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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

 

조문도석사가의(朝聞道夕死可矣)

 

“아침에 도(道)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공자(孔子)’의 탄식(歎息)인가

절실한 구도(求道)인가

 

나에겐

이런 절절함이

어찌하여 없는가

 

어의(語義) : 아침에 도를 들으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

                 (참된 이치를 깨달았으면, 죽어도 여한이 없다.)

출전(出典) : 論語(논어) 里仁篇(이인편)

 

 

聖人(성인) 孔子(공자)는 ‘道(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임금은 인애와 위엄으로써 신하를 대하고, 신하는 임금에게 충절을 다하고, 아비는 자애와 위엄으로써 자식을 대하고, 자식은 어버이에게 효를 다하는 것이다.”

 

‘朝聞道夕死可矣(조문도석사가)’는 里仁篇(이인편)에 있는 공자의 유명한 말이다. ‘아침에 도를 들을 수 있다면, 저녁에 죽어도 좋다.’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에 대한 정의는 학자마다 다르다. 일설에 따르면, 공자가 죽음을 앞둔 친구에게 한 말이라고 한다. 즉 육체의 생명이 다함보다도 정신적인 깨달음이 더 큼을 격려한 것으로 해석된다. 그러나 더 일반적으로는 공자 자신의 절실한 道(도)의 추구라는 소원을 말한 것으로 보아야 할 것이다.

 

魏(위)나라의 何晏(하안)과 王肅(왕숙)은 이 말을 ‘아침에 온 세상에 道(도)가 행해지고 있다는 것을 들었다면, 저녁에는 죽어도 좋다.’라는 공자의 歎息(탄식)으로 해석하였다. 즉 仁義(인의)의 도덕이 올바르게 행하여지는 세상의 재현을 기대한 말이라는 뜻이다. 그러나 이것은 당시의 위의 상황이 투영된 협의의 해석으로 평가된다.

 

이에 비하여 朱子(주자)는, ‘道(도)라는 것은 사물의 당연한 이치다. 만일 그것을 들을 수 있다면, 살아서는 이치에 順(순)하고 죽어도 여한이 없을 것이다.’라고 하여, 求道(구도)에 대한 열정의 토로로 해석하였다. 즉 공자는 진리를 생명보다 귀하게 여겼다는 뜻이다. 이것이 가장 일반적인 해석으로 평가되며, 많은 사람들이 이 의견을 따른다. 그러나 淸(청)의 劉寶楠(유보남)은 이렇게 말하였다. ‘만일 불행하게도 아침에 道(도)를 듣고 저녁에 죽는다면, 비록 이를 중도에 폐할지라도 그 듣는 것이 없음에 현명함이 멀고 심하다. 그러므로 옳다고 말씀하신 것이다.’

 

※ 何晏(하안, 193? ~ 249) : 중국 魏(위)나라의 玄學家(현학가) ‧ 淸談家(청담가). 南陽(남양) 宛縣(완현) 곧 지금의 허난[河南(하남)] 사람이다. 漢(한) 나라의 외척 何進(하진)의 손자이다. 어려서 신동으로 이름을 떨쳤다. 노자와 장자의 학설을 따랐다. 어머니 윤씨가 曹操(조조)의 첩이 됨에 따라 궁에서 자랐으며, 후에 魏(위)나라의 공주와 결혼했다. 조조의 아들 曹丕(조비)가 위나라를 세운 후에 궁 밖으로 쫓겨났다. 그러나 曹爽(조상)이 권력을 잡은 후, 그의 심복이 되어 吏部尙書(이부상서)의 자리에 올랐다. 후에 司馬懿(사마의)에게 살해당했다.

 

하안과 夏侯玄(하후현) ‧ 王弼(왕필) 등은 玄學(현학)을 창도하여 일대 새로운 기풍을 일으켰다. 하안은 도교의 술어와 개념으로 유가경전을 해석했으며, 또한 유가의 사회윤리를 도가사상에 부화시켰다. 그는 ‘천지만물이 無(무)로써 근본을 삼는다.’고 여겼으며, 세계의 본체는 ‘無(무)’이고 모든 사물의 존재는 모두‘無(무)’에 의존한다고 생각했다. 정치상의 주장은 ‘군주는 無爲(무위)로 다스려야 한다.’는 것이었다. 저서로는 道德論(도덕론) ‧ 無名論(무명론) ‧ 無爲論(무위론) ‧ 論語集解(논어집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