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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진실을 기억하는 노래, 민주주의를 잇는 마음”... ‘다시 반민특위, 다시 민주주의’ 후원 콘서트 현장 스케치

다시 불러낸 이름들, 반민특위의 미완의 역사
반민특위의 정신, 오늘의 민주주의를 비추다
75년 만에 드러난 진실, 반민특위의 명예를 되찾는 길

 

“진실을 기억하는 노래, 민주주의를 잇는 마음”... ‘다시 반민특위, 다시 민주주의’ 후원 콘서트 현장 스케치

 

국정감사가 막 끝나고 여야 의원들이 해외 일정을 소화하느라 참석자는 많지 않았지만, 오히려 그 빈자리는 이날 콘서트의 의미를 더욱 또렷하게 드러냈다. 역사와 진실을 증언하는 주체가 결국 ‘시민과 유족’이라는 점을 확인하는 자리였기 때문이다.


영상으로 전해진 우원식 국회의장은 “반민특위의 정신은 과거를 처벌하기 위한 것이 아니라, 잘못된 역사를 반복하지 않기 위한 민주공화국의 양심”이라며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은 국회가 되겠다”고 다짐했다. 

 

공연의 첫 무대는 종합예술단 봄날의 광복 80주년 기념 합창극 <아무개의 나라>였다. 함께 부른 죽창가, 독립군가, 그리고 ‘아름다운 강산’까지, 노래·낭독·대사로 엮인 무대는 이름 없이 사라져간 독립운동가들의 삶을 생생히 되살리며 공연장의 분위기를 이끌었다.

 

종합예술단 봄날

 

이어 반민특위 조사관 이봉식 선생의 아들 이영국 씨가 무대에 올라 유족들을 한 명씩 소개했다. 반민특위 김상덕 위원장의 후손부터 특별검찰부 차장 노일환 의원의 가족, 제헌의원 김홍진·김병희 의원의 유족까지, 대부분의 선친이 지금 평양 애국열사릉에 묻혀 있어 자손들은 한 번도 묘에 가보지 못한 현실을 털어놓았다.

 

그 가운데 제헌의원 강욱중 의원의 딸 강금자 선생의 증언은 공연장을 깊은 침묵에 빠뜨렸다.
아버지가 끌려간 뒤 행방불명되고, 어머니마저 완장을 찬 공안원에게 연행되어 끝내 돌아오지 못한 일, ‘월북자 가족’이라는 낙인 아래 7남매가 겪어야 했던 고문·차별·배제의 세월….

 

그는 “단 한 명이라도 살아 있는 동안, 이 사건이 조작이었다는 사실을 국민 모두가 알게 해달라”고 호소했다. 

 

분위기를 이어 노찾사(노래를 찾는 사람들)가 무대에 올라 “동지를 위하여”, “행복의 나라”, “그날이 오면”을 노래했다. 민주화의 현장에서 늘 함께해온 이들의 목소리는 이날도 위로와 연대의 신호였다.

 

노찾사

 

이어 무대에 선 정태춘은 특유의 국보급 저음과 깊은 울림이 하늘을 스치는 듯, 〈떠나가는 배〉를 불러 공연장의 감정을 다시 한 번 뒤흔들었다. 오랜 시간 사회적 약자와 역사의 그늘에 선 이들을 위해 노래해온 그는, 이번 공연 역시 출연료를 거절하고 참여했다. 마지막 앵콜곡 〈북한강에서〉는 조용한 서정과 잔잔한 희망을 동시에 남기며 공연 전체의 감정선을 완성했다.

 

정태춘

 

갑작스레 감독을 맡아 무대를 이끈 문원섭 감독, 영상 제작을 맡은 김진혁 교수 등 보이지 않는 손들의 헌신도 이날 공연을 정갈하게 빛냈다. 마지막으로 이영국 반민특위 사무총장은 “오늘의 진짜 주인공은 여러분”이라며 “여러분이 있기에 반민특위 명예 회복을 위한 싸움이 계속된다”고 강조했다.

 

이영국 반민특위 사무총장

 

‘다시 반민특위, 다시 민주주의’ 후원 콘서트는 잊힌 역사를 기억으로 복원하고, 왜곡된 과거를 바로잡고, 남겨진 유족의 고통을 함께 나누는 시민 민주주의의 장(場)이었다.

 

유족의 증언, 합창극, 노찾사, 정태춘의 노래가 한데 모여 이날 공연은 이렇게 말하고 있었다.

 

“민주주의는 기억 위에 선다.
그리고 그 기억을 지키는 일은 지금 우리에게 달려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