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연] 백제의 맥베스, 창극으로 되살아나다... 창극 〈맥베스–백가의 난〉, 공주 흥행 잇고 11월 서울 무대 입성

  • 등록 2025.11.14 12:55: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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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1월 19일부터 21일 오후 7시 30분
서교스퀘어

 

백제의 맥베스, 창극으로 되살아나다... 창극 〈맥베스–백가의 난〉, 공주 흥행 잇고 11월 서울 무대 입성

 

셰익스피어의 비극 맥베스가 1,500년 전 백제의 역사와 만나 한국적 창극으로 재탄생했다. 충남 공주 기반의 (사)한국중고제판소리진흥원이 제작한 창극 〈맥베스–백가의 난〉이 지난 11월 2일 공주에서의 성공적인 공연을 마치고, 오는 11월 19일부터 21일까지 서교스퀘어에서 서울 관객과 만난다. 첫 공연 직후 2026년 공주아츠페스티벌 초청작으로 선정되며 작품성을 인정받았다.

 

이번 창극은 셰익스피어 맥베스를 백제 동성왕 시해사건인 ‘백가의 난’으로 각색해 새로운 서사로 재구성했다. 피아노·아쟁·타악이 함께하는 라이브 연주와 판소리 특유의 울림, 그리고 중고제의 담백하면서도 단단한 소리가 결합해 강렬한 몰입감을 이끌어낸다. 구체적이고 세밀한 감정선을 표현하는 배우들의 열연, 충청도 굿의 미학을 차용한 무대장치와 설위설경이 극의 긴장감을 더하며 관객의 눈과 귀를 사로잡는다. 공주의 예술 환경 속에서 탄생한 작품이 서울 무대 입성을 넘어 세계 유통까지 목표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더욱 의미가 깊다.

 

〈맥베스–백가의 난〉은 판소리로 셰익스피어를 해석하는 두 번째 시도이다. 2009년 국립창극단 초연작 〈로미오와 줄리엣〉 이후 박성환 연출이 다시 선보이는 ‘한국적 셰익스피어 창극’이라는 점에서 큰 주목을 받고 있다. 판소리의 서정적 힘이 비극적 운명과 결합하며, 야망과 죄책감, 파멸로 치닫는 인간의 내면이 우리 소리의 결로 더욱 강하게 살아난다.

 

작품의 완성도는 창작진에서 비롯된다. 대본·연출을 맡은 박성환 대표는 중고제 적벽가의 사실상 유일한 직전승자로, 국립창극단 부수석을 역임한 창극 전문가다. 강도근·성우향에게 사사한 뒤 30여 편의 창극을 발표해 왔으며, 2013년부터 2023년까지 7차례에 걸친 중고제 적벽가 완창 기록을 보유하고 있다. 작곡가 나실인은 국립오페라단·서울시향·KBS교향악단 등 다양한 기관의 위촉작을 발표해온 무대음악의 핵심 인물로, 이번 작품에서 판소리와 서양악기의 긴장감을 정교하게 결합했다. 작창 염경애는 전주대사습놀이 판소리 명창부 장원을 최연소로 수상한 명창으로 강산제·수궁가·적벽가 등 폭넓은 레퍼토리를 기반으로 극의 정서를 견고하게 구축했다.

 

이번 작품은 충청의 미학이 깊게 깃들어 있다. 충청도 앉은굿에서 사용되는 설위설경이 무대 곳곳에 활용되어 인물의 내면세계를 시각적으로 형상화하며, 차령산맥과 공산성, 금강 등 충청의 자연 풍광이 배경으로 펼쳐진다. 대사 곳곳에 충청 사투리가 자연스럽게 등장하며, 작품 전반에 지역의 정서가 흘러넘친다. 단순히 지명을 배치하는 수준이 아니라 충청의 역사와 미감을 극 전체에 깊숙이 스며들게 만든 점이 돋보인다.

 

 

〈맥베스–백가의 난〉은 단발성 공연이 아닌 장기 프로젝트로 제작되었다. 2024년 낭독극 버전으로 출발해, 올해는 의상과 무대장치를 완비한 완성형 무대극으로 발전했다. 내년부터는 국내외 유통을 본격적으로 추진하며, 장기적으로는 스코틀랜드 무대 진출까지 염두에 두고 있다. 공주라는 지역 기반에서 탄생한 창작물이 세계무대를 향해 확장되는 의미 있는 움직임이다.

 

작품은 예언으로부터 시작된다. 전승을 마치고 돌아오던 장군 백가는 굿판에서 자신이 왕이 되리라는 예언을 듣는다. 갈등하던 그는 부인의 부추김에 이끌려 동성왕을 시해하고, 후환을 막기 위해 왕의 측근 및 가족까지 제거하면서 깊은 불안과 죄책감에 빠진다. 양심의 가책에 시달리던 백가부인은 몽유병 상태에 이르러 결국 자살하고, 백가는 다시 무당을 찾아 두 번째 예언을 구한다. “차령의 밤나무숲이 움직이지 않는 한, 땅에서 태어난 자는 너를 해칠 수 없다.” 그러나 왕가의 후예 사마 왕자(훗날 무령왕)를 따르는 해명 장군의 진압군이 밤나무 가지로 위장해 다가오며, 예언은 뒤집힌다. 해명은 자신이 ‘바다 위 배에서 태어난 자’임을 밝히고, 백가는 그 칼끝 앞에 쓰러진다.

 

 

출연진에는 박수범, 류가양, 정진성, 이산, 박상우, 박지수, 이정화, 노창우가 이름을 올렸으며, 피아노·타악·아쟁 라이브 연주가 공연의 긴장감을 더한다. 이번 작품을 만든 한국중고제판소리진흥원은 전승이 거의 단절된 충청의 중고제를 되살리고자 설립된 단체로, 판소리와 창극 제작·교육 등을 통해 중고제 전승의 기틀을 다지고 있다. 중고제는 동편제·서편제보다 앞서 존재한 판소리의 초기 스타일로, 담백하고 자유로운 소리가 특징이지만 현재는 전승이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 귀한 소리를 다시 일으켜 무대 위에 되살리는 이들의 활동은 지역기반 창작의 새로운 모델로 평가된다.

 

창극 〈맥베스–백가의 난〉은 11월 19일부터 21일까지 합정역 인근 서교스퀘어에서 만날 수 있다. 예술환경이 척박한 인구소멸지역 공주에서 탄생해 서울 무대에 당당히 오르는 작품이라는 점에서 많은 이들의 관심과 응원을 모으고 있다.

송혜근 기자 mulsori7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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