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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획연재 15]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

 

[기획연재 15] 재인청 춤꾼 이동안 - 수난의 시대를 살다 간 한 춤꾼의 포괄적인 초상

 

살다보니 3

 

눈물이 눈물을

 

노환으로 입원해 계신 나날이 길어지면서 병문안을 나의 일정으로 삼기로 했다. 늘 밝은 표정으로 맞으시는데 예의 위트는 점점 발전하는 것 같았다. 여사의 수발과 배려는 조용하면서도 참으로 꼼꼼했다. 어느덧 나도 모르게 병문안이 오히려 나를 위한 위안의 시간이기도 한다는걸 알았다. 하루는 여사께서 나를 붙잡고 성화를 바치신다. 선생님께서 남몰래 컵라면을 드시다가 들켰는데 휠체어를 타고서도 얼마나 빨리 도망가는지 병원에 한바탕 소동이 났다 하신다. 그날 이후로 간호사들이 환자 휠체어 달리기대회를 열어야겠다 했다면서 그러면 우리 할아버지가 무조건 1등이라고, 쾌활하게 웃으신다. 이제 여사께서도 위트가 넘치는 분이 되었다고 속으로 웃었다.

 

곧 퇴원한다는 소식에 문안을 드리러 갔더니 선생께선 가만히 누워 계셨다. 그런데 분위기가 착 가라앉은게 느낌이 좋지 않았다. 첫 말씀이 “왔는가”가 아닌 “춤은 잘 추고 있는가?”였다. 그러고는 가만히 나를 바라만 보시던 그 눈길, 이상했다. “어서 일어나셔서 장구채 잡으시고, 야단도 치셔야지요.” 대답 없는 선생의 손을 가만히 잡아드리고 나왔다.

 

급격하게 병세가 악화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찾아간 병실에서 여사께서 일러주시길, 그날 병실 밖으로 나가는 나를 선생께선 끝까지 바라보시며 조용히 눈물만 흘리시더란다. 그러시더니 갑자기 나빠지셨다는 것이다. 나는 그렇게 선생과의 이별을 받아들여야 했다. 선생과 함께했던 많은 장면들이 줄지어 떠오르다 사라진다.

 

병원에 입원하신 선생이 몰래 빠져나와 제자의 무용실을 찾았던 기억, 재인청 악사들을 모아 태평무 장단을 녹음하던 일, 양금 소리처럼 예쁜 아이라 하여 어눌한 발음이 양을 앙으로 만들어 앙금채라 나를 부르시던 목소리, 태평무에 대한 내 책임은 이제 끝났다. 이제부터 네가 이으라고 이수증 문안을 일러주시던 결의에 넘치던 표정이 눈물이 되어 흘렀다.

 

 

선생에게도 노환은 막을 수 없는 가시나무였다. 입원하신 병실을 찾았을 때, 선생께선 “춤은 잘 추고 있는가?” 하시더니 가만히 쳐다보기만 하셨다. 이윽고 부음을 받고 장례식장을 찾았을 때, 안남국 여사님은 조용히 일러주셨다. “그 날, 자네가 나가는 등을 바라보며 하염없이 우시더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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