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권번의 춤맥을 다시 비추다… ‘십이체장고춤’ 전승 가치와 서울 무형유산 확장의 공론
2025년의 끝자락, 한국 전통 예능의 전승 생태와 제도 확장의 책무를 묻는 학술 담론이 대학로 예술가의집 2층에서 펼쳐졌다.
지난 12월 29일 오후 2시 열린 〈권번계 장고춤의 전승맥락 학술세미나 – 김취홍·오천향 십이체장고춤을 중심으로〉는, 일제강점기 권번 문화의 재조명과 전통춤 다양성 계승, 서울시 무형유산 종목 확장의 필요성을 확인한 자리였다.
전통 예능의 요람, 교방에서 권번으로 이어진 전승 생태
기조강연에 나선 김승국 전통문화콘텐츠연구원장은 “고려와 조선 시대를 관통하며 궁중과 지방 관아의 예악을 담당했던 교방은 속악, 가, 무, 악을 체계적으로 전승한 한국 전통 예능의 요람이었다”고 밝혔다.
이어 “1894년 갑오개혁의 신분제 폐지와 함께 관기 제도가 해체된 후, 이 전통은 일제강점기에 권번이라는 새로운 형태로 이어지며 격변기의 전통예술을 보존하는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했다”고 설명했다. 김 원장은 권번을 “유흥 중개 기관이 아니라 조선 교방의 교육 방식을 계승한 전통예능 교육 기관의 역할을 담당했던 보존 및 전승의 중요한 통로”로 규정했다.
김승국 원장은 “현행 무형유산 지정 제도가 엄격한 원형 보존 패러다임에 갇혀 권번과 재인청을 통해 명맥을 이어왔으나 제도권 밖으로 밀려난 수많은 전통춤 종목이 여전히 그림자 속에 머물러 있다”고 진단하며, 특히 명무 김인호의 제자 이동안이 전승한 것으로 알려진 재인청류 춤이 40여 종이 넘는 종목적 규모를 갖추고 있었음을 언급하며, 무형유산 제도권 내에 정착하지 못한 보석 같은 전통춤의 훼손·멸실 위기가 개별 춤사위의 소멸을 넘어 한국 전통 예능의 다양성과 역동성을 담보했던 큰 줄기 자체를 놓치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그는 또한 권번들이 전통 예능의 명맥을 이었다는 역사적 사실을 고려할 때, 서울시는 원형 보존의 틀을 넘어 전통춤이 축적·변동·대체·현재화되어 온 전승 생태 자체를 포용할 관점을 가져야 하며, 권번 문화 재조명은 그 출발점이 되어야 한다고 말했다.
음악과 몸짓의 통합, ‘십이체장고춤’의 전통춤사적 위상
이종희 무용역사기록학회 편집위원장은 “십이체장고춤은 장고 연주와 춤사위가 결합된 전통춤으로서, 한국 민속예술의 복합적 성격을 잘 보여주는 문화적 자산”이라고 규정했다.
그는 “음악과 신체 움직임이 분리되지 않고 하나의 행위로 통합된 구조는 한국 전통춤의 본질적 특징 중 하나로 평가된다”고 설명하며, “장단의 점진적 전개와 이에 따른 신체 표현은 공동체적 신명 미학을 구현하는 방식으로, 조선 후기 민중 예술의 정서를 현재까지 전달한다”고 밝혔다.
또 “김취홍 계보를 한혜경에 의해 전승되고 있다는 점은 전승의 연속성과 정통성을 설명할 수 있는 중요한 근거”라고 강조했다. 김 위원장은 “현재까지 일정한 형식과 명칭, 전승 계보, 전승자의 존재라는 점에서 무형문화유산 기본 요건을 충족할 가능성이 크다”고 보며, “무형문화유산 지정의 핵심 기준은 지속적으로 재현·전승되는 전승 체계의 재현 가능성과 정체성의 실증에 있다”고 설명했다.

서울 무대가 만든 반주의 변화, 전승의 새 길이 되다
이용식 전남대학교 국악과 교수는 세미나 발제에서 “최승희가 장고춤의 무대 공연화를 확립하며 경기민요 〈한강수타령〉을 반주음악으로 사용한 이후, 이 곡은 장고춤의 정착 경로가 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설명했다.
이어 “〈간지타령〉과 〈한강수타령〉은 비슷한 곡조와 굿거리장단 기반의 노래라는 점에서 선택압으로 작용하기에 큰 어려움이 없었다”고 했다. 그는 “김취흥은 초기 반주로 〈간지타령〉을 선택했을 가능성이 많지만, 〈한강수타령〉의 인기가 커지면서 〈간지타령〉은 자연스럽게 도태되었고, 김취흥류 장고춤 반주 역시 〈한강수타령〉으로 대체되었을 가능성”이 공존함을 제시했다.
또한 “현재 십이체장고춤의 반주음악은 본래 서도민요 〈난봉가〉, 〈이팔청춘가〉, 〈간지타령〉이었을 가능성이 크며, 서울식 변용곡인 경기민요 〈청춘가〉와 〈한강수타령〉으로 대체되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정리했다. 더 나아가 “서울이 경제 중심지이기에 중심부 음악이 주변부 음악을 생존투쟁에서 제압했고, 남북분단 현실은 서도민요의 존재감을 지워버렸다”며, “정치·경제·분단 현실이 반주에 미친 영향이 십이체장고춤의 반주 체계 교체에 투영되어 나타난다”고 설명했다.
“십이체”의 개념과 전승 구조, 다시 기준을 묻다
토론문에서 권도희 경북대학교 국악학과 교수는 “음악 변화 없이 춤 변화가 존재할 수 없다는 점에서, 십이체장고춤의 구성 원리가 음악과 대응되는가에 대한 실증적 연결 기준이 보완되어야 한다”고 질문했다. 또한 “‘십이체’ 용어가 변화 횟수를 상징하는 음악 사례에서도 발견된다”는 점을 들며, “십이체장고춤의 변화 단락과 음악 변화 단락이 어떻게 대응되는지, 그리고 음악 단락 구분의 실체와 춤 구성의 대응 구조”에 대한 견해를 요청했다.
토론문에서 이미희 삼육대학교 스미스학부대학 교수는 “‘십이체’의 개념을 무엇으로 규정하고 있는가”에 대한 명확한 개념 규정의 필요성을 제기했다. 이어 “장단 구성, 연행 형식, 신체 사용 방식, 교육·전승 체계 중 어떤 요소에서 민속성과 권번 예능의 전문성이 가장 분명히 교차하는가”에 대한 견해 설명을 요청했다. 또한 “공동체의 신명을 개인의 몸에 담은 전승이라면, 개인춤의 신명과 질적으로 어떻게 구별되는가에 대한 기준과 해석”의 필요성을 질문했다.
토론자들은 공통적으로 “권번계 장고춤과 평양 기방 전승의 장고춤 원형이 서로 다른 맥락에서 형성·확장된 것이라면, 양자를 구별할 수 있는 기준과 실증적 논리의 보강이 필요하다”고 의견을 모았다. 더불어 “초기 명칭이 ‘십이체장고춤’으로 실록에 표기된 근거가 있는지, 아니면 ‘장고춤’이라는 큰 범주에서 시대적 확장과 명명 과정을 거친 것인지에 대한 문헌·각주 기반의 정합성 보강이 요구된다”고 제언했다.
무형유산 검증과 의견 수렴의 확대
세미나 직후, (사)십이체장고춤보존회의 고문인 강신구 풀뿌리문화연구회 대표는 학술 담론의 확장 필요성을 뒷받침했다. 그는 전통예술분야 종목은 실록으로 남아야 할 전제임에 따라, 기록문화가 유지되고 적확한 지역성과 역사적 사실이 존재되어야 한다며 이에 제도적 검증과 보다 더 많은 의견이 수렴되어야 한다는 공론의 장이 요구되어야 한다”는 점을 강조했다.
이번 세미나는 전통춤의 전승 맥락을 기록과 실증, 계보의 검증, 종목 명칭의 표준화, 무형유산 종목 확장이라는 제도 담론으로 연결하며 2025년을 마무리한 의미 있는 공론의 장으로 남았다. 권번과 재인청을 통해 이어져 온 춤의 맥이 단절과 훼손의 그림자를 넘어, 전통춤 다양성의 심화 연구와 무형유산 종목 확장 논의로 한층 더 성장할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