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필동갤러리, 정순원 초대전 《은자(隱者)의 정원》 개최... 봄의 문턱에서 만나는 색의 숨결, 유화로 피어난 내면의 풍경
서울 중구에 위치한 필동갤러리가 3월 3일부터 27일까지 정순원 작가의 초대전 《은자(隱者)의 정원》을 선보인다. 봄의 문턱에서 열리는 이번 전시는 형상을 지운 화면 위에 색과 붓결로만 자연과 사유를 드러내는 작가의 최근 작업을 집중 조명한다.
형상 없는 정원, 색채로 피어나는 생명의 흐름
정순원의 화면에는 구체적 대상이 없다. 그러나 화면을 가득 채운 초록빛과 아스라한 분홍빛은 서로 스미고 부딪치며 생동하는 자연의 기운을 환기한다. 모네의 정원을 연상케 하는 색의 진폭은 재현을 넘어선 ‘의경(意景)’의 세계로 관객을 이끈다.
작가는 이번 전시에서 오랫동안 사용해 온 아크릴을 내려놓고 유화(oil painting)를 택했다. 중첩된 색층은 깊이를 더하고, 두텁게 쌓인 붓질은 아날로그적 감성을 일깨운다. 요란한 디지털 이미지에 지친 시대, 그의 화면은 조용히 ‘쉼’과 위로를 건넨다.

“회화는 색채로 이루어진 질서”
작가는 말한다.
“회화란 본질적으로 ‘어떤 질서’에 의해 모여진 색채로 뒤덮인 평면이다.”
그에게 추상은 외적 사실의 기술이 아니라 내적 경험의 서술이다. 계획된 형상을 따라가는 대신, 순간의 감각과 직관에 몸을 맡기는 수행의 과정이다. 파주 작업실에서 한강과 임진강을 바라보며 들숨과 날숨을 고르는 시간은 곧 화면 위 붓결로 이어진다. 색은 빛이며, 붓결은 숨결이다.
그는 작업을 ‘프네우마(pneuma)’에 비유한다. 신이 흙에 숨을 불어넣어 생명을 탄생시키듯, 캔버스에 색을 얹는 행위는 생명을 불어넣는 의식과도 같다.

겨울 동안거(冬安居)를 지나, 다시 붓을 들다
이번 전시는 작가에게 일종의 ‘동안거’의 결실이기도 하다. 작가로서 그는 “왜, 무엇을, 어떻게 작업할 것인가”를 자문하며 묵상과 작업을 반복해왔다. AI 시대라는 거대한 변화의 파고 속에서, 예술의 존재 이유를 다시 묻는 시간이기도 했다.

정순원 작가
니체의 문장처럼, “견딜 수 없는 일이 일어나는 세상에서 그래도 우리를 견디게 하는 것은 예술”이라는 믿음. 그리고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구처럼, “숲은 아름답고 어둡고 길다. 그러나 나에겐 지킬 약속이 있어. 잠들기 전에 그 길을 더 가야 한다”는 자각하는 다짐이 이번 전시의 바탕에 놓여 있다.
정순원의 《은자(隱者)의 정원》은 형상 없는 정원이지만, 그 안에는 사계절의 숨결과 자연의 결이 고스란히 살아 있다. 색채의 질서와 붓결의 호흡으로 완성된 이 정원은, 관객 각자의 내면에서 또 다른 풍경을 피워낼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