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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취재] 국립국악원장, 1년 넘게 공석… ‘서울대·국고 카르텔’ 논란과 원로·현장 인사들의 경고

무형유산 보유자 33인의 입장문… “전통문화 가꾸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야
공석 장기화, 문화정책에도 ‘빨간불’

 

국립국악원장, 1년 넘게 공석… ‘서울대·국고 카르텔’ 논란과 원로·현장 인사들의 경고

 

국립국악원장 자리가 1년 넘게 비어 있는 가운데, 인선 구조와 정부의 문화행정 방식에 대한 국악계의 불만이 고조되고 있다. 김영운 전 원장 퇴임 이후 후임 임명은 여러 차례 공모에도 불구하고 무산됐으며, 올해 1월 진행된 마지막 공모에서도 문체부 내부 인맥 중심의 인선이 이뤄졌다.

 

국가무형문화재 보유자 및 명예보유자 33인은 지난 4월 7일 공동 입장문에서 국립국악원장 인선과 관련해 문화체육관광부를 강하게 비판했었다.

 

무형유산 보유자 33인의 입장문… “전통문화 가꾸는 본연의 역할로 돌아가야

 

이들은 “국립국악원 조직개편과 행정직 공무원의 원장 임명은 교육·연구 기능을 축소시키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어 결코 받아들일 수 없다”며 “국악에 대한 깊은 전문성과 역량을 갖춘 최적임자를 찾기 위해 현재 공모 절차를 중단하고 재공모하라”고 요구했다.

 

특히 “오랜 역사 속에서 한민족의 풍부하고 섬세한 감성이 빚어낸 전통문화가 오늘날 한류의 바탕이 되고 있음은 주지의 사실”이라며, “이 같은 전통문화를 가꾸고 지원해야 할 문체부가 국악계를 폄훼하고 편 가르기를 하고 있다고 비판했다.

 

이어 “국민에게 국악에 대한 그릇된 오해를 낳게 하면서 관치행정을 자행하는 태도를 규탄하며, 조속히 본연의 자세로 돌아와 조화와 열정이 가득한 문화예술계를 조성하는 데 앞장서야 한다”고 강조했다.

 

올해 1월 국립국악원장 공모에 참여했던 한 국악인은 “서류 전형과 면접을 거쳐 최종 5명이 선정되고, 이 중 3배수 명단이 장관에게 올라갔습니다. 그런데 모두 문체부 관할 인물들이었습니다. 사실상 자기네 사람으로만 명단을 채운 셈입니다.”

 

그는 또, 국립국악원장 인선에서 반복돼 온 ‘서울대·국고(국립고등학교) 카르텔’ 문제를 지적했다.
“그동안 원장을 맡았던 분들은 훌륭한 분들이지만, 대부분 악기 전공자나 이론 전공자로 중·고교 시절부터 같은 울타리 안에서 성장했습니다. 그러니 국악협회나 여러 단체들과 폭넓게 소통하고 컨트롤타워 역할을 하는 리더십이 부족했습니다.”

 

그는 “이번 인선에서는 반드시 이런 구조를 깨고, 국악계를 대표해 다양한 단체와의 연계와 소통을 이끌 수 있는 인물이 원장이 돼야 한다”며 “이런 변화가 이 정부의 중요한 성과로 평가받기를 바란다”고 덧붙였다.

 

국악계 분석… “문제는 특정 학교가 아니라 문체부의 인사권 행사 방식”

 

국악계에서는 이번 논란의 본질이 특정 학교 출신 여부에 있는 것이 아니라, 인사권을 행사해 온 구조적 방식에 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인사권을 가진 문화체육관광부가 수십 년간 같은 학연 출신 중심으로 원장을 임명해 오면서, 의도하지 않았더라도 결과적으로 학연 중심의 운영이 고착화됐다는 것이다. 이로 인해 국립국악원이 포용력과 다양성을 잃고, 특정 울타리 안에서만 인재를 기용하는 폐해가 심화됐다는 분석이다.

 

또한, 변화를 시도하는 과정에서 국악 전문성이 없는 행정직 공무원을 무리하게 원장으로 선임하려 한 점 역시 반발을 키운 원인으로 꼽힌다. 국악계 한 원로는 “국악원장 인선은 국악에 대한 깊은 전문지식과 이해, 철학을 바탕으로 해야 하며, 여기에 행정 역량과 리더십이 결합돼야 한다”며 “편 가르기와 학연 중심에서 벗어나, 모든 배경의 국악인을 포용하고 미래를 내다볼 수 있는 리더십있는 인물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공석 장기화, 문화정책에도 ‘빨간불’

 

국립국악원장은 전통예술의 보존·전승·연구·교육을 총괄하는 기관장으로, 국악계의 방향성과 국가 전통문화 정책의 상징성을 모두 지닌 자리다. 그러나 장기간의 공석은 조직 운영의 불안정뿐 아니라 새 정부의 문화정책 추진에도 걸림돌이 되고 있다. 국악계에서는 “국립국악원장 인사는 단순한 자리 채우기가 아니라, 국악의 미래와 직결되는 문제”라는 목소리가 높다.

 

국립국악원장의 자격에는 전문 국악인으로서의 깊은 이해와 더불어 행정과 기획 능력을 두루 갖춘 역량이 요구된다. 그런 인물이 없는 것은 아니다. 이번 정부는 국악계와 문화행정 전반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을 혁신적 인물을 선택해야 한다. 그것이야말로 장기화된 공석 사태를 끝내고 국악계 신뢰를 회복하는 출발점이 될 것이다.

 

국악계 원로와 현장 인사, 무형유산 보유자들이 한목소리로 인선의 투명성과 전문성을 요구하는 가운데, 문화체육관광부가 이번 공석 사태를 어떻게 수습하고 신뢰를 회복할지 주목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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