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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서의 문화예술교육 한마디] ‘자유학년제’를 지켜라

자유학기제 프로그램에 참여 중인 아이들

 

‘자유학년제’를 지켜라

 

한성여중 교사 최은서

 

2013년 박근혜 정권이 들어선다. 연장된 보수정권의 교육정책에는 사실상 큰 기대는 없었다. 풀뿌리 민주주의로 선출한 진보 교육감의 정책을 통해 혁신학교를 확산하고 혁신학교의 성과를 어떻게 모든 학교로 일반화할 것인가에만 몰두하던 시절이었다. 그런데 박근혜 정권이 국가 단위의 교육정책으로 중학교에 ‘자유학년제’를 전격적으로 도입했다. 이것이 무슨 일인지 얼떨떨하기만 하였다. 만일, 이런 정책을 진보 정부에서 추진했다면 학력 저하 정책이라며 수많은 보수언론의 먹잇감이 되었을 것이 자명하다. 그런데 이런 훌륭한 정책이 보수정권에서 추진된 것은 참으로 아이러니하면서도 다행스러운 일이었다.

 

자유학년제는 중학교 학제 중 1년 동안 교과 시험을 보지 않고 자신의 진로와 꿈을 찾는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운영하는 제도로, 입시 중심의 교육에서 벗어나 본 적이 없는 대한민국 학교에서 시도된다는 것은 어마어마한 사건이 아닐 수 없었다. 자유학년제를 전격 도입하게 된 배경에는 성적에 맞춰 대학을 진학한 학생들의 자퇴, 휴학, 전과의 비율이 점차 커지는 사회적 문제를 ‘대2병’이라고 부를 정도로 심각한 현실이 있었다.

 

학교 교육 혁신운동의 확산

 

대학 서열화가 만들어낸 입시경쟁은 초 · 중등 교육을 모두 휩쓸고 있었다. 줄 세우기 교육에서 벗어나 교육 본연의 목적을 찾고자 하는 노력은 있어 왔지만, 그 실천은 교사 개개인의 한계에 머물러 있었다. 그러던 중 2009년부터 경기도교육청에서 혁신학교 운동의 불이 타올랐다. 교육 문제를 모두 입시제도 탓으로만 환원시키던 것에서 벗어난 구체적 실천이 이어진 것이다.

 

2013년부터는 혁신학교의 성과를 일반화하는 방법으로 혁신교육지구 사업이 펼쳐지면서 마을의 교육자원을 활용하는 수업 모델이 일반화되기 시작하였다. 폐교 위기의 작은 학교에서 출발한 혁신학교였지만, 혁신교육지구라는 이름의 사업으로 대도시까지 확장되었다. 이 혁신교육지구 사업과 자유학년제와의 만남은 학교 교육활동 변화에 큰 시너지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마을의 예술가들이 혁신교육지구를 바탕으로 네트워크를 형성했으며 교육 현장을 점차 이해해 가고 교실 수업에서 본인의 예술적 역량을 풀어내기 시작하면서 학교 예술교육의 내용도 다양화되었다.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

 

이러한 변화의 바탕에는 북유럽 교육 모델이 있었다. 혁신학교 운동이 시작되면서 많은 매체에서 선진교육을 소개하며 교육의 변화를 자극했고, 교사들은 덴마크, 스웨덴, 독일 등 북유럽의 교육 현장을 다니며 변화의 단초를 찾았다. 필자도 서울시교육청 혁신교육 분야의 연구교사로 선발되어 덴마크와 스웨덴의 학교를 방문하는 기회를 얻었다. 우리의 자유학년제의 원형은 덴마크의 ‘에프터스콜레’라는 제도이다. 덴마크는 9학년의 국민 공통의 기본 학제(폴케스콜레)를 마치면 대학진학을 위한 김나지움이나 직업학교로 진학을 하게 된다. 이때 자신의 적성이 무엇인지 잘 모르는 학생들은 에프터스콜레라는 진로 찾기 프로그램을 운영하는 기숙학교로 10학년을 진학하기도 하는데 20% 정도의 학생들이 이 과정을 거친다고 한다. 이 학교들은 예술 중점, 스포츠 중점, 과학 중점, 언어 중점, 진로 탐험형 등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는데, 학생들은 자신의 관심사에 맞는 학교를 선택하여 진학하고 자신의 적성을 찾는다. 이 과정을 거친 학생들은 이후 자신이 선택한 진로에 대한 만족도가 높은 것으로 보고되고 있다.

 

그런데 이 덴마크 교육의 아이디어가 전격적으로 보수정권의 교육부에서 전국의 중학교에 시행된 것이다. 당연히 중3에 도입되는 것이 그 취지에 걸맞았겠지만, 우리의 입시 현실은 학생들이 진로를 직접적으로 고민하기에는 너무도 이른 시기인 중1에 이 프로그램을 도입하게 하였고 결국, 이 프로그램은 고등학교 진학과는 직접적인 연계를 갖지는 못한다.


‘자유학년제’는 ‘자유학기제로 바뀌더니, 이젠 프로그램이 축소되고......

 

하지만, 이 자유학년제의 전격적인 도입은 대한민국의 학생들에게 시험 없는 중1이라는 해방구를 만들어준다. 예술 · 체육 선택, 주제 선택, 동아리 선택 등 다양한 선택형 프로그램이 점차 자리를 잡아갔다. 하지만, 지식 중심의 학력만을 공부로 인식하는 학부모들의 불안감은 학년제를 학기제로 축소 시켰으며, 올해는 동아리 선택과 예술 · 체육 선택이 프로그램에서 삭제되었다. 예산도 급격히 줄어들었다. 10년이란 세월이 지났음에도 정착되기는 고사하고 이 정도의 해방구도 허락하지 않는 대한민국의 교육 현실의 답답한 벽을 다시금 느끼고 있다.

 

혁신교육지구가 만든 마을 교육 생태계도 심각한 타격을 받아서 그동안 개발되어 온 예술교육 프로그램은 사장될 위기에 처했다. 필자의 학교에서 가야금, 거문고, 해금, 아쟁, 사물놀이, 민요, 소금 등 일곱 개를 운영하던 국악 교육 프로그램도 넷으로 축소되었고 내년에는 어찌 될지 모르는 암담한 상황이다.

 

코로나19가 남긴 상처

 

코로나19를 거치며 학교는 대인관계 능력이 매우 떨어지는 아이들을 맞이하고 있다. 친구 사귀기를 어려워하며, 한번 다투면 화해할 줄 모르고 영원한 원수처럼 지낸다. 학부모가 학교를 믿지 못하기에 교사들이 아이들을 중재해 화해시킬 수도 없다.

 

AI로 특징된 21세기는 더 이상 지식이 있는 인간을 요구하지 않는다. 지식은 AI가 더 잘 안다. 이를 활용하는 창의적인 능력이 중요한 시대로 바뀌었다. 2022 개정교육과정은 이러한 세계적 흐름에 따라 창의력을 길러 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하지만, 창의력은 교과마다 창작 단원을 집어넣어 기르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예술적 체험을 통해서 키울 수 있다. 때문에 축소된 자유학기제를 다시 학년제로 되돌리고 다양한 예술 체험을 하게 해주는 것이 매우 중요하다.

 


목공수업 중인 초등학교 2학년 어린이, 의자에 청바지를 입히고 주머니를 달고 있다.

 

필자가 방문한 덴마크에서는 초등학교 2학년 학생들이 목공 수업을 받고 있었다. 어린아이가 전동 톱을 사용하는 장면을 보고 놀란 나는 지도교사에게 이런 질문을 던졌다. “저렇게 위험한 도구들이 많은데 부모들이 가만히 있습니까? 아이들이 다치기라도 하면?”, “글쎄요. 그럴 일도 없겠지만, 아이 손가락이 잘리지 않는 한 그런 민원은 걱정하지 않습니다.” 교사와 학부모 사이의 신뢰 관계가 회복되지 않은 지금의 우리나라에서는 꿈도 꿀 수 없는 활동이다.

 

우리 교육에는 해결해야 할 여러 과제가 산적해 있다. 그런데 산적한 과제 중 그나마 잘 해오던 프로그램을 발전시키는 것이 아니라 퇴행시켜서는 더욱 안 될 일이다. 10여 년의 자유학년제의 경험을 더욱 발전시켜야 한다. 점차 자유학기제가 축소되고 결국 없어져 그나마 입시교육이란 빡빡한 틀에 생긴 조그마한 숨구멍을 막는 것은 아닌지 걱정이다. 21세기 우리 교육이 나아가야 할 방향은 여전한 경쟁 일변도의 지식 중심 교육에서 탈피하는 데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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