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聞一知十(문일지십)

 

 

시조로 새겨 읽는 고사성어(故事成語)

聞一知十(문일지십)


우리네 보통 사람
열 배우면 하나 알지

 

‘안회(顔回)’는 총명(聰明)하여
하날 듣고 열을 아네

 

안회(顔回)는
공문십철(孔門十哲)이요
덕(德) 실천은 으뜸일세


출전(出典) : <論語(논어)> 公冶長篇(공야장편)
어의(語義) : 한 가지를 들으면 열 가지를 안다.
                  - 일부분을 듣고 모두를 이해한다.
                  - 매우 총명함.

 


 

孔子(공자)는 子貢(자공)에게 顔回(안회)에 대해 물었다.    

 

“자네와 안회는 누가 더 나은가?”

 

자공이 대답하여 가로되,

 

“小生(소생)이 어찌 감히 안회와 비교할 수 있겠습니까? 안회는 하나를 듣고서도 열을 알지만, 소생은 하나를 듣고서 겨우 둘을 알 정도입니다.”

 

공자가 가로되,

 

“확실히 자네는 안회를 따를 수 없네. 따를 수 없는 것은 자네만이 아니라, 나도 회를 따르지 못하는 점이 있다네.”

 

<原文> 子謂子貢曰(자위자공왈) 女與回也孰愈(여여회야숙유) 對曰(대왈) 賜也何敢望回(사야하감망회) 回也聞一知十(회야문일지십) 賜也聞一而知二(사야문일이지이) 子曰(자왈) 弗如也(불여야) 吾與女弗如也(오여여불여야)

 

자공과 안회는 나이가 엇비슷했으며, 둘 다 孔門十哲(공문십철) 속에 들어 있었다. 자공은 言語(언어)에 있어서, 안회는 德行(덕행)에 있어서 공자의 문하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러한 두 사람은 경제적으로도 대조적이었다. 안회는 가난하여 끼니를 잇기조차 어려웠고, 자공은 장사 솜씨가 능란하여 많은 재산을 가지고 있었다. 사실 안회는 가난으로 인한 영양 부족으로 20대에 벌써 머리가 하얗게 세었다. 그리하여 불우한 가운데 일찍 죽고 말았다. 공자는 안회를 後繼者(후계자)로 기대하고 있었는데 그 죽음을 듣고,

 

“하늘은 나를 버리셨구나!” 하고 탄식했다고 한다.
 
※ 子貢(자공, B.C.520경 ~ B.C.456경) : 衛(위)나라 출신으로 공자의 제자 중 한 사람. 성은 端木(단목), 이름은 賜(사), 자공은 그의 字(자). 정치에 뛰어나 후에 노나라, 위나라의 재상이 되었다. 자공은 공자보다 31세나 어렸다. 말재주가 뛰어났으나, 그 점을 못마땅하게 여긴 공자에게 수시로 핀잔을 들어야 했다. 그러나 머리 회전이 빠르고 심리술에 밝은 그가 스승 공자에게 한 술 더 떠 자신이 어떤 사람이냐고 되물어, ‘너는 瑚璉(호련)이다.’란 대답을 듣기도 했다. ‘호련’은 종묘제사 때 기장을 담던 화려한 그릇이니, 자공의 능력을 말솜씨 이외엔 별 쓸모가 없다고 본 것일까. 아니면 자공이 명분만을 앞세우는 듯한 君子像(군자상)보다는, 현실을 냉철하게 보고 가감 없이 판단해서 응용하는 탁월한 지혜와 통찰력의 소유자임을 어느 정도 인정했기 때문일까.

 

공자가 제후국을 방문할 때, 예우를 받았던 것은 외교가이자 巨富(거부)였던 자공이 수행한 덕분이다. 제후 왕들은 정국의 흐름을 훤히 꿰고 있는 자공에게 오히려 많은 것을 기대하고 있었던 것이다. 공자가 말하는 이상주의 정치보다는 자공의 현실감각이 와닿았을 것이다. 노나라는 서쪽의 晉(진)나라, 동쪽의 강국 齊(제)나라, 남쪽의 오나라· 월나라 등에 둘러싸인 최약소국이었으니, 언제든 열강의 주도권 싸움에 휘말릴 수 있었다. 그런 상황에서 그가 터득한 것은 생존의 기술이었다.

 

※ 顔回(안회, B.C.514 ~ B.C.483) : 공자의 제자 가운데 德(덕)의 실천에서 가장 뛰어남. 자는 子淵(자연), 顔淵(안연). 겸허한 구도자의 상징이 되었으며, 31세에 요절하였다. 그때 공자는 “하늘이 나를 버렸구나[天亡我(천망아)]!”라고 통곡하며, 제자의 이른 죽음을 애달파했다. 이런 생각은 사마천에게도 그대로 다가왔다. 그는 ‘사기 백이열전’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늘의 이치는 사사로움이 없어 언제나 착한 사람과 함께 한다. <중략> 공자는 제자 일흔 명 중 안연이 학문을 좋아한다고 칭찬했다. 그러나 안연은 늘 가난해서 술지게미와 쌀겨 같은 거친 음식조차 제대로 못 먹고, 끝내 젊은 나이에 죽고 말았다. 하늘이 착한 사람에게 복을 내려 준다면, 어찌 이런 일이 있을 수 있는가.”

 

사마천의 푸념처럼 세상에서 因果應報(인과응보)니 勸善懲惡(권선징악)이니 하는 말들이 꼭 들어맞지 않는 경우도 많다. 淸貧(청빈)의 자세로 자신을 추스르면서 살다 夭折(요절)한 顔回(안회)는 우리에게 示唆(시사)하는 바가 많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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