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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소리무당, 소리귀신, 채수정뎐

 

소리무당, 소리귀신, 채수정뎐

 

2025년 9월 27일 오후 7시, 파주 출판도시 김영사 2층 갤러리카페 ‘행복한마음’의 좁은 공간, 100여 명이 넘는 어린이와 엄마, 아빠가 다닥다닥 붙여진 의자를 빈자리 없이 가득 메웠다. 그 뒤에 서 있는 사람들도 많아, 키 작은 사람은 8폭 화조 병풍 하나 펼쳐진 앞쪽 평면 무대 위 공연자의 모습을 보려고 고개를 좌우상하로 열심히 움직이고 있었다. 이들이 내뿜는 환호와 박수 소리, 공연자를 따라 부르는 ‘아이고~ 어머니’ ‘나~무 나무 나무여~’ 떼창에, ‘얼씨구~, 좋다~, 잘한다~’ 추임새의 열기는 정말 판소리와 우리 민속예술 ‘진도 씻김굿’을 처음 접하는 사람들일까? 싶을 정도로 생동감은 넘쳐났고 기쁨 가득한 행복한 현장이었다.

 

<소리무당, 소리귀신, 채수정뎐>은 국악 장르를 주로 기획제작 하는 예술과 마음에서 국악을 처음 접하는 어린이와 사람들의 모임 ‘행복한마음’ 카페 회원 가족을 위해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이며 세계판소리협회 이사장인 채수정 명창을 초대하여 펼친 아름다운 봉사였다.

 

우리소리와 민속예술의 아름다움을 깨닫게 하고 한 번만 접하여도 익숙함이 밀려오는 우리 것의 자연스런 현상을 쉽고 재미있고 즐겁게 가르쳐주고 전달해 준 최고의 공연학습장 ‘채수정뎐’이었다. 전(傳)이란 ‘전하다, 펴다, 널리 퍼뜨리다.’의 뜻을 가지고 있다. ‘채수정뎐’은 목적도 취지도 이에 합당한 ‘전’이 무엇인지 확실하게 보여준 가슴 뛰는 공연이었다.

 

채수정은 세상사는 허무하고 인생은 마치 춘몽과 같으니 술로나 즐겨보자는 중국 시인 왕발(王勃)의 시에서 인용한 단가 ‘편시춘’으로 목을 풀고, 수궁가 중 토끼화상 대목, 적벽가 중 군사설움과 새타령을 어린이들이 이해하기 쉽게 내용을 설명하고 소리 중간 중간에 가사를 현대용어로 풀어 흥미를 유발했으며, 어떤 부분은 따라 부르게 하여 판소리를 그동안 우리가 접하지 않아서 그렇지 어렵지는 않다는 것을 가르쳐 주었다.

 

춘향가 어사상봉 대목은 ‘세계판소리협회’ 청소년 소리꾼 판소리 100일 독공 1,000만원 지원 사업 2기 장학생 ‘차혜지’의 소리로, 심청가 뺑덕어미 행실 대목은 한국예술종합학교 전통예술원 예술전문사 ‘김현주’의 소리로 객석의 열기를 더했다. 판소리의 고수로 출현한 이치현은 춘향전 사랑가 대목의 중중머리, 자진모리, 휘몰이, 북 반주가락을 판소리 없이 두들기며 우리 북소리의 현란한 아름다움을 보여주었다. 흥보가 박타는 대목은 채수정과 제자들이 떼창으로 박을 타는 모습을 입체적으로 표현하며 현실감을 더욱 북돋아 주었다.

 

 

이렇게 판소리 다섯 바탕 모두를 형식과 꾸밈을 내려놓은 채 판소리를 처음 접하는 객석의 관객들에게 감칠맛 나게 보여주며 흥미와 관심을 끌어냈고, 채수정은 ‘스승님의 침을 많이 먹는 사람이 성공한다.’라며 판소리꾼의 길이 결코 쉽지 않은 길이라는 것도 전달했다.

 

‘넋이로다, 넋이로다. 이 넋이 누 넋이여’ 채수정이 하얀 소복 차림에 양손에 지전을 들고 춤을 추며 진도 씻김굿 ‘넋올림 대목 손 굿’을 보여주었다. 손 굿은 병 퇴치 행위이다. 하얀 흰 천을 길게 늘려 양끝을 붙잡고 있는 황천길 위로 작은 배(船)를 손에 들고 둥실둥실 띄우면서 ‘나무여 나무나무여 아미타불 나무야’ 염불소리로 죽은 자의 왕생극락 길을 빌어주는 ‘길닦음’은 성스러움이 신선함으로 다가오면서 우리 민속예술이 멀리 떨어져 있는 것이 아니라 바로 우리 곁에 있는 생활이라는 것을 깨우쳐 주었다.

 

길지 않은 약 2시간 정도의 시간에 판소리 다섯 바탕과 진도 씻김굿의 색깔과 색채만을 책표지 모습으로 보여주었지만 국악명창이 제자들과 함께 표 나지도 않는 작은 무대를 찾아 어린이 중심의 젊은 가족들에게 우리소리와 민속예술의 아름다움과 소중함을 전달하였다는 것에 감탄하며 고마움을 전한다. 우리 것이지만 너무나 생소한 판소리와 진도씻김굿을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며 탐구하면서 즐거움에 빠져든 어린이와 젊은 가족들에게서 우리 전통문화의 희망의 길이 보이는 기쁨을 누리는 대단한 공연이었다. 우리 전통예술 예술인들과 일반인들이 격의 없이 편하게 만나 즐기며 알아가는 이런 무대가 수없이 끊임없이 이어지기를 소망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