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을 재해석한 동시대의 국악이란 무엇일까?
문화 칼럼니스트
김승국
전통은 박물관의 유리창 안에 갇혀 있을 때가 아니라, 지금 이 순간의 공기와 맞부딪칠 때 비로소 생명력을 얻는다. 우리 국악이 ‘동시대의 음악과 춤’이어야 한다는 당위는 단순히 과거를 재현하는 데 머물지 말고, 오늘을 사는 이들의 정서와 호흡하라는 요구와 같다. 과거의 국악이 그 시대의 정서와 문화와 철학을 담았다면, 오늘날의 국악은 지금 우리가 겪는 기쁨과 슬픔, 그리고 고뇌를 담아내는 그릇이 되어야 한다.
전통의 현대적 재해석은 결코 과거를 파괴하는 행위가 아니다. 클래식 음악이나 고전 발레의 탐미주의적 가치가 여전하듯, 국악의 ‘전승(Transmission)’은 그 자체로 고귀하다. 하지만 전통이라는 단단한 뿌리에서 새로운 줄기를 뻗어 올리는 ‘창조(Creation)’가 병행되지 않는다면 예술의 생태계는 정체될 수밖에 없다. 여기서 핵심은 서양의 문법을 무분별하게 흉내 내는 것이 아니라, 국악 특유의 성음과 시김새, 춤사위, 농현과 장단이라는 본질을 유지한 채 그 표현의 형식을 현대화하는 데 있다.
전통의 본질은 지키면서도, 이 시대를 노래하는 창조의 스펙트럼 넓혀야
기악의 경우, 국악기가 재즈나 록, EDM 등과 협업하거나 클래식 오케스트라와 조화를 이루는 시도는 이미 낯설지 않다. 여기에 악기 개량을 통한 음역의 확장이나 전자 장치를 결합한 사운드 실험은 국악의 스펙트럼을 넓히는 중요한 동력이 된다. 차가운 디지털 시대의 공허함 속에서 국악기가 뿜어내는 원초적인 농음은 현대인의 메마른 감성을 채워주는 묵직한 ‘체온’이 된다.
예를 들어 공연의 도입부에 지하철의 소음이나 무미건조한 키보드 타자 소리 같은 일상의 파편들을 배치해 보는 것은 어떨까. 이 거친 소음의 벽을 뚫고 나오는 대금의 깊은 취구 소리는, 복잡한 세상 속에서 겨우 내뱉는 현대인의 거친 호흡을 상징하며 관객의 즉각적인 공감을 자아낼 것이다.
이러한 공감의 토대 위에서 국악의 제의성(Ritual)은 현대적 치유의 도구로 부활한다. 관객의 내밀한 사연이 비나리 가락에 실려 공중에 흩어지고, 살풀이의 하얀 천이 나를 대신해 울어주는 경험은 단순한 관람을 넘어선 ‘심리적 씻김’을 선사한다. 국악의 리듬이 관객의 심장 박동과 일치하는 순간, 무대와 객석은 비로소 카타르시스를 공유하며 하나가 된다.
전통춤의 현대화 역시 마찬가지다. 한국 춤의 핵심은 외적인 동작보다 내면의 호흡에 있다. 하체의 디딤과 상체의 곡선, 멈춘 듯 움직이는 ‘정중동’의 원리를 유지하되, 이를 감싸는 시각적·청각적 환경을 과감히 혁신해야 한다. 추상적인 전통 무용에 서사 구조를 도입하여 한 편의 영화나 연극처럼 다가가는 방식은 관객과의 거리를 좁히는 유효한 전략이 될 수 있다.
독창성의 K-국악, 세계적 보편성을 갖고 동시대의 감각으로 거듭나야
결국, 세계 시장에서의 국악의 경쟁력은 ‘가장 한국적인 색채’를 세계적 보편성을 갖고 얼마나 현대적인 세련미로 포장하느냐에 달려 있다. 우리만의 독특한 소리를 동시대의 감각으로 정제할 때, 국악은 전 세계가 거부감 없이 즐길 수 있는 ‘K-국악’의 핵심 콘텐츠로 자리매김할 것이다. 국악 공연은 이제 소리꾼과 연주자, 그리고 춤꾼의 기량을 과시하는 장을 넘어, 관객의 마음속에 정성껏 ‘숨표’ 하나를 그려주는 자리가 되어야 한다.
국악이 대중의 고독 곁에 나란히 앉아 어깨를 내어줄 때, 우리 국악은 시대를 초월한 생명력을 얻는다. 전통의 전형(典型)은 엄격히 지키되 전달 방식은 철저히 동시대적이어야 한다. 국악이 지금의 목소리로 노래하며 일상의 틈새로 깊숙이 파고들 때, 그것은 비로소 우리 시대를 위한 ‘가장 세련된 위로의 언어’가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