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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3월 창극의 귀환... 국립창극단 〈보허자〉, 계유정난의 그늘 속 ‘허공을 걷는 자’ 다시 만나다

2026년 3월 19일부터 29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국립극장 달오름극장, 3월 창극의 귀환... 국립창극단 〈보허자〉, 계유정난의 그늘 속 ‘허공을 걷는 자’ 다시 만나다
 

국립극장(극장장 박인건) 전속단체 국립창극단(예술감독 겸 단장 유은선)이 창극 〈보허자(步虛子): 허공을 걷는 자〉를 오는 3월 19일부터 29일까지 국립극장 달오름극장에서 선보인다. 2025년 초연 당시 전 회차 매진을 기록하며 화제를 모았던 작품으로, 1년 만의 재공연이다.

 

이번 작품은 조선 제7대 왕 세조(수양대군)와 그의 권력욕으로 희생된 세종의 셋째 아들 안평대군을 모티브로 한 창작 창극이다. 계유정난(1453)을 직접적으로 재현하기보다, 27년 뒤 역사적 어둠 속에 남겨진 이들의 삶을 응시한다는 점에서 차별화된다.

 

‘보허자(步虛子)’는 고려시대 송나라에서 전래되어 조선 궁중음악으로 자리 잡은 악곡으로, 무병장수와 태평성대를 기원하는 축원의 의미를 지닌다. 그러나 창극 〈보허자〉는 ‘허공을 걷는 자’라는 이름의 함축적 의미에 집중한다. 발 디딜 곳 없는 허공을 위태롭게 걷는 인간의 운명을 통해, 자유를 동경하지만 현실의 굴레에 묶여 살아가는 존재의 비애를 은유한다.

 

극본은 배삼식 작가가 맡았다. 안평대군의 죽음을 증명할 기록이 전무하다는 역사적 공백에 착안해, 그의 딸 ‘무심’, 화가 ‘안견’, 애첩 ‘대어향’ 등 실록 속 인물들을 새롭게 재해석했다. 안평의 꿈을 그린 ‘몽유도원도’를 찾아 대자암으로 향하는 여정은 비극적 현실과 대비되는 이상향을 향한 갈망을 그린다.

 

연출은 젊은 연출가 김정이 맡았다. 초연의 미학을 유지하면서도 일부 장면을 보완해 밀도를 높였다. 그는 “상실과 고통 속에서도 희망을 품고 위태로운 줄타기를 이어가는 우리 모두의 이야기”라며, “폐허 위로 흩날리는 복숭아 꽃잎처럼 관객의 삶에 고요한 위로가 전해지길 바란다”고 밝혔다.

 

음악은 국립창극단과 다수의 작품을 함께해 온 한승석 음악감독이 작창과 작곡을 맡고, 장서윤이 합류했다. 거문고, 25현 가야금, 생황, 양금 등 선율악기 중심의 반주로 서정성을 극대화했으며, 궁중음악 보허자의 결을 살리기 위해 철현금, 운라, 편종, 편경 등 창극에서는 보기 드문 악기를 적극 활용했다. 시김새와 부침새를 덜어낸 담백한 창법은 초월적 정서를 강조한다. 이번 재공연에는 장태평 지휘자가 새롭게 합류해 14인조 국악기 라이브 연주로 몰입도를 높인다. 현대무용가 권령은의 안무 또한 인물들의 내면을 현대적 움직임으로 직조해 작품의 감정선을 확장한다.

 

무대미학 역시 작품의 백미다. 무대디자이너 이태섭은 ‘꿈의 폐허’를 키워드로, 거친 합판 구조물과 무너진 기둥을 통해 비극의 잔해를 형상화했다. 중앙의 거대한 언덕은 인물들의 고단한 생을 상징한다. 특히 후반부 무대 위로 흩날리는 복숭아 꽃잎과 함께 펼쳐지는 ‘몽유도원도’ 장면은 한 폭의 수묵화 같은 장관을 선사한다.

 

총 35명의 출연진이 무대에 오른다. ‘나그네(안평)’ 역에 김준수, ‘수양’ 역에 이광복, ‘무심’ 역에 민은경, ‘안견’ 역에 유태평양 등 국립창극단 간판 배우들이 다시 한 번 호흡을 맞춘다. 대자암의 비구니 ‘본공’과 ‘도창’ 역에는 김미진이, ‘대어향’ 역에는 이소연이 새롭게 합류해 무대에 신선한 에너지를 더한다.

 

역사의 비극을 정면으로 응시하면서도, 그 폐허 위에 다시 피어나는 희망의 서사를 그리는 창극 〈보허자〉. 허공을 걷는 듯 위태로운 인간의 삶을 노래하는 이번 무대가 3월, 달오름극장을 다시 한 번 물들일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