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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과 구정(舊正)

 

‘설’과 구정(舊正)

 

해(年)가 바뀌면 설이 찾아온다. 2024년 갑진년(甲辰年)은 2월 10일이 ‘설’이다. ‘설’은 음력으로 1월 1일이며, 일상적으로 ‘설’부터 2023년 계묘년(癸卯年) 검은 토끼해가 가고 푸른 용의 해인 갑진년(甲辰年)이 시작된다고 인식한다(원해元解 : 띠는 천체의 주기적 운행을 시간단위로 구분하는 역법에서는 24절기의 첫 절기, 새해 하늘이 열리는 날인 입춘(立春)으로 띠가 바뀐다).

 

이렇듯 우리 조상들은 일찍부터 음력을 사용하였으며, 음력 1월 1일 정월 초하루 새해 첫날을 ‘설’이라 했다. 그 유래는 언제부터인지 알 수 없으나, 고대 신라시대부터 중국기록에서 그 흔적이 발견된다. 신성한 날이라는 신앙적인 의미가 있는 ‘설’은 한 해의 첫날이라는 점에서 중요하며, 온 가족이 모여 차례를 지내고 성묘하는 세시풍속은 오늘날에도 전승되고 있다.

 

하지만 일제 강점기를 거치면서 한 해의 첫날은 1월 1일이며 설은 민족 고유 명절이 되어 구정이라 불렀고 그 잔재가 아직도 남아 있다.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음력을 버리고 양력만 사용하기 시작한 일본이 일제강점기에 ‘우리 전통문화 말살정책’으로 양력 새해 첫날인 1월 1일을 설로 강제하고 일인들의 방식대로 양력과세(揚歷過歲)를 강요했다. 이때부터 ‘설’의 다른 이름, 원정(元正), 정조(正朝)에서 정(正)을 따와 신정(新正)이라 하고 상대 개념으로 우리 전통 설을 구정(舊正)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런 과정에서 우리 전통 설과 양력 1월 1일인 신정을 명절로 여기는 이중과세 풍속이 생겨났다. 해방 이후 이후에 박정희 정권 때까지도 ‘설’을 인정하지 않았으며 1985년 5공 정부는 ‘설’을 ‘민속의 날’이라는 신종어로 탄생시켰고, 1989년 음력 1월 1일에 이르러서야 우리 고유명절 ‘설’을 70~80년 만에 되찾게 되었다.

 

일제는 우리 명절 무렵이면 1주일 전부터 떡방앗간을 폐쇄하고 새 옷을 입고 나오는 어린이들에게 먹칠을 하는 등 ‘설’과 같은 세시명절을 억압하였다. 반면 신정에는 시메나와(표승=標繩)라 하여 새끼에 귤을 꿰어 대문에 달게 하고, 일본 명절인 천장절(天長節), 명치절(明治節), 기원절(紀元節) 등을 국경일로 정하여 각종 행사에 한국인을 참가시키며 명절과 그 행사 의식을 우리에게 이식하여 강요하였다.

 

이런 아픔의 역사가 담겨 있는 ‘신정’이라는 단어가 사라진 지 30년이 넘었고 우리 생활 속에서도 찾기 어려운데, 지금도 적지 않은 사람들이 ‘구정’ 이란 단어를 쓴다는 것은 아직까지도 우리 정신문화에서는 일제 강점기가 끝나지 않았다는 아픔이다. 이것이 일제의 무서움이며 우리의 안일함과 무개념이며 무의식이다. 그러므로 ‘설’을 구정이라 하면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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