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려진 것들 속에서 다시 피어난 생의 조각들, 김정아 개인전 《한걸음 다가서면 바꿀 수 있어요》, 두손갤러리에서 열려
서울 중구 덕수궁길에 위치한 두손갤러리에서 김정아 작가의 개인전 《한걸음 다가서면 바꿀 수 있어요 (You Can Change It If You Take One Step Closer)》가 6월 19일부터 7월 15일까지 열린다. 이 전시는 바닷가에서 떠밀려온 쓰레기와 일상에서 버려진 오브제들을 통해, 우리가 외면해온 문제와 잊힌 존재들, 그리고 인간 내면의 진실을 마주하게 한다.
김정아 작가의 예술은 개인적 체험에서 출발한다. 어느 날 딸기를 먹고 남은 꼭지가 접시에 덩그러니 남겨진 것을 바라보다, 작가는 아이를 낳고 낯선 지방에서 혼자 육아하던 자신의 모습이 떠올랐다고 한다. 서울에서 거제로 이주해 지역 사회에 속하지도 못하고, 점점 서울과도 멀어져 가던 시절. 작가는 자신이 어디에도 온전히 속하지 못하는 경계인의 감정을, 바닷가에서 부유하다 밀려왔다 다시 쓸려나가는 해양 쓰레기들에 투영했다.
그는 바닷가에서 수거한 이 부유물들을 ‘요정’이라 명명하며, 그 존재에 이름을 부여하고 하나의 인격을 담기 시작했다. 햇빛과 소금, 파도에 의해 깎이고 닳아진 조각들은 작가의 손에서 새로운 생명력을 얻는다. “나는 이 아이들을 주인공으로 만들어주고 싶었어요. 버려진 것들을 귀중한 존재로 재현하는 일, 그 자체가 저에게는 자화상이었습니다.”
김정아 작가는 특히 렘브란트의 자화상에서 깊은 영향을 받았다고 밝힌다. 렘브란트가 삶의 다양한 국면에서 끊임없이 자신의 얼굴을 마주하며 내면을 탐색했던 것처럼, 김정아 역시 요정들을 그리는 과정을 통해 자신의 감정과 정체성을 비추는 거울을 만들고 있다. “렘브란트가 자화상을 통해 자신의 내면을 들여다보고 성찰했듯, 나에게도 요정은 자화상입니다. 그들을 바라보다 보면 어느새 내가 그 요정이 되어 있죠.”
해양쓰레기를 수거하던 중 우연히 발견한 작은 인형을 모티프로 한 작품
이번 전시에서는 《요정의 초상》 시리즈, 꽃이 진 뒤의 시간을 조명하는 《꽃 꿈》 연작, 그리고 렌티큘러 기법으로 관람자의 움직임에 따라 이미지가 변화하는 《한걸음 다가서면 바꿀 수 있어요》 등 다양한 작품이 소개된다. 특히 렌티큘러 작품은 관람자의 시점 변화에 따라 이미지가 다르게 보이며, 우리가 쓰레기를 바라보는 인식 또한 얼마든지 바뀔 수 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2010년부터 김정아는 거제에서 바다 쓰레기를 수거하며 해양 환경 오염의 심각성을 알리는 활동을 해왔다. 그러나 그의 작업은 환경 운동을 넘어, 존재의 경계에 놓인 것들에 대한 연민과 새로운 정의를 담는다. 쓰레기를 통해 질문을 던지고, 버려진 것들을 통해 존재의 의미를 되묻는 작업은, 결국 현대인의 초상이며 동시에 우리 모두의 이야기이다.
사용후 찌그러지고 버려지는 일회용컵을 오래 쓸 수 있도록 도자기로 다시 만든 작업
작가는 말한다. “화려하게 피었다가 지고 나서야 비로소 보이는 삶의 진실이 있죠. 우리는 존재의 가치를 외면한 채 소비하고 버리는 데 익숙해졌지만, 그 이면을 들여다보면 오히려 삶의 이유와 아름다움이 숨어 있습니다.”
《한걸음 다가서면 바꿀 수 있어요》는 무심코 지나쳤던 사물들과 감정, 그리고 인간 존재의 층위를 마주하게 한다. 김정아 작가의 시선은, 한 번이라도 외면된 적이 있었던 이들에게 깊은 공감을 불러일으키며, 우리에게 다시 ‘한 걸음’ 다가설 용기를 건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