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복 80주년, ‘놀이판’ 40년의 울림… 한일 전통예술 교류 무대 서울서 펼쳐지다”
서울 남산국악당에서 열린 ‘축제의 땅: 인연이 맺은 잔치’ 공연은 국경과 세대를 초월한 예술 교류의 장이었다. 일본 나고야에서 40년간 한국 전통예술을 배우고 익혀온 ‘놀이판’ 예술인들과 한국 명인들이 함께 꾸민 이번 무대는, 웃음과 추모, 그리고 감동이 교차하는 하나의 서사극처럼 펼쳐졌다.
공연의 시작은 사회자 진옥섭의 유머와 역사적 비유가 어우러진 입담으로 열렸다. 그는 팜플릿의 코팅을 장마의 탓으로 돌리며 “637년 전, 위화도 회군 또한 장마로 활의 아교가 풀려 전쟁 무기를 쓸 수 없었던 탓”이라 설명해 웃음을 자아냈다. 이어 “그 장마처럼 오늘의 공연도 예술성이나 오락성보다, 인연과 교류 자체에 의미를 둔다”고 강조해 공연의 취지를 밝혔다.
첫 무대는 학의 일생을 춤으로 표현한 ‘학춤’이었다. 갓 부화한 학에서 노년의 학까지를 담아낸 춤은 생태적 은유와 더불어 논어의 “학이 습지에 있지 않음” 구절을 인용하며, 학이 사라져가는 현실과 맞물려 묵직한 울림을 남겼다.
이어 김혜윤 선생이 선보인 교방굿거리 춤은 진주의 마지막 기생 김수악 선생으로부터 이어져 내려온 맥을 보여줬다. 김수악 선생은 “파리를 잡는 동작마저 춤으로 말아 넣었다”는 사회자의 해설처럼, 이어 김혜윤 선생이 무대에 올라 교방굿거리 춤을 선보였다. 단순한 동작조차 춤으로 승화시킨 김수악 선생의 예술적 자유로움은 오늘의 무대에서 다시 살아났다.
이번 무대의 중심에는 지난해 작고한 재일학자 박찬호 선생이 있었다. 그는 1987년 일본어로 『한국 가요사』를 출간하며 대중가요 연구의 초석을 놓았고, 1992년에는 한국어판을 내며 연구의 지평을 확장했다. 2009년에는 1980년대까지 다룬 증보판을 두 권으로 내놓았으며, 2018년에는 다시 일본어판으로 정리했다.
이날 무대에 오른 이준희 교수는 박찬호 선생의 발자취를 소개하며 “선생이 가요사를 풍문에서 역사의 영역으로 옮겨놓았다”고 평가했다. 그는 『박찬호 컬렉션』 도록을 경품으로 내걸고 관객과 유쾌한 퀴즈를 주고받으며, 선생의 뜻을 이어가겠다는 의지를 다졌다. “남은 사람들이 계속 이어가야 한다”는 그의 발언은 공연장을 숙연하게 만들었다. 이어 그는 박찬호 선생이 즐겨 부르던 ‘번지 없는 주막’을 노래하며 무대를 마무리했다.
공연의 또 다른 주인공은 일본 나고야에서 활동하는 ‘놀이판’이었다. 사회자는 “조선인 소년이 장구 소리에 정체성을 되찾고, 그 자녀와 일본인 가족들이 함께 장단을 익히며 40년을 이어왔다”고 설명했다. 실제로 놀이판은 재일동포와 일본인들이 함께 만들어온 문화 공동체다.
무대에서는 징용의 역사를 기록한 김봉수, 그리고 재일동포와 일본인 아이들을 함께 가르치며 공동체 예술을 일군 이나가키 마사토시 교수의 이야기가 소개됐다. 술잔을 늘 곁에 두고 살던 이나가키 교수가 장사익 공연을 마지막으로 보고 결국 세상을 떠났다는 사연은 공연장을 숙연하게 했다.
공연 후반부는 세상을 떠난 동료들을 추모하는 시간으로 채워졌다. 이나가키 마사토시, 김봉수, 리성호를 기리는 살풀이춤은 “살을 풀어내는 춤”이라는 사회자의 해설과 함께 이매방 선생으로부터 이어진 살풀이의 맥은 박영수 선생에 의해 무대에 살아났고, 이윤석의 덧배기춤은 농사꾼의 거친 삶을 담아내며 땀과 흙의 예술로 관객을 사로잡았다.
박경랑 선생의 교방소반춤은 교방청에서 전해 내려온 전통춤으로, 소반을 흔들림 없이 지탱하며 유려하게 이어지는 박경랑 선생의 춤사위는 여성적 단아함과 기품 속에 풍류 정신을 담아내, 관객에게 전통예술의 정갈한 아름다움과 깊이를 각인시켰다.
공연의 대미는 장사익의 무대였다. 그는 “일본 나고야의 '놀이판'과 40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인연을 지켜온 선생님들의 노고 덕분에 오늘이 가능했다”며 사회자 진옥섭의 노고를 치하했다. 이어 “힘든 여름도 곧 지나가듯, 오늘의 공연이 여러분께 위로와 환희가 되었기를 바란다”고 말하며 '찔레꽃', ''아리랑' 등 노래를 불렀다.
이번 공연은 광복 80주년과 함께 일본 나고야에서 한국 전통예술을 실천해온 ‘놀이판’ 창립 40주년을 기념하는 자리였다. 한국문화가 전무했던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40년간 전통을 계승해온 ‘놀이판’의 역사와 예술은 그 자체로 소중한 문화유산이며, 이번에 한국 무대에서 연희를 펼친 것은 특별한 역사적 의미를 지닌다. 앞으로도 한일 간의 인연이 더욱 돈독히 이어져 아름다운 전통이 계승되기를 기대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