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보다 차가운 얼음처럼… 서영님, 스승의 정신을 되새긴 ‘빙출어수’ 무대”
지난 7월 17일 민속극장 풍류에서 열린 ‘이야기로 피어나는 춤’ 공연은 스승과 제자의 인연과 전통의 정신을 무대 위에서 되새기는 특별한 자리였다. 한국무용가 서영님 선생과 황순임 명무, 고수에 박종훈 명고가 함께 만든 이번 무대는 화려한 춤사위보다 스승의 가르침과 그 본질을 이야기로 풀어내며, 관객들에게 깊은 울림을 전했다.
사회는 이병준 평론가가 맡았다. 그는 “오늘 무대는 빙출어수(氷出於水)”라고 의미를 풀어냈다. “스승을 뛰어넘으려는 무대가 아니라, 물에서 태어났지만 물보다 차가운 얼음처럼 스승의 정신을 되새기는 시간”이라는 설명에 관객들의 박수가 이어졌다.
이번 공연은 ▲은방초 살풀이 ▲이매방 살풀이 ▲조용자류 장구춤 ▲구고무 ‘그때 그 여인’까지 네 작품으로 구성됐다. 서로 다른 스승의 가르침에서 시작된 네 작품이 한 무대에서 어우러지는 의미 있는 구성이었다.
그 중에서도 조용자류 장구춤은 전통의 맥을 잇는 중요한 순간이었다. 서영님 선생은 자신이 추는 장구춤의 뿌리가 조용자 선생님에게 닿아 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 2021년부터 조용자류 장구춤의 복원에 나서게 된 과정을 밝혔다. 장구춤의 여성성과 우아함을 강조한 조용자 선생의 독창적인 춤사위는 기존 농악 장구춤과는 완전히 다른 미학을 품고 있었다. 서영님 선생은 “장구춤의 역사적 사명을 안고 무대에 선다”며, 전통과 현대를 잇는 가교로서 이 춤을 대중화하는 데 힘쓰고 있다.
관객들에게 인사말을 하는 서영님 명무
이날 공연의 마지막 무대는 ‘그때 그 여인’이라는 제목으로 꾸며진 구고무였다. 이 작품은 구고무에 뮤지컬 명성황후의 파란만장한 스토리를 입힌 작품으로, 서영님 명무가 직접 무대에 올랐다. 스펙타클한 연출과 서영님 명무 특유의 큰 키에서 뿜어져 나오는 당당한 에너지가 어우러져 관객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웅장한 북소리와 함께 펼쳐진 구고무 무대는 명성황후의 비극적 생애를 함축적으로 담아내며 관객들에게 전통과 현대를 넘나드는 감동을 선사했다.
구고무 공연을 끝낸 서영님 명무
서영님 선생은 “스승 은방초 선생님, 이매방 선생님, 조용자 선생님 모두 제 춤의 뿌리이며, 오늘 이 무대는 그 스승님들의 정신을 기리고 돌아보는 자리였다”며 “전통은 과거가 아니라 살아 있는 현재”라고 말했다. 이어 “후배들이 전통 위에서 창작을 통해 새로운 전통을 이어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뮤지컬계 원로 유희성 이사장은 이날 무대를 보고 “한국 춤과 음악은 세계 어디에서도 흉내 낼 수 없는 독창성을 지녔다”며 “이 무대에서 그 전통의 힘과 한국적 호흡을 다시 확인할 수 있었다”고 평가했다.
이병준 평론가와 뮤지컬계 원로 유희성 이사장
이병준 평론가는 “스승을 닮고 스승을 되새기는 오늘 이 무대가 바로 빙출어수(氷出於水)의 무대”라며 공연의 의미를 다시 한번 강조했다.
공연평론가이자 기획자 강신구 선생은 이번 공연후기에 대해 “참, 오랜만에 깊디 깊은 명작을 감상했습니다”라며 소감을 전했다. 그는 1980년대 이매방 춤전수소에서 은방초 선생과 함께했던 추억을 떠올리며, “'이매방-북의춤 북소리3(1990년 9월 호암아트홀, 강신구 기획) 공연에서 은방초(살풀이-회상) 선생의 춤을 보았던 기억이 어제 다시금 되살아났다”고 말했다.
특히 이번 무대에서 선보인 흰색 저고리와 엷은 청색 치마, 흰 수건에 꽃술을 단 의상에 대해 “의상제작자 그레타리 선생님의 작품이 무대 위에서 환하게 빛나며 감흥을 더했다”고 찬사를 보냈다. 강신구 선생은 “조용자류 장구춤, 오랜만에 만난 구고무 무대도 더욱 인상 깊었다”며 “시간 위에 펼쳐진 춤판, 기록에 남을 명작을 감상하게 되어 감사하고 감격스러웠다”고 평했다.
서영님과 황순임 명무가 함께 완성한 ‘이야기로 피어나는 춤’은 전통과 창작, 스승과 제자의 정신이 교차하는 의미 깊은 무대로, 한국 전통춤이 단순한 계승을 넘어 예술적 울림으로 다시 살아나는 현장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