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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승국의 문화산책] ‘국악의 날‘은 재지정되어야 한다

전통문화콘텐츠연구원장 김승국

 

<국악의 날>은 재지정되어야 한다

 

1950년, ‘한국국악협회’ 전신 ‘대한국악원’ 출범

 

1950년 국악 민간 국악 단체인 대한국악원 초대원장으로 현철(본명 현희운) (1891~1965) 선생이 취임하였다. 근대극운동의 선구자로 알려진 현철 선생이 초대 대한국악원장으로 취임한 것은 그가 일본 메이지 대학 법과를 졸업한 지식인이고 근대극뿐만 아니라 국악 전반에 대하여 해박한 지식을 겸비했던 분이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바로 6.25 전쟁이 발발하여 대한국악원의 활동이 주춤하였다가 1953년 전쟁이 끝나갈 무렵 2월에 국악 운동가인 기산 박헌봉 선생이 원장으로 추대되었다.

 

이후 1957년 판소리 명창 김연수 선생이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1961년 모든 민간 예술단체가 <사단법인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로 통합되면서 ‘대한국악원’은 총회를 거쳐 ‘사단법인 한국국악협회’로 개칭되었고, 초대 이사장에 박초월 선생이 선출되었다.

 

1961년 한국국악협회가 출범하면서 잠시 창극인의 사랑방으로 전락하는 듯했으나 뜻있는 분들의 혁신으로 1962년 기산 박헌봉 선생이 이사장으로 재추대되었고, 64년에 정인규, 66년에 송연주, 68년에 윤재명, 양영환 이사장을 거쳐 1970년에 김종철 선생(부이사장 김득수, 안비취)이 이사장으로 선임되면서, 그해 4월 29일 단오절을 <국악의 날>로 선포하였다.

 

이후 1993년 말 한국국악협회 주도로 <국악의 해> 조직위원회를 만들고 위원장에 황병기, 이성림, 이성천, 김광락, 한명희 선생이 부위원장을 맡았다. 집행위원장은 한국국악협회 이성림 이사장이 맡아, 1994년 1월 20일 세종문화회관 대강당에서 <국악의 해> 선포식을 갖고 이민섭 문화부 장관이 <국악의 해>를 선포하였다.

 

한국국악협회, 1970년 4월 29일 단오절을 <국악의 날>로 선포

 

이미 1970년 국악인들이 뜻을 모아 <국악의 날>을 선포하였는데, 윤석열 정부는 2024년 국악진흥법 시행령에 <국악의 날>을 6월 5일로 명기하고 올해 첫 기념식을 거행하였다. 왜 6월 5일인가? 조선 시대 세종실록에 '백성과 더불어 즐긴다'라는 뜻을 가진 곡목의 궁중악인 '여민락(與民樂)'이 최초로 기록된 날(세종 29년 음력 6월 5일)을 기념하여 지정하였다는 것이다.

 

윤석열 정부의 설명은 겉으로 보기에 그럴싸하고 번지르르했다. 그러나 본래 '여민락'은 세종 때 창제되어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노래한 '용비어천가'의 한문 가사를 관현악 반주에 맞춰 부르던 성악곡이었다가 조선 후기에 가사 없이 악기만으로 연주하는 기악곡으로 변모한 것이다.

 

더욱이 '여민락'은 궁중에서 신하들이 임금에게 문안드리거나 축하할 때 연주하는 조회악(朝會樂), 손님을 접대하거나 잔치를 베풀 때 연주하는 회례악(會禮樂), 잔치 음악인 연례악(宴禮樂) 등 다양한 궁중 의식에서 연주된 전형적인 궁중 음악이었다. 따라서 궁궐 밖에서 먹고살기도 힘들었던 조선 시대 백성들은 이 곡을 들어본 적도 없다.

 

백성들이 들어본 적도 없는 궁중악 ‘여민락(與民樂)’ 기념일 <국악의 날>, 재검토해야!

 

국악인들이 뜻을 모아 1970년에 선포했던 4월 29일 '국악의 날'을 제쳐두고, 정부가 기층 민중과는 관계없는 조선 건국의 정당성을 노래한 지배계층의 음악인 궁중악 '여민락'이 창제된 날을 기념하는 6월 5일을 '국악의 날'로 선포한 것에 대해 의문을 제기한다. 혹시 궁중 음악을 자신들의 음악적 정체성으로 삼고 있는 특정 집단의 입김이 작용한 것은 아닌가 하는 의구심을 지울 수 없다.

 

나는 이러한 정부 결정에 단연코 반대한다. 더 나아가, 하필이면 6월 호국보훈의 달에, 그것도 현충일인 6월 6일 바로 전날인 6월 5일로 '국악의 날'을 정한 것은 적절치 못하다고 본다. 이제 국민주권 정부가 출범했으니, '국악의 날' 지정에 대한 재검토가 반드시 논의되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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