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술프로젝트 남기고 싶은 이야기 – 살아 숨 쉬는 진도 민속무형유산의 보고(寶庫) 조오환
구술프로젝트 남기고 싶은 이야기는 국악방송이 우리의 전통문화 국악과 함께 해온 명인 명창들의 삶과 치열한 예술이야기를 세상에 전하고 이 기록을 남겨 국악 역사를 보존하기 위해 2015년부터 준비하여 2018년 1월 봉산탈춤 김애선 명인의 이야기가 첫 방송으로 나갔다. 이후 월 1회 한 분씩 약 한 시간 동안 여든 여덟 분의 이야기가 이어지고 있는 뜻 깊고 찬란한 보석 같은 프로이다.
2025년 2월 3일 저녁 9시에는 엿타령의 명인 전라남도 무형유산 제40호 조도닻배노래 조오환 보유자의 이야기가 방송되었다. 조오환은 1949년 전남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에서 오남 오녀 중 다섯째로 태어나 열 살 때 아버님 상여 앞에서 한복을 입고 춤을 추었다. 열 자식을 키우기 위해 손수 엿을 빚어 팔았던 홀어머니의 힘든 삶의 여정을 보면서 성장하여 일흔 일곱 세월 동안 진도 민속 국악예술과 하나 되어 살아가는 진솔한 이야기로 듣는 이의 마음을 행복으로 가득 채워주었다. 조오환의 국악인생 삶은 참 자랑스럽고 살아 숨 쉬는 진도 민속 국악예술의 보고(寶庫)이다.
방송 중 들려준 약간 탁하면서도 걸죽하며 정이 흐르는 조오환의 라이브(Live) 소리 엿타령 / 진도북놀이 중 다듬이가락 소리/ 조도닻배노래 중 술비소리, 노젓는소리 / 진도상여소리 / 만년필타령 / 비는 소리 / 장타령 / 뱀장수타령 / 방구타령은 체계적인 학습과 스승으로부터 배운 소리가 아니다. 아버지의 목소리를 물려받았고, 진도 전역으로 타작소리 등 농요 메김 소리를 하러다니던 외할아버지의 유전자를 받아 타령과 재담소리 등 우리소리를 잘하셨던 어머니 박색구의 소리를 태아 때부터 듣고 자라면서 절로 몸에 익힌 소리이다. 이야기 중에 굿거리와 자진머리 장단으로 깨끗하면서도 티끌 없이 맑은 힘이 실린 엿타령이 흘러나와 ‘어느 명창의 소리인가?’ 하였는데, 어머니 박색구의 소리였다.
어머니 박색구는 진도군 의신면 돈지리에서 태어나 어린 나이에 한동네에서 연애결혼을 하였지만 일찍 남편을 잃고 집에서 엿을 만들어 파셨다. 엿을 만들기 위해 밤새도록 맷돌에 보리를 갈고 하루 종일 엿을 고면서 육자배기나 엿타령을 하셨는데 조오환 엿타령 사설의 대부분은 이때 듣고 익힌 사설이며 육자배기도 이렇게 배웠다 .
엿타령 사설 속 풍자는 어머니의 눈물이다. 초등학교 3학년 시절 어머니가 장날 동네 장터에서 엿을 팔기 위해 손님을 모으려고 소리를 하였는데, 동네이장인 친척분이 ‘집안 창피하다’하여 진도를 벗어나 신안이나 목포에서 엿을 팔고 보름에 한번 집에 오는 고된 삶의 아픔이다. 어머니는 비는소리(비손)도 잘하셨는데 때와 장소를 구분하지 않고 어디서든지 비셨기에 이 영향으로 조오환 타령의 사설은 살아 움직이는 소리이다.
진도(珍島)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진도 아리랑 / 국가지정 무형유산 제8호 강강술래, 51호 남도들노래, 71호 진도씻김굿, 81호 진도다시래기 / 전라남도지정 지방 무형유산 진도만가, 조도닻배노래, 진도북춤, 남도잡가 등 전국에서 우리의 전통 민속 무형유산이 가장 많이 보존 계승되며 진도사람들의 삶속에 함께하는 신명이 춤추는 곳이다.
이 많은 무형유산을 계승 보존하기 위해 무형유산에 따른 다수의 보존단체들이 활동하고 경연대회가 열린다. 조오환은 젊은 나이 때부터 사라져가는 진도무형유산을 지키기 위해 ‘진도다시래기, 진도북놀이, 조도닻배노래, 호랭이액맥이굿, 명다리굿, 무궁화창극단, 진도군립민속문화예술단 창단과 진도아리랑발표회, 남도민요경창대회, 개최에 직접 관여하여 불씨를 만든 핵심 인물로 자신의 이익을 떠나 온 정열을 쏟아 부었고 희생을 감수했다.
진도다시래기보존회는 제4대 진도문화원 조담환원장의 추천으로 조오환이 중심이 되어 다시래기 계를 조직하여 스님과 장님 역할을 하며 봉사활동 중 무형유산 등록을 위한 발표회가 해남에서 열렸는데, 이날 서울 행사를 다녀오느라 동참을 못하게 되었고 이후 행사에 빠졌으니 보존회에서 탈퇴하라는 이야기가 흘러나와 스스로 그만두었다고 한다.
조오환은 7~8세 때부터 소리를 잘 한다는 말을 들었고, 초등학교 때는 공부는 소질이 없었으나 엿타령이나 진도아리랑 등 소리는 잘했다. 어려서부터 담배 피고, 노래 잘하고, 춤도 추고, 남들을 웃기는 생활을 하였지만, 본인이 미쳐서 좋아하니 어머니도 말리지 않으셨다.
어려운 집안형편 때문에 초등학력으로 서울에 올라와 사탕공장, 만년필장사, 과일장사, 건축 공사를 하면서 홀로 사시는 어머니를 위해 집을 지어드렸고, 태풍으로 날아간 어머니 집 지붕을 고쳐드리려 진도에 내려왔다. 벽돌공, 미장공 등 건축공사를 했는데 이때가 새마을사업이 한창일 때라 진도에 100평 이상 창고 80%는 자신이 지었다고 한다. 이 무렵 ‘진도문화원’ 건립공사에 참여 하게 되었는데 진도문화원 조담환원장이 타고난 끼를 보고 발탁하여 국악인의 길을 걷게 되었다.
이후 박병천 명인에게 장구가락과 닻배노래 소리를, 박관용 진도북춤 명인에게 북을 배웠고 씻김굿을 직접 하지는 않았지만 반주자로 참여한 적은 있다고 한다. 상여소리는 씻김굿의 길닦음굿이다. 진도 상여소리는 타 지역과 달리 사물을 치는데, 그는 일곱가지 진도 상여소리를 채록하여 가지고 있다.
어려서부터 소리를 즐겨 부르던 조오환 한 개인이 진도 씻김굿을 제외한 현존하는 진도무형유산을 거의 실현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사라져가는 진도무형유산을 채록하고 계승하여 국내·외에 알리는 노력을 하는 것에 감탄하지 않을 수 없다. 커다란 칭찬과 함께 진도 민속 무형유산의 보고(寶庫)라 칭하여도 과언이 아니라고 단언한다.
1982 진도문화원 민속예술단원, 진도가락연구회 / 1999~2024 진도문화원 부원장 / 2006 전라남도 무형유산 제40호 조도닻배노래 보유자 / 2007~ (사)진도민속문화예술단 이사장 / 2009~ 일요상설공연 연출감독 / 2011~2013 미국 오하이오주립대학 민속학 강의 · 2012~ 미국 하와이대학 민속학 강의 / 2013 미국 LA한인축제 40주년 초청공연 등 주요 경력과 1993 나배도 닻배노래 남도문화제 최우수상 / 1999 제27회 남도문화제 출연지도상 /2001 제28회 남도문화제 작품지도상 / 2007 대한민국 문화원상 / 2021 제33회 전남향토문화상 / 2021 제3회 대동전통문화대상(공연부문) 대상 등 많은 수상이 조오환의 진도 민속무형유산에 대한 열정과 희생이 빛나는 삶의 사실을 증명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