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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워크샵] 세계판소리협회, “판을 넓히고 팬덤을 키우자”... 채수정판소리마을서 운영 체계·월드판소리페스티벌 방향 논의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만 모였다” 따뜻한 소개와 인연의 이야기들
창립 3년, 월드판소리페스티벌이 만든 새 판
“판을 벌리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팬덤·연대·세계화를 향한 제언
워크숍 정례화·팬덤 조직화…4회 페스티벌 준비 본격화

 

세계판소리협회, “판을 넓히고 팬덤을 키우자”... 채수정판소리마을서 운영 체계·월드판소리페스티벌 방향 논의

 

사단법인 세계판소리협회(이사장 채수정)가 12월 5~6일 강원 원주 채수정판소리마을에서 ‘세계판소리협회의 운영 체계 및 월드판소리페스티벌의 방향성 탐구를 위한 논의’ 워크숍을 열었다. 협회 이사진과 정·준회원, 명예회원, 외부 문화예술·사회공헌·언론 관계자 등 20여 명이 모여 지난 3년의 성과를 돌아보고 4회 월드판소리페스티벌과 향후 운영 방안을 두고 밤늦게까지 의견을 나눴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만 모였다” 따뜻한 소개와 인연의 이야기들

 

워크숍은 이사장 채수정의 인사로 문을 열었다. 채 이사장은 “배가 불러야 30분 이상 말이 나온다”며 식사와 술을 곁들인 편안한 자리를 준비한 이유를 설명하며, “오늘 여기서 나온 모든 이야기는 팀과 함께 모두 기록해 헛되지 않게 하겠다”고 강조했다.

 

이날 자리에서는 먼저 참석자 소개가 이어졌다. 고등학교 때부터 함께 판소리의 길을 걸어온 민혜성 수석이사, 전남대를 함께 다니며 학창 시절부터 판소리를 토론해 온 김수미 이사, 국립창극단 단원 오민아, 가야금병창 연주자 이선, 이은희, 지현아, 함수연, 박혜련 등 협회를 이끌고 있는 소리꾼들이 차례로 자기 소개와 각오를 밝혔다.

 

향수 박물관과 엔터테인먼트 기획사를 운영하는 박진혁 대표는 부산에서 시작해 전국 1,700여 명이 참여한 판소리 동호회 조직 경험을 소개하며, “국악의 발전은 결국 팬덤의 두께와 조직력에 달려 있다. 국악인들만의 판이 아니라, 아이돌처럼 강력한 팬덤을 만드는 조직 싸움”이라고 강조했다.

 

이일영 한국미술센터 관장, 조풍류 화가, 채수정 이사장, 이태양 화가, 박진혁 대표

 

지역 사회공헌과 환경운동, ‘공유 냉장고’ 사업을 이끌어온 양숙정 회장은 “국악이 성장하려면 팬층이 두꺼워져야 한다”며, 판소리와 국악을 사랑하는 이들의 생활 속 후원과 참여를 약속했다.

 

국악 전문 언론 ‘국악타임즈’의 송혜근 기자는 창립총회 때부터 세계판소리협회와 함께해 온 인연을 돌아보며 “형식적인 보도가 아니라 협회의 걸음걸이를 함께 기록하는 동반자이자 ‘스토커’ 같은 언론이 되겠다”고 말해 웃음을 자아냈다.

 

창립 3년, 월드판소리페스티벌이 만든 새 판

 

협회는 2021년 12월 창립총회를 통해 사단법인 인가를 받았다. 이후 판소리의 진흥·보존·전승과 연구, 교육을 주요 목표로 삼아 국내외 공연과 교육 사업, 청년 소리꾼 지원사업 등을 이어오고 있다. 현재 정회원 120명, 준회원 66명, 명예회원 23명 등 200여 명이 협회와 함께하고 있다.

 

특히 2023년부터 시작된 ‘월드판소리페스티벌’은 협회의 대표 사업으로 자리 잡았다. 제1회 페스티벌은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20주년을 기념해 20시간 전통 판소리 릴레이 무대를 선보였고, 제2회는 ‘판소리를 모티브로 한 대중음악·무용·연극 융합 예술 무대’를 내세워 현대 감각과의 결합을 시도했다. 올해 제3회는 한가위를 주제로, 세대를 아우르는 전통마당음악극과 가족 단위 관객이 즐길 수 있는 프로그램으로 확장되었다.

 

협회는 청년 소리꾼을 위한 ‘판소리 100일 독공’ 지원사업, 청소년·대학생 대상 꿈나무 소리꾼 지원사업 등도 운영해 왔다. 선정된 청년에게 장학금과 멘토링, 독공 계획 수립, 발표회 무대와 공연비 일부를 지원하는 방식이다.

 

이날 워크숍에서도 청년 세대의 목소리가 이어졌다. 한국예술종합학교 경기민요 전공 김도현 학생은 1회 페스티벌부터 스태프로 참여해 올해는 대학전 무대를 직접 기획·진행한 경험을 나누며 “대학생들이 스스로 공연을 제작해 볼 수 있는 기회를 만들어 준 것이 무엇보다 감사하다”고 말했다. 피리 전공에서 서도민요로 전향한 대학원생 이재득은 “두 해 연속 페스티벌에 참여하면서, 판소리뿐 아니라 다양한 전통 성악을 이끌어 주는 협회의 방향에 확신을 갖게 됐다”고 전했다.

 

가야금병창 연주자 이은희는 1회 가야금병창 릴레이부터 창작국악팀, 가야금병창단 연출·작창까지 협회 주요 무대에 꾸준히 참여해 왔다. 그는 “가야금 병창을 어떻게 널리 알릴지 고민해 왔는데, 협회와 이사장님의 추진력을 보며 새로운 콘텐츠를 꿈꾸게 됐다”며 “가야금 명창들이 세계판소리협회 안에서 더 다양하게 꽃필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판을 벌리고 밖으로 나가야 한다”  팬덤·연대·세계화를 향한 제언

 

워크숍의 후반부에는 협회와 페스티벌의 미래를 두고 다양한 제안이 쏟아졌다.

 

한국미술센터 관장 이일영은 자신을 “말은 서툴지만, 기록은 성실히 남기고 싶다”고 소개하며, 앞으로의 역할을 이렇게 정리했다. “여러분이 걸어가는 이 소중한 길이 헛되이 흩어지지 않도록, 영원히 남기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면 언제든 자료를 보내 달라. 부족하지만 최선을 다해 글로 정리하겠다.” 판소리와 전통예술을 사랑하는 이들의 발자취를 글과 기록으로 남기는 동행자로서, 협회와 함께하겠다는 뜻을 밝혔다.

 

한국화가 조풍류 작가는 태백 검룡소에서 시작해 남한강·북한강, 두물머리와 서해로 이어지는 물길을 비유로 들며 “판소리의 원류는 결국 ‘판’을 여는 데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지금까지 국악계는 ‘우리끼리만 명창인’ 구조에 머문 경우가 많았다. 판을 넓혀야 한다. 우리가 사람을 찾아 나가야지, 여기 앉아 있으니 알아서 들어오라는 태도로는 안 된다”고 지적했다.

 

또한 “진정성을 가지고 계속 판을 벌이면 공감이 생기고, 공감에서 팬심·팬덤이 만들어진다. BTS의 아미처럼, 국악에도 그런 팬덤이 생겨야 세계로 나갈 수 있다”며 “클래식, 팝, 재즈가 서로 교배하며 새로운 장르를 만들었듯, 이제 남은 건 국악”이라고 말했다. 미술과 무용, 판소리를 입체적으로 엮어내는 동시대 예술의 흐름을 소개하며, “이사장님이 판을 만들었다면, 이제는 각자가 그 안에서 자기 가치를 찾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채수정 이사장

 

반도체 기업을 운영하며 나전칠기 작가이자 침·뜸 전문가로 활동하는 이태양 작가는 자신이 죽음 문턱에서 돌아온 경험과 한·일 교류전, 재일동포 치료 활동을 소개하며 “예술가의 건강이 곧 판의 지속 가능성과 연결된다”며 이사장과 회원들의 건강 관리를 맡겠다고 나섰다. 그는 “채수정 교수의 건강을 책임지겠다. 필요하다면 이 자리에 있는 모두도 돕겠다”고 말해 좌중의 환호를 받았다.

 

충청권에서 가야금병창과 지역 문화기획을 병행하는 지현아는 “서울의 큰 무대도 필요하지만, 지방에서 국악의 저변을 넓히는 작업도 중요하다”며 “협회가 만들어 주는 판을 지역 현장과 잘 연결해 가겠다”고 다짐했다.

 

워크숍 정례화·팬덤 조직화…4회 페스티벌 준비 본격화

 

채수정 이사장은 “지난 3년간 월드판소리페스티벌을 준비하고 치르면서 경험치와 굳은살이 생겼다”며 “이제는 혼자 고민하기보다, 이렇게 마음을 여는 워크숍을 정례화해 지속적인 발전을 도모해야 할 때”라고 강조했다.

 

협회는 이미 내년 제4회 월드판소리페스티벌을 위한 기획안을 마련해 여러 곳에 사업 신청서를 제출했다. 채 이사장은 “지원이 되지 않더라도 축제는 계속된다. 필요하다면 이사들이 십시일반 힘을 모아라도 해낼 것”이라며 강한 의지를 드러냈다.

 

또한 ‘청년 소리꾼 판소리 100일 독공 지원사업’의 향후 운영 여부를 두고 예산 대비 효과와 브랜드화 가능성, 인력 소모 등 장단점을 종합적으로 검토하겠다는 의지도 밝혔다.

 

워크숍 말미, 한 참가자는 “이 자리에 모인 사람들은 다 ‘가슴이 뜨거운 사람들’이다. 이 뜨거움을 잃지 않고 끝까지 함께 가자”고 말했다. 세계판소리협회가 만들어 온 새 판이, 팬덤과 연대, 젊은 세대의 참여를 바탕으로 어디까지 확장될지 기대를 모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