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겸손(謙遜)과 오만(傲慢)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겸손(謙遜)과 오만(傲慢)을 다시 한 번 생각한다.

 

겸손은 공경할 겸(兼)과 따를 손(遜)이 합쳐진 단어로 ‘공경하여 따름’이다. 남을 높이어 귀하게 대하고 자신을 낮추는 태도를 말하며, 자신이 잘하는 일이나 자랑할 만한 좋은 일이 있을 때에도 잘난 척하지 않고 자신을 드러내지 않는 모습을 ‘겸손하다’ 한다. 

 

오만은 오만할 오(傲)와 거만한 만(慢)이 합쳐진 단어로 ‘태도나 행동이 건방지거나 거만함’이다. 남을 낮추어 천하게 대하고 자신을 높이는 태도를 말하며, 어리석고 교만한 태도를 취하면서 자기 자신을 드러내는 것을 즐기면서 떠벌이는 모습을 ‘오만하다’ 한다.

 

일부 사람들은 겸손(謙遜)과 오만(傲慢)을 너무 쉽게 생각하며 산다. 아니 무엇이 겸손이며 오만인 줄 느끼지도 못한다. 내가 잘나서, 내가 이 위치에 있으니, 내가 이렇게 하여도 된다고 생각하고 행동한다. 하지만 한 발자국만 떨어져서 보면 그리 잘나지도 않았으며 그저 그런 위치이며 마음대로 생각하고 행동하여서는 안 되는 생활을 하고 있다. 이로 인하여 많은 사람들이 피해를 보고 힘들어 하고 고통을 받지만 좋은 것이 좋은 것이라고 그냥 인내하고 내가 나서서 시끄러워지는 것이 싫어서 아프지만 참고 넘어간다. 

 

겸손과 오만을 가볍게 생각하고 행동하는 사람은 소인배(小人輩)이다. 소인배는 자신의 무능함을 덮으려 늘 상대방을 깎아내려 한다. 자신이 부족하다는 것을 무의식중에도 알기에 문제를 해결할 때 남에게 책임을 전가하려 한다. 자신의 부족한 능력을 메꾸기 위해 항상 강자에게 편승하여 기생하려 한다. 자신의 나이와 지위를 들이밀어 윗사람인 척 행동하고 스스로 ‘강자다’ 자위한다. 자신이 소인배인지 자각하지 못하고 자신의 영달과 이익을 위해서라면 앞뒤 안 가리고 부나비처럼 우선 눈앞에 보이는 불길로 뛰어드는 삶을 살며, 자기만족과 거드름은 더 심해지는 것이 현실이다. 

 

역사가 세종대왕과 이순신 장군을 높이 숭상하는 이유는 두 분이 오만하지 않고 겸손하셨기 때문이다. 세종대왕은 조선의 왕으로 글을 모르는 백성을 가엾게 여겨 한글을 창제하셨고, 이순신 장군은 풍전등화와 같은 나라를 목숨 바쳐 지켜내셨다. 세종이 오만하여 왕의 권력을 휘두르며 영화(榮華)만 누리려 했다면 연산군처럼 되었을 것이며, 이순신이 휘하의 병사와 민중에게 오만했으면 나라를 지켜낸 성웅(聖雄)이 되지 못했을 것이다. 두 분은 오직 자신들의 직분에 충실하고 자신이 잘한 일이나 자랑할 만한 일이 있어도 자신을 낮추며 겸손하셨기 때문에 길이길이 칭송받고 있다.

 

민중을 대표하거나 단체를 이끄는 사람은 겸손과 오만을 가볍게 생각하는 소인배이어서는 안 된다. 자기 곁에 소인배를 두어서도 안 되며 멀리하여야 한다. 지금껏 모르고 함께 한 소인배가 있다면 따끔한 훈계를 하고 과감하게 정리하여야 한다. 이렇게 하는 것이 바른 태도이다. 

 

상존외 무역자사常存畏 無或恣肆 사가이과과의斯可以寡過矣 (공직자가 항상 두려워하는 마음을 품고 공직에 임한다면 어떤 경우에도 방자함이 없을 것이다.)

 

외의 외법 외상 외민 畏義 畏法 畏上 畏民(공직생활을 잘 할 수 있는 길은 두려움(畏)이다. 정의와 법을 두려워하고, 상관과 백성을 두려워하는 마음을 간직하면 방자하게 되지 않기 때문에 허물을 줄일 수 있다.) - 사외론 死畏論 

 

천지, 신지, 아지, 자지 天知, 神知, 我知, 子知(하늘이 알고 귀신이 알고, 내가 알고 상대방이 안다.) - 사지론 四知論

 

목민심서 글귀들이 겸손(謙遜)과 오만(傲慢)에 대해 가르침을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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