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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특별취재] '국창 신영희' 소리인생 70주년 기념공연

 

'국창 신영희' 소리인생 70주년 기념공연

 

‘국창 신영희’는 1942년 전라남도 진도에서 태어나 어릴 때 부친(신치선)으로부터 판소리를 익혔다. 안기선, 장월중선, 강도근, 김성곤, 김상룡 명창에게 20대 중반까지 판소리를 배운 뒤 서울에 올라와 김소희 명창 문하가 되었다.

 

1970년대 중반에 국립창극단 활동을 하였고, 1977년에 남원 춘향제 명창부 대상을 수상했다. 1988년~1990년 KBS <쇼 비디오 자키> 인기 코너 ‘쓰리랑 부부에 출연하여 판소리의 매력과 가치를 널리 알렸으며 국악 대중화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2013년 국가무형문화재 판소리 ‘춘향가’ 예능 보유자로 지정되었다. 팔순을 넘긴 나이에도 현재 대중에게 가장 친숙한 국악인 중 한사람으로 손꼽히고 있다.

 

이렇게 이 땅에서 한 길로 70년을 꾸준히 걸어온 사람이 몇이나 될까? 그 누가 있어 장미꽃 같이 화려하면서도 곱고 우아한 모습으로 보는 이를 매혹시키는 향기를 뿜어낼 수 있을까? 산수(傘壽)를 넘겼지만 도도하면서도 온화한 자태를 흐트러짐 없이 지켜내는 아름다운 여인 ‘국창 신영희’의 소리인생 70주년 기념공연 무대를 필자가 함께 했다는 자체가 영광이다. 한없는 축하와 축원 축복을 올린다.

 

 

2023년 12월 3일 오후 4시 국립국악원 예악당 공연 시작 한 시간 전이지만 로비에는 발 딛을 틈도 없이 인파로 가득하다. 주말의 마지막 날 일요일 오후 5시, 뭐하기 참 애매한 공연인데도 함께 축하하려는 관객은 넘쳐났고 빈 좌석이 없다고 했다.

 

‘국창 신영희’가 걸어온 소리인생 70년이 헛되지 않고 올곧고 반듯했으며 사람들에게 받는 사랑이 넘친다는 것을 증명하고 있다.

 

손에 받아 든 프로그램 속 출연자들의 면면은 이 공연의 가치를 한층 더 높이 쌓아주고 있다. 영화 서편제의 주인공 국악인 사회자 오정혜 / 김덕수와 함께 ‘사물놀이’를 탄생시킨 꽹과리 명인 이광수 / 판소리 고법 인간문화재 김청만 / 한국 제일의 대금 명인 원장현 / 국립국악원 민속악단 전 예술감독 아쟁 명인 김영길 / 가야금 산조 및 병창 인간문화재 강정숙 / 경기민요 인간문화재 김혜란 / 판소리 인간문화재 유영애 / 판소리 인간문화재 김수연/  판소리 인간문화재 정회석 /  판소리 인간문화재 왕기석 / ‘이호연·왕기철·김명희·유수정·김혜영·김차경·정미정·한계명·나윤정·도건영·김백송·이주은·김유경·임숙·이세진·노은주·한아름·조수항·김란이·정지혜·한아윤·김지현·권도희·이도경’ 판소리, 남도민요, 경기민요, 소리꾼으로 대통령상 등을 수상한 각 분야의 전승교육사, 이수자, 전수자 / 우리 춤의 대가 진유림·채향순 명무 / 이들이 국악계에 차지하는 명망이나 비중의 무게만으로도 한 시대를 풍미할 수 있는데, 50여 명에 가까운 이 많은 출연자가 한 무대에 올라 축하 공연을 펼친다는 것은 국악계의 커다란 자랑이며 아름다움의 표상이다. 함께 하는 관람객들에게도 기쁨과 행복을 선물하는 귀감이라 할 수 있고 ‘국창 신영희’의 인간 승리이며 영광이다. 

 

중국 춘추전국시대 초나라 효자 노래자(老萊子)의 마음을 담아 올리는 김세종 교수의 축시가 잔잔하게 객석을 휘감으며 서서히 무대의 어두움이 사라지자, (사)민족음악원 사물놀이 팀 유인상, 임수빈, 함주명이 두들기는 둥둥·뎅뎅·꿍딱, 북, 징, 장구소리를 앞세워 손에든 꽹과리 울음소리 음률을 타며 “천개우주 하늘이요 지개조추 땅 생길 때” 이광수의 비나리가 무대를 채운다. 이광수의 맑고 깨끗하며 살아있는 꽹과리 소리 위에 흥이 실린 ‘비나리’의 우렁찬 염원은 국창 신영희의 소리인생 70주년 기념공연과 함께 하는 관객들을 위한 정화의 기운과 축원 축복의 기원이 넘쳐났다. 

 

강정숙의 맑고 청아한 가야금소리가 가슴 깊이 심연을 파고든다. 하얀 비단 치마 저고리를 갖추어 입은 신영희가 너풀너풀 한 마리 나비처럼 날개짓을 한다. 사뿐사뿐 내딛는 디딤발은 치맛단을 차고 나오는 버선코를 수줍게 하며, 살짝 치켜들었다 놓는 치맛자락은 춤선 따라 움직이던 눈을 희롱한다. 넓게 펼쳐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너울거리는 팔은 춤꾼의 우아한 자태를 돋보이게 하고 즉흥적인 느낌 그대로 하나하나 천천히 머릿속 춤사위를 그려내던 덧배기춤은 그냥 아름다웠다. 처음 보는 사람들은 신영희가 소리꾼 국창인 줄 모르고 춤꾼이라 말을 하겠다.

 

인생은 짧은 것이니 젊어서 타락하지 말고, 부지런히 노력하고 공부하여 청춘을 허비하지 말 것을 당부하는 내용의 ‘청춘가’, 서울 굿의 창부거리에서 무당이 부르는 무가로 무대 위에서 부르게 되면서 대중적인 인기를 얻어 민요로 변모된 ‘창부타령’ 등 대표적인 경기민요를 김해란·이호연 두 명창이 흥겹고 경쾌한 맛을 풍기면서 가락의 굴곡이 유연하면서도 다채롭고 명쾌한 경기민요의 멋을 진국으로 보여주었다.

 

정중동의 한이 서글퍼 훠이 허공에 뿌렸다 어깨를 넘기는 흰 수건은 서려 있는 한의 애닮음을 덜어내었고, 한발 한발 내딛는 버선발 디딤에 한을 실어 보냈다. 살포시 돌아가는 치맛자락은 삼엄한 귀기가 감돌아 가슴은 타들어가고, 던져서 떨어뜨린 하얀 수건을 엎드려 한 손으로 잡아끄니 따라 들어온 한은 신비로움에 젖어들던 애절함마저 삼켜버렸다. 맛깔스러웠던 전유림의 살풀이는 참 오랜만에 느껴보는 살풀이의 진미였다.

 

흰 장삼에 고깔을 쓰고 신음하듯 번민하듯 뿌리고 제치고 엎는 장삼 사위에 넘실거리던 어깨춤이 긴 장삼 끝까지 파도를 쳤다. 그 파도가 허리와 다리를 타고 내려와 하얀 버선발이 허공을 내지르던 미학은 황홀했다. 장삼을 삐져나와 양손에 들린 북채 두드림의 현란함은 눈이 부셨고, 쉼 없이 이어지는 연타는 신들린 무당의 환희였다. 부드럽게 미끄러지다 허공으로 들어 올려 ‘따닥’ 소리 내고, 맑고 신비로운 두둥둥 울림은 가슴 속 깊이 전해지는 청향의 아름다움이었다. 북소리가 멎고 긴 장삼이 허공을 날다 어깨춤 접어 합장하며 엎드리니, 속세의 미움이 봄볕 아지랑이처럼 피어올라 흩어져버리는 채향순의 승무는 아름다웠다.

 

여리면서도 거칠고 깊은 슬픈 울음이 장대하게 퍼지면서 따뜻함이 애잔하게 우는 소리를 타고 넘으며 넘실거리는 김영길의 아쟁소리, 허허롭게 빈 마음과 공명되어 힘차고 강하면서도 때로는 구슬프고 아린 소리를 울리는 신비로운 원장현의 대금소리, 노란 배추꽃 위에서 살랑거리는 흰나비의 날개짓처럼 부담 없이 편안하게 밀려들며 토해내는 신비로움에 감흥이 넘쳐나는 김청만의 장구 소리, 이 세 소리가 하나로 합하여 들려준 합주는 화려함과 아름다움에 가슴 가득히 밀려드는 벅참을 감당하기 어려웠다. 이런 명품 연주를 현장에서 즐긴 것은 엄청난 행운이었고 다시 맞이하기 어려울 큰 기쁨이었다.

 

유영애와 왕기철이 각각 따로 소리한 흥부가 박타령, 김수연의 수궁가 호생원 대목, 정희석의 심청가 젖동냥 대목, 신영희의 춘향가 춘향이 신관사또 수청거부 대목, 많은 꼭지를 진행해야 하는 시간의 제약으로 정말 짧은 시간의 흥부가, 수궁가, 심청가, 춘향가의 판소리 네 바탕 맛보기 감질이었지만 내로라하는 판소리 최고 명창의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었던 소중한 시간이었다.

 

신영희·왕기석 두 판소리 인간문화재가 보여준 창극 춘향가 ‘어사상봉’ 대목은 소리꾼과 고수 두 사람이 펼치는 소리 중심의 일인극 형태 판소리를 보면서 듣는 종합예술로 대중의 변화 요구를 충족시켜준 모습이 사실감 있게 표현되는 현장 체험이었다. 소리와 연기는 보는 이의 눈과 귀를 즐겁게 하였으며 유쾌한 웃음을 마음껏 터트리게 하였다. 음악극 하면 오페라나 오페레타가 떠오르지만, 판소리를 기본으로 하는 우리나라 고유의 음악극 창극의 매력을 깊이 각인시켜 주었고 판소리의 새로운 세계를 실감하게 해주었다.

 

24명의 여창 판소리 소리꾼이 떼창으로 들려준 남도민요 ‘동백타령, 들국화, 풍년가, 함양양잠가, 둥당기타령 / 일곱명의 남창 판소리소리꾼과 신영희, 강정숙, 김유영애, 김수연에 김혜란, 이호원, 경기민요 소리꾼, 진유림, 채향순, 춤꾼까지 악사를 제외한 전 출연자가 떼창한 신민요 ‘신방아타령’ / 한 소리꾼이 한 고수 장단과 소리하는 판소리와 다른 떼 창의 묘미를 체험할 수 있었다.

 

마지막으로 악사를 포함한 모든 출연자가 무대에 올라, 하나가 되어 소리한 앵콜곡 ‘진도 아리랑’은 신영희의 고향 사랑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고, 수북하게 쌓인 사랑에 묻힌 관람객들은 국창 신영희의 소리인생 70주년 기념공연의 따뜻한 아름다움에 벅찬 가슴의 희열을 담을 수 있었다. 

 

지금도 귀에 생생한 사회자 오정혜의 마지막 멘트 ‘제자가 제자를 만나고, 후배가 후배를 만드는’ 아름다운 이 현장 <소리인생 70주년 기념공연 국창 신영희> 신영희의 큰 뜻을 알겠고, 신영희가 담고자 하는 국악에 대한 염원과 사랑이 얼마나 소중한지 깨달을 수 있었다. 

 

무대 앞 연주단 공간에서 장장 2시간이 넘는 공연 내내 모든 꼭지의 반주를 담당한 대금 원완철, 피리 이석주, 아쟁 배런, 장구 박종훈 네 분의 악사님 수고하셨습니다.

 

<소리인생 70주년 기념공연 '국창 신영희‘>를 위해 수고하시고, 도움을 주시고, 후원해 주신 모든 분들에게도 고개 숙여 따뜻한 고마움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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