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전통예술의 계승과 인재양성의 기반을 구축한, 최윤 선생의 예술사적 업적 학술포럼 개최
고도(古都) 경주, 첨성대와 맞닿은 사정동 경주문화원에서 2025년 12월 27일 ‘계파(桂坡) 최윤 선생의 예술사적 업적 재조명’ 학술포럼이 열렸다. 1대 최진립 장군으로부터 400년 가풍으로 이어진 경주 최부자 가문은 ‘노블레스 오블리주’의 상징으로 기억되지만, 11대 최현식의 차남이자 종합 예능인이었던 계파 최윤(崔潤, 1892~1960년대)의 이름은 대중에게 낯설다.
이번 포럼은 “누군가의 자손”이 아닌, 한국 근대 예술의 지형을 설계한 중심 인물로서 최윤을 다시 부르는 자리였다. 관습도감 김수현 이사장의 진행으로 시작된 포럼은 최윤의 가문적 뿌리와 예술적 토대를 함께 짚었다.
경주 최부자 가문은 오랫동안 부와 명예, 도덕적 의무를 지켜왔다. 그러나 이 가문의 또 다른 축, 당대 풍류객이었던 계파(桂坡) 최윤(1892~1960)의 예술사적 발자취는 그동안 충분히 조명되지 못했다. 최윤은 거문고 악보를 직접 제작할 만큼 이론과 실기를 겸비했고, 춤과 글씨, 시·서·악을 아우르는 종합 예능인으로 전통 예인·지식인들과 활발히 교류한 인물이었다.
국악계의 거목인 인간문화재 박동진, 통정대부 이동백, 판소리 명창 송만갑, 연정(蓮亭) 임윤수 등 당대의 풍류인들이 경주 최부자 사랑채인 풍류방에 머물며 최윤에게 악(樂)과 서(書)를 수학했다는 사실은 참석자들의 시선을 붙들었다.
특히 연정(蓮亭) 임윤수는 경북 영천 출신으로, 해방 이후 충남도립 연정국악원(공주)과 대전시립 연정국악원을 설립하고 초대 원장을 맡아 전통예술의 공적 기반을 세운 인물이다. 이러한 임윤수의 예술 세계가 경주 교동 최부자 사랑채에서 계파(桂坡) 최윤 선생에게서 악(樂)과 서(書), 학문과 풍류의 정신을 7년간 사사하며 다져졌다는 기록은, 최윤 선생이 명인을 넘어 제자와 시대를 묶어 세운 전승의 스승이었음을 입증한다.
최윤 선생은 해방을 맞아 '경주문화협회'를 설립하고 국악과, 음악과, 미술과 등 대학교육과정의 경주예술대학을 개교하여 학장을 역임하지만 시국사정으로 3년만에 폐교되고 후에 1955년 ‘동도국악원’을 설립하여 한국 종합 예술교육의 토대를 만들었다. 이는 훗날 경주예술학교의 전신이 되었고, 동덕여대나 서울대에서 국악과가 생겨나기 전에 지방에서 국악과를 전면에 내세운 예술교육 기관의 첫 모델이라는 점에서 교육사적으로도 선구적 사건으로 평가됐다.
동도국악원은 교육 기관을 넘어, 경주 대표 국악 축제 ‘신라문화제’ 태동의 산실이었고, “인재 양성에서 지역 축제 향유”로 이어지는 지방 국악 진흥의 본궤도를 처음으로 제시했다.
포럼 좌장 김승국 원장은 “계파 최윤 선생은 이제 더 이상 특정 가문의 주변부 인물로 머물러서는 안 된다. 그는 전통예술의 근대적 전환기 속에서 제도와 전승의 환경을 스스로 구축한 핵심적 정점이었다."라며 "이번 포럼이 선생의 예술적 영혼이 온전히 복원되는 역사의 전환점이 되기를 간절히 소망한다.”라고 피력했다.

사단법인 관습도감 김수현 이사장은 “관습도감은 전문예술법인으로 전통음악의 보존과 전승을 중심으로 활동하며, 전통문화의 계승과 지역 예술 발전에 기여하고, 전통예술의 지속성과 정체성을 지키는 데 중점을 두고 있다”고 밝혔다. 이어 “이를 위해 공연·교육·학술포럼 등 다층적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으며, 최근 ‘계파 최윤 선생의 예술사적 업적 재조명 학술포럼’을 주최·주관하며 전통예술의 가치와 업적을 널리 알리는 데 앞장서고 있다”고 전했다.
또한 “앞으로도 전통문화의 깊이와 현대예술의 감각을 연결하는 플랫폼으로서, 문화예술이 사회와 일상 속에서 더욱 의미 있게 자리 잡을 수 있도록 노력해 나갈 것”이라고 피력했다.
이번 포럼은 한 예인의 이름을 넘어 지역 전통예술 전승의 뿌리와 공공성, 근대적 전환의 정신을 다시 기록한 자리로 남았다. 특히 동도국악원이 해방 직후 사랑채와 사설 풍류방에서 출발해, 전국 최초의 시립국악원으로 변모하며 공공예술기관으로 확장된 과정은 한국 국악사의 가장 모범적인 사례로 평가된다.
이는 사설 전장(傳場)의 풍류가 공공예술기관의 토양으로 승화된 한국 국악사의 모범적 기산점으로 남은 사건이며, 앞으로 계파 최윤 선생에 대한 연구가 한층 더 활발해질 것이라는 기대를 모으고 있다. 계파 최윤의 이름은 이제 변방이 아닌 중심의 좌표로 재기록되어야 할 국악사의 숙제이며, 그의 음악·철학·전승 체계에 대한 탐구는 앞으로도 더 깊고 넓게 확장되어야 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