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過猶不及(과유불급)

 

 

시조로 새겨 읽는 고사성어(故事成語)

過猶不及(과유불급)


‘자장(子張)’ ‘자하(子夏)’ 누가 낫나
‘자공(子貢)’이 물었더니

 

‘자장(子張)’은 지나치고
‘자하(子夏)’는 못 미친다

 

‘공자’ 왈(曰)
“너무 지나친 것은
못 미침과 같도다”


출전(出典) : <論語(논어)> 先進篇(선진편),  雍也篇(옹야편)
어의(語義) : 지나치면 미치지 못함과 같다.
                 - 부족함은 물론 지나친 것도 좋지 않음.
                 - 모든 일이 정도를 지나치면 안한 것만 못함.
                 - Too much is as bad as little.
                 - Excess is as bad as deficiency.


 

어느 날, 孔子(공자)의 제자 子貢(자공, 탁월한 외교가며 사업가. B.C.520 ~ B.C.456)이 스승에게,

 

“子張(자장, 이름은 사)과 子夏(자하, 이름은 상) 중, 누가 현명합니까?[師與商也孰賢(사여상야숙현)].” 하고 물은 적이 있다.

 

지난 날, 子張(자장)이 공자에게 묻기를,

 

“士(사)로서 어떻게 하면, 達(달)이라 할 수 있겠습니까?”

 

공자는 도리어 자장에게 反問(반문)하기를,

 

“그대가 말하는 達(달)이란 무엇인가?”

 

“諸侯(제후)를 섬겨도 반드시 그 이름이 높아지고, 卿大夫(경대부)의 신하가 되어도 또한 그 이름이 나는 것을 말합니다.”

 

“그것은 聞(문)이지, 達(달)이 아니다. 본성이 곧아 의를 좋아하고, 말과 얼굴빛으로 상대방의 마음을 알며, 신중히 생각하여 남에게 겸손하며, 그렇게 함으로써 제후를 섬기거나, 경대부의 신하가 되어도 그릇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라야 達(달)이라 할 수 있느리라.” 하고 공자는 자장의 虛榮心(허영심)을 은근히 나무랐다.
 
또한 지난날, 공자가 子夏(자하)에게도 이렇게 타이른 적이 있다.

 

“君子儒(군자유 : 자신의 수양을 본의로 하는 구도자)가 되고, 小人儒(소인유 : 지식을 얻는 일에만 급급한 학자)가 되지 말라.”

 

이 두 사람을 비교해 달라는 자공의 말에, 공자는 이렇게 말했다.

 

“자장은 매사에 지나친 면이 있고, 자하는 미치지 못한 점이 많은 것 같다[師也過商也不及(사야과상야불급)].”

 

자공이 다시 물었다.

 

“그러면 자장이 나은 것입니까[然則師愈與(연즉사유여)]?”

 

공자는 이렇게 대답했다.

 

“지나침은 못 미침과 같으니라[過猶不及(과유불급)].”

 

※ 子貢(자공, B.C.520년경 ~ B.C.456년경) : 중국 春秋(춘추)시대 衛(위)나라의 유학자. 본명은 端木賜(단목사)이다. 孔門十哲(공문십철)의 한 사람으로, 공자가 매우 아꼈으며 言語(언어)에 뛰어났다. 정치적 수완이 뛰어나, 魯(노)나라· 衛(위)나라의 재상을 지냈다. 제자 중 제일가는 富者(부자)였으며, 공자를 경제적으로 많이 도와주었다.

 

자공은 언변이 뛰어나고 막힘이 없어, 많은 사람들은 그가 공자보다 지식이 풍부한 사람이라고 여기고 있었다. 魯(노)나라의 대부인 叔孫武叔(숙손무숙)이라는 사람이 조정의 대신들에게 자공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자공은 그의 스승인 공자보다 더욱 뛰어나다.”

 

어떤 사람이 이 말을 자공에게 전하자, 자공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입을 열었다.

 

“집의 담을 놓고 비유하자면, 나의 담은 겨우 어깨의 높이에 불과하여 어느 누구라도 쉽게 고개만 쳐들면 집안에 있는 좋은 물건을 구경할 수가 있소. 그러나 스승님의 담은 너무나 높아서 대문으로 들어가지 않고서는 그 곳을 알 수가 없소이다. 지금까지 대문으로 들어온 사람도 거의 없다시피 하다오. 그러하니 무숙 그 사람이 그렇게 말을 하는 것도 따지고 보면 무리는 아니지요.”

 

※ 子張(자장) : 성은 顚孫(진손), 이름은 師(사)이며 子張(자장)은 字(자)다. 진나라 사람이다. 특징은 외모가 뛰어나며, 성격도 너그럽고 인맥도 넓었다. 자유는 그를 ‘어려운 일은 잘하고 당당하지만, 仁(인)하지는 못하다.’고 했다.

 

겉으로는 인기가 많으나 이렇게 인색한 평가를 받은 것은, 자장이 평소 權力(권력)에 대한 의지가 강했기 때문이다. 모든 일에 적극적이나, 자유분방하고 허영심이 많았다. 하지만 벼슬에 오른 후에는 德行(덕행)을 펼치고 사리사욕을 채우지 않아, 스승 공자에게 긍정적인 평가를 받았다.

 

※ 子夏(자하) : 성은 卜(복), 이름은 商(상)이며, 子夏(자하)는 字(자)다. 魏(위)나라 사람이다. 공자의 제자 가운데서 공자의 가르침을 후세에 전하는 데 크게 공헌을 한 사람이다. 그리고 그는 공자의 제자들 중에서도 文學(문학) 방면에 있어서는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제일인자였다.

 

자신감이 부족하고, 스스로 규율을 만들어 자신을 얽매는 점이 있었다. 나중에 魏(위)나라 文侯(문후, 위나라 초대 군주. 재위 B.C.446 ~ B.C.396)의 스승이 되었으나, 아들이 죽자 통곡을 하다가 눈이 멀었다고 한다.

 

※ ‘過猶不及(과유불급)’에 해당하는 실생활의 예.
‧ 겸양이 지나치면, 오만(또는 바보, 자만)이 된다.
‧ 훈계가 길면, 잔소리가 된다.  
‧ 너무 착하면, 바보인 줄 안다.
‧ 늘 돈을 내면, 봉으로 안다.  
‧ 술이 과하면, 주정하게 된다.  
‧ 너무 구운 것은 설익은 것보다 나쁘다.
‧ 지나친 친절은 오히려 상대의 마음을 상하게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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