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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조로 바꾸어 쓴 면앙정가(俛仰亭歌)

 

면앙정가(俛仰亭歌)

 

- 원작 : 면앙정(俛仰亭) 송순(宋純)

 

 

무등산 산줄기 하나 동쪽으로 뻗어가서

멀리까지 떨쳐나와 제월봉이 되었구나

저 너른 들판을 보며 무슨 생각 하는가

 

일곱 굽이 한데 움츠려 여기저기 벌였는데

가운데 한 굽이는 구멍에 든 늙은 용이

선잠을 막 깨어나서 큰 머리를 얹힌 듯

 

펑퍼짐한 바위 위에 송죽을 헤쳐내고

정자 하나 얹었는데 영락없는 청학(靑鶴)이라

두 날개 한껏 벌리니 천리 밖을 나는 듯

 

옥천산 내려온 물, 용천산서 흘러온 물

정자 앞 너른 들에 끝도 없이 퍼졌구나

넓거든 길지나 말지, 푸르거든 희지 말지

 

쌍룡이 뒤트는 듯, 긴 비단을 쭉 펼친 듯

어디로 가려는가, 무슨 일이 그리 바빠

뛰는 듯 따라가는 듯, 밤낮으로 흐르는가

 

물길 따라 펼쳐 있는 흰눈 같은 긴 모래밭

어지러운 기러기들 무엇을 어르느라

모인 듯 흩어지는 듯, 갈대 숲에 우는가

 

넓은 길 바깥이요, 길고 긴 하늘 아래

두르고 꽂은 것은 산(山)인가 병풍인가

아니면 한 폭 산수화, 그림인가 아닌가

 

높은 듯 좀 낮은 듯, 끊어진 듯 이어진 듯

숨는 듯 보이는 듯, 가는 듯 머무는 듯

그 중의 봉우리 하나, 하늘마저 두렵잖네

 

유명한 체 우뚝 솟은 추월산이 머리 짓고

용구산 몽선산에 어등산 용진산에

금성산 허공에 벌였네, 머문 것도 많구나

 

흰구름 뿌연 연하(煙霞), 푸르른 아지랑이

수많은 바위들과 골짜기를 제 집 삼아

온종일 드나들면서 아양마저 떠는구나

 

오르는 하얀 구름, 내려오는 산아지랑이

하늘로 떠나가고 너른 들판 건너가네

석양은 푸르락붉으락, 흩뿌리는 보슬비

 

뚜껑 없는 가마 타고 푸른 숲길 재촉하여

솔 아래 굽을 길을 오며 가며 하는 때에

버들 숲 우는 꾀꼬리, 교태 섞인 저 소리여

 

나무 억새 우거지니 녹음이 더욱 짙다

백척 되는 난간 위에 긴 졸음을 내어 펴니

물 위의 서늘한 바람은 그칠 줄을 몰라라

 

된서리 걷힌 후에 산(山)빛이 금수(錦繡)로다

누런 곡식 어찌하여 너른 들판 채웠는가

어적(漁笛)도 흥에 겹도다, 달을 따라 부는가

 

초목이 다 진 후에 눈 속에 묻힌 강산

야단스런 조물주가 빙설(氷雪)로 꾸민 궁궐

바다와 눈 덮인 산들이 풍성하게 펼쳐 있네

 

인간 세상 떠났어도 이 몸은 겨를 없다

바람 쐬랴 달 맞으랴, 고기 낚고 밤 주우랴

사립문 누가 닫으며 떨어진 꽃 뉘 쓸리

 

아침 나절 모자라니 저녁인들 싫으리오

오늘 하루 부족하니 내일인들 넉넉할까

번로(煩勞)한 마음이지만 버릴 것이 없구나

 

아름다운 이 경치를 보여주고 싶다마는

쉴 사이 없다 보니 소식 전할 틈이 없네

명아주 지팡이 하나가 다 무디어 가는구나

 

술이 잘 익었으니 벗인들 없으리오

노래를 청해 듣고 가야금 타게 하니

해금(奚琴)도 흥에 취했구나, 방울소리 맑도다

 

부르는 노래 소리, 타며 켜는 온갖 소리

푸짐한 술자리가 흥취를 채촉하니

근심이 어찌 있을까, 시름인들 붙을까

 

누웠다 앉았다가, 구부리고 젖혔다가

시 읊고 휘파람 불고 거리낌 하나 없네

세상은 넓고 넓도다, 한가하다 한 세월

 

복희 씨의 태평성대 모르고 지냈더니

이제야 알고 보니 지금이 그로구나

신선이 과연 뭐라던가, 이 몸 바로 신선일세

 

강산 풍월 거느리고 평생 백년 다 누리면

이태백이 살아온들 이보다 더 하리오

이 몸이 이렇게 즐김도 임금님의 은혜일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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