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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다익선(多多益善)

 

시조로 새겨 읽는 고사성어(故事成語)

다다익선(多多益善)


그 옛날 ‘한고조(漢高祖)’가
‘한신(韓信)’을 포박(捕縛)한 후

 

인물평을 물었더니
스스로를 평했다지

 

“군대를
지휘할 때는
많을수록 좋다오”

 

* 출전은 <사기(史記)> 회음후열전(淮陰侯列傳), 돈이나 물품이 많을수록 좋다는 뜻.

 

 

중국 漢(한)나라 高祖(고조) 劉邦(유방)은 명장으로서 천하 통일의 일등 공신인 楚王(초왕) 한신(韓信)을 위험한 존재로 여겼다. 그래서 계략을 써 그를 포박한 후, 淮陰侯(회음후)로 좌천시키고 도읍 長安(장안)을 벗어나지 못하게 했다.

 

어느 날, 고조는 한신과 여러 장군들의 능력에 대해서 이야기를 나누던 끝에 이렇게 물었다.
“寡人(과인 : 임금이 자신을 낮추어 부르는 말)은 몇 만의 군사를 통솔할 수 있는 장수감이라고 생각하오?”

 

한신이 답하였다.
“아뢰옵기 황공하오나, 폐하께서는 한 10만쯤 거느릴 수 있으실 것으로 생각하나이다.”

 

한고조 유방이 다시 물었다.
“그렇다면 그대는?”
“예, 臣(신)은 ‘많으면 많을수록 좋습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 하하핫…….”

 

고조는 한바탕 웃고 나서 물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다는 자네가 어찌하여 10만의 장수감에 불과한 과인의 포로가 되었는고?”

 

한신은 이렇게 대답했다.
“하오나 폐하, 그것은 별개의 문제이옵니다. 폐하께서는 군사를 거느리는 데에는 능하지 못하지만, 장군을 지휘하는 능력은 능숙하십니다. 이것이 바로 신이 폐하의 포로가 된 이유의 전부이옵니다. 더욱이 폐하의 능력은 소위 하늘이 주신 능력이지 인간의 능력이 아니옵니다.”

 

※ 韓信(한신, B.C.240 ~ B.C.197) : 漢(한)나라 장수. 張良(장량, ? ~ B.C.189), 蕭何(소하, ? ~ B.C.193)와 함께 유방 부하의 삼걸 중의 한 명이기도 하며, 세계 군사 사상의 名將(명장)으로도 알려진다. 한신은 어렸을 때, 보잘 것 없는 외모 때문에 불량배의 가랑이 밑을 기어가는 치욕을 당하고, 빨래터 노파의 밥을 빌어먹기도 했다. 초패왕 항우는 한신을 십년간 말단 벼슬에 머물게 했으나, 한나라 유방(한고조) 밑으로 들어가 전쟁에서 연전연승하며, 훌륭한 지략으로 蜀(촉)의 사마흔과 동예를 항복시키고, 옹왕 장한을 자살하게 한 뒤, 서위왕 위표, 하남왕 신양, 은왕 사마앙을 항복시킨다. 또한 마지막까지 垓下(해하) 전투에서 초왕 項羽(항우)를 제압하는데 크나큰 공적을 세우며, 그 공적을 인정받아 齊王(제왕)에 이어 楚王(초왕)이 되었다. 중국 역사상 최고의 명장이 되었다.

 

그러나 한나라의 권력이 확립되자, 劉(유)씨 외의 다른 제왕과 함께 차차 밀려나, 기원전 201년 한신은 공신서열 21번째에 불과한 회음후로 격하되고, 유방이 자리를 비운 사이, 유방의 왕후 呂太后(여태후)의 농간에 의해‘진희의 난’에 通謀(통모)하였다 하여, 누명을 쓰고 腰斬刑(요참형 : 허리를 자르는 잔인한 형벌)에 처해졌다. 여기서 유명한 고사성어인‘兎死狗烹(토사구팽)’이라는 말도 만들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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