이렇게 방치하고 버려서는 안 된다.

 

이들이 학교 현장으로 오기 전에는 일부 열정적인 교사들이 다양한 문화 예술 동아리를 만들고 학생들을 즐거운 배움으로 이끌었으나, 아르떼 강사들이 학교로 파견되고부터는 더 양질의 프로그램을 더 쉽게 학생들에게 제공할 수 있게 되었다. 경제적으로 여유 있는 가정의 아이들이 누리던 문화 예술교육을 이제는 보다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도 혜택받을 수 있게 되었던 것이다. 소중한 것은 잃고 나서 후회해도 소용없다. 더 잃기 전에 다시 고쳐 세워야 한다.

 

사라지는 건 순간, 다시 세우긴 어렵다.

 

학교에는 교사가 꼭 해야되는 영역의 일과 하지 않아도 월급 받는 데 하등의 지장이 없는 일이 있다. 그런데, 후자의 일을 서슴없이 도전하고 실천해야 아이들이 더 행복해지고 학교에 활력이 생긴다. 교사들은 포상이라는 보상이나 진급을 위해 필요한 점수를 따기 위해서만 그런 일을 하는 것이 아니다. 아이들의 행복한 웃음이라는 피드백만 있어도 존재 자체의 행복감에 젖어 그 일을 내려놓지 못한다.

 

그런데 사명감으로 하던 일이라 안 하면 엄청 섭섭할 것 같은데, 사실 말이지 안 해 보면 참으로 편안하다. 갈등이 생길 여지도 적고 자신을 위한 여유로운 시간도 생겨 편안하다. 교사들이 모두 이렇게 되길 바라지 않는다면 학교 현장이 월급쟁이 공무원이 아닌, 교육의 본질을 꿈꾸는 교사들로 꿈틀대게 설계하려면 학교 현장을 아는 교사들이 교육정책 수립에 깊이 있게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학교에 안 해도 될 일을 하는 교사들이 어떻게 해야 넘쳐날 수 있는지 머리를 맞대야 한다.

 

필자는 학교에서 국악관현악단 동아리를 운영하고 있다. 서울에서 단위 학교로는 중학교에서 유일하게 본교에서만 진행한다. 2023년 국악 오케스트라에 매년 4천만원씩 3년을 지원하고 프로그램이 학교에 자리잡은 뒤부터 1천만원 정도의 강사비를 안정적으로 지원하겠다는 공문을 보고 시작하였다. 그러나 그 초기 공문과 달리 지난해도 예산이 축소되더니 3년 차인 올해는 겨우 700만원만 배정을 받아 정상적인 운영이 불가능한 상황이 되었다. 350명 전교생 중 80명이 넘는 학생들이 즐겁게 참여하는 프로그램이라 아이들 눈망울 때문에 포기하지는 못했으나, 이 상태로는 지속할 수가 없다.

 

국악 오케스트라를 운영하는 학교가 둘이 되고 둘이 여럿이 되는 것이 학교 문화가 발전하는 방향인 것이다. 국악 오케스트라는 일례일 뿐이다. 다양한 분야에서 학생들과 호흡하도록 교사가 더 쉽게 도전할 수 있도록 시스템을 만들어주어야 안 해도 될 일을 하는 교사가 늘어난다는 점을 정부는 알아야 한다. 이들이 편안함을 찾기 전에 새로 교사가 된 후배들이 닮고 싶은 선배 교사들이 사라지기 전에 학교 현장이 아이들의 웃음으로 넘쳐날 수 있도록 설계해야 한다.

 

AI로 대표되는 미래사회에서 학생들에게 요구되는 역량은 더 이상 단순한 지식 습득이 될 수 없다. 인간만이 지닌 창의성, 공감력, 융합적 사고가 더욱 중요하게 요구되는 시점이다. 그런데 이러한 사고는 다양한 문화 예술 체험을 통해 길러진다는 사실을 정책 결정자들은 분명히 인식해야 한다. 단순한 지식 전달을 넘어서는 교육이 필요한 시대에, 문화 예술교육은 인간 고유의 감성과 상상력을 기르는 핵심 역할을 한다. 예술을 통해 학생들은 자신만의 생각을 표현하고 타인의 시선을 이해하며, 문제를 새롭게 바라보는 유연한 시각을 갖게 된다. 또한 공동 작업과 문화 체험은 소통 능력과 협업 태도, 그리고 다양성을 존중하는 자세를 자연스럽게 길러준다. 문화 예술교육은 변화하는 미래에 능동적으로 대응할 수 있는 창의적이고 공감하는 인재를 키우는, 가장 인간적인 미래교육임을 간과해서는 안 된다.

최은서 bionavy@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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