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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은서의 우리음악유산답사] 비파(琵琶), 실크로드를 따라 온 보헤미안의 자유 영혼

 

비파(琵琶), 실크로드를 따라 온 보헤미안의 자유 영혼

 

우연히 만난 우드와 류트 그리고 비파의 기원


음악 활동을 하면서 점차 교우하는 예술가들이 늘어가는 것은 내 삶에 새로운 활력소가 되곤 한다. 재기발랄하고 자유로우며 창의적인 영혼들을 대하며 그들의 타고난 재능에 감탄하곤 한다. 정선에서 펼쳐진 ‘월드아르떼페스티벌’이 인연이 되어 알게 된 두 기타리스트의 악기 연주는 나의 호기심을 크게 자극하였다. 우드와 류트는 기타와 달리 같은 위치의 줄이 겹줄로 되어 있는 두 악기는 내려서 줄을 튕길 때와 올려 뜯을 때 서로 다른 음이 연주되어 풍성하고 다채로운 선율을 자아냈다.

 

우드와 류트의 연주 모습


비슷한 모양이지만 왼쪽의 악기가 아랍에서 기원한 우드이고 오른쪽의 악기는 유럽의 류트이다. 플라멩고를 배우기 위해 스페인에 유학까지 다녀온 연주자의 설명에 따르면, 본래 아랍의 악기인 우드가 십자군 전쟁 때 유럽에 전해졌는데, 이 과정에서 영어의 ‘더(the)’와 같은 의미로 쓰이는 프랑스어 관사 ‘르(le)’가 우드에 결합해 발음되면서 ‘류트’가 되었다는 흥미로운 속설(俗說)도 들을 수 있었다. 설명을 듣고 호기심이 더욱 발동하여 필자는 두루 자료를 찾아보았으나 두 악기의 연원과 관련해서는 13~14세기 스페인으로 들어온 아랍의 악기 Al-ud(나무라는 뜻)가 류트의 조상이 되었다는 간단한 설명이 전부였다.

 

필자가 이 악기에 큰 호기심을 보인 이유는, 내 눈에는 그 악기가 분명 비파(琵琶)로 보였기 때문이다.

 

우리의 비파와 유사하게 둥근 공명통과 가늘고 긴 목을 지닌 이런 유형의 악기는 기원전 1,700년 무렵 인류 문명의 발상지인 메소포타미아 비옥한 초승달 지대에서 기원한 것으로 보인다. 테라코타라는 점토판에 남겨진 이런 유형의 악기 그림이 바그다드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그러니 메소포타미아 지역에서 생겨난 이 현악기는 아랍을 거쳐 실크로드를 통해 동아시아로 전파되면서 비파가 되었고, 유럽으로 전파되어서는 류트가 된 것이다.


우리 악기 비파(琵琶)를 찾아 경주, 청주, 남이섬으로...

 

비파는 고대 한반도의 우리 조상들이 흔하게 사용하던 악기 가운데 하나였던 것으로 보인다. 그도 그럴 것이 《삼국사기(三國史記)》 악지(樂志)에는 신라(新羅)의 대표적 악기로서 현악기인 거문고(玄琴)·가야금(加耶琴)·비파(琵琶)를 삼현(三絃)이라 하였고, 관악기인 대금(大笒)·중금(中笒)·소금(小笒)을 삼죽(三竹)이라 기록할 정도였으니 말이다.

 

필자는 고대 비파의 흔적을 찾기 위해 경주국립박물관을 찾았다. 이곳에는 문무왕이 죽은 뒤 용(海龍)이 되어 나라를 지키고자 했던 뜻을 기리기 위해, 그의 아들 신문왕이 완공한 감은사지 삼층석탑에서 출토된 사리장엄구(舍利莊嚴具)가 전시되어 있다. 이 사각형 사리장엄구의 네 모서리에는 악기를 연주하는 주악상(奏樂像)이 정교하게 표현되어 있어, 통일신라의 음악 문화를 생생히 보여준다. 그들이 연주하는 악기 가운데에는 비파가 있는 것으로 보아서 그 유행도 짐작해 볼 수 있다.

 

경주국립박물관의 감은사지 삼층석탑 사리장엄구의 비파 연주 주악상

 

다음으로 비파의 흔적을 찾은 곳은 청주국립박물관이다. 이곳에는 백제의 음악 문화를 유추해 볼 수 있는 비암사(碑巖寺)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癸酉銘全氏阿彌陀佛碑像)이 전시되어 있다. 비암사는 백제 멸망한 뒤 13년이 지난 673년(계유년)에 천안 전씨등 백제 유민이 건립한 절이라고 한다. 이 비석에 조각된 주악상은 백제의 유민들이 그들의 전통에 근거하여 조각하였기에 백제의 유적으로 인정하고 있다. 비상의 좌측 측면의 4점의 주악상 중 우측 하단에 비파를 연주하는 인물상을 확인할 수 있다.

 

 

청주국립박물관의 계유명전씨아미타불비상의 주악상


삼국시대의 우리 악기는 일본으로 전파되었는데, 다행스럽게도 이 유물들이 오사카 도다이시(동대사)의 쇼쇼잉(정창원)에 보존되어 있다. 이 악기들은 대중에게 잘 공개하지 않고 있는데, 중국 출신으로 일본에 귀화하여 정창원 청평악부 음악감독으로 활동한 류홍장이 이 악기들을 복원하였으며, 현재는 남이섬에서 전시하고 있어 직접 확인할 수 있다. 전시된 악기들 가운데에는 비파도 포함되어 있다. 전시물 가운데 4현 비파는 페르시아 악기로, 5현 비파를 인도 악기로 소개하고 있다. 하지만, 악기에 새겨있는 자개 문양의 좌우대칭 구조를 미술사학적으로 살펴보았을 때 모두 삼국시대 한반도에서 전해준 것으로 추정한다. 비록, 그들이 페르시아와 인도의 악기로 소개한다고 해도 당대의 배가 그 험난한 파도와 항로를 개척해서 직접 페르시아, 인도 등과 교역을 통해 악기를 수입하기는 어려웠을 것이다.

 

남이섬 노래박물관에 전시 중인 4현 곡경비파(페르시아 악기)와 5현 직경비파(인도악기) :

비파 앞에 놓인 연주 도구 발목(撥木)의 모양이 독특하다.

 


사천왕상 건달파(乾達婆) 당신은 보헤미안

 

우린 보통 하는 일 없이 건들거리는 사람을 건달이라고 부른다. 부정적인 의미로 많이 쓰이지만 본디 그 의미는 유유자적하며 삶을 즐기는 자유로운 영혼을 부르는 단어였다. 음악과 풍류를 즐기는 낭인, 자유인, 보헤미안과 같은 존재를 말하는 뜻이다. 그런데, 이 건달이라는 단어가 불교의 상징 중 사천왕에서 비롯되었다는 점은 참으로 흥미롭다.

 

봉은사 사천왕상 건달파


우리나라의 사찰은 불교의 우주관을 반영하여 수미산을 통과하여 극락에 이르는 길을 상징하여 건축되어 있다고 한다. 일주문에서부터 시작하여 본당에 이르는 길 가운데에는 천왕문이 있는데 이 문 안에는 동서남북 네 방위를 지키는 사천왕상이 있다. 눈을 부릅뜬 무시무시한 역사(力士)의 모습을 한 사천왕은 탑, 용, 검, 비파 등의 상징물을 들고 있는데 이 중 비파를 들고 있는 사천왕의 이름이 범어로 간다르바(Gandharva) 즉, 건달파(乾達婆)이다. 수미산에서 천상의 음악을 주재하던 사천왕인 건달파가 비파를 연주하고 있다는 점은 고대음악에서 비파가 지녔던 높은 위상과 상징성을 짐작하게 한다.


비파(琵琶)의 다양한 변화

 

비파라는 악기의 명칭은 동한(東漢) 시대 유희(劉熙)가 악기의 명칭과 특징, 명칭의 어원을 해석해 놓은 기록인 『석명(釋名)·석악기(釋樂器)』에 따르면 손으로 내려치는 비(批)와 끌어올려 연주하는 파(杷)라는 연주 방법에 따라 명명(命名)한 것으로 설명한다. 이 비파(枇杷)가 우리가 알고 있는 비파(琵琶)이다.

 

이러한 비파류 악기 가운데에는 울림통이 둥근 형태도 존재했는데, 중국 고대 위(魏)나라에서 서진(西晉)으로 정권이 교체되던 혼란기, 정치로부터 거리를 두고 자유로운 사상과 예술 활동을 추구했던 죽림칠현(竹林七賢) 중 한 사람인 완함(阮咸)이 이 악기를 개량하였다 하여 완함이라 불린다. 이 둥근 울림통의 비파형 악기는 중국 남부지방 월(越)나라의 악기라는 뜻으로 ‘월금(越琴)’으로도 불렸다. 이런 형태의 악기는 우리의 고구려 안악 3호분 벽화나 백제금동대향로의 주악상(奏樂像)에도 나타난다.


고구려 안악 3호분 벽화와 백제금동대향로의 둥근 울림통의 비파류 악기


한무제(漢武帝)는 기원전 138년 장건(張騫)을 서역으로 파견하며 실크로드를 개통하였다. 그가 가져온 서역 지리·풍속·물자 정보는 무제에게 큰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 길을 따라 함께한 악기가 비파이다. 이 비파는 우드와 류트가 그러하듯이 목이 구부러진 형태로 곡경비파(曲頸琵琶)였다. 초기 비파에 대한 중국의 자료에는 주로 주아(周兒 : 현을 감는 부분)가 네 개인 것으로 보아 4현 비파였을 것으로 보인다. 이러한 유형의 비파는 삼국시대부터 고구려, 백제, 신라에 걸쳐 퍼져있었음을 다양한 사료를 통해 확인해 보았다.

 

4현비파 이외에도 5현비파도 존재했다. 5현 비파에 대한 가장 오랜 사료는 인도 자코타 박물관에 소장된 AD170년 경의 부조이다. 끝이 구부러지지 않은 5현의 직경비파(直頸琵琶)가 부조되어 있다. 중국의 가장 오랜 『통전(通典)』의 기록에는 548년(대통 13년)에 4현 비파, 5현 비파, 공후 등 서역 음악이 인기를 끌었다는 내용이다. 이를 보아 5현의 직경비파도 실크로드를 통해 인도에서 중국으로 전파됐을 것으로 추측이 가능하다. 중국 남북조 시대의 역사를 정리한 『북사(北史)』에는 고구려의 음악을 소개한 고려기(高麗伎)에 고구려의 비파를 5현으로 기록하고 있다. 역사 문화의 흐름 상, 고구려의 악기가 자연스럽게 백제와 신라로 전해졌을 것이므로 한반도에도 이 5현의 직경비파가 4현비파에 비해 더 유행했다고 볼 수 있다.

 

궁중음악의 당비파(唐琵琶)와 향비파(鄕琵琶)

 

거란이 세운 요나라에 군사적으로 열세에 처해있던 송나라는 고려와의 친교가 매우 중요했다. 고려의 이 시기는 국가 제례와 음악 체계를 정비해 예악사상을 바탕으로 한 유교적 왕도정치 구축을 꾀하던 때였다. 이러한 역학관계 속에서 예술에 탁월한 재능을 바탕으로 궁중 아악의 제도를 정비한 송의 황제 휘종은 고려 예종의 요청을 받아들여 1116년에는 송나라의 음악가와 고가의 편종, 편경, 축, 절고, 진고 등 제례용 궁중 아악기와 악보, 제례 의식서 등을 고려에 보내기에 이른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고려의 궁중음악에 중국의 의식 음악이 편입되었고 이를 우아한 음악이라는 뜻으로 아악(雅樂)이라 부르게 되었다. 이 시기 중국의 토속 음악도 함께 들어오는데 이를 당악(唐樂)이라 하였고, 그에 대한 상대적인 명칭으로 우리의 토속음악은 속악(俗樂) 또는 향악(鄕樂)이라 부르게 되면서 우리 궁중음악은 아악, 당악, 향악의 체계를 갖추게 된다. 현대에서도 대한민국을 고려(KOREA)라고 부르듯이 당대에 중국을 대표하는 이름은 당(唐)이었기 때문에 송에서 전해진 민속음악을 송악이 아니라 당악이라 한 것이다. 『고려사(高麗史)』 악지(樂誌)에 따르면 이 시기 송나라에서 비파가 들어 온 것으로 기록되어 있는데 이를 송비파라 부르지 않고 당비파(唐琵琶)라 부른 것도 같은 이유이다. 당시 한반도에서 유행하던 비파는 인도에서 유래한 것으로 추정되는 5현직경의 비파였는데 이 시기부터 당비파에 상대적인 이름으로 향비파(鄕琵琶)라 부르게 된 것이다. 이러한 전통은 조선 성종때 완성한 악서(樂書)인 『악학궤범(樂學軌範)』에도 그대로 이어졌다.

 

악학궤범의 당비파와 향비파


비파는 궁중음악뿐만 아니라 조선 후기 선비들이 즐기던 풍류방에서도 연주되었다. 그 모습을 김홍도가 그린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에서 확인할 수 있다. 주아(周兒)가 네 개에 끝이 구부러진 모습을 보아 4현곡경의 당비파(唐琵琶)임을 알 수 있다.

 

김홍도의 포의풍류도(布衣風流圖 출처 : 네이버 지식백과)


오랜 세월 사랑받던 비파(唐琵琶), 지금은 어디에...

 

이렇게 오랜 세월 우리 음악의 역사와 함께해 온 비파는 오늘날에는 좀처럼 보기 어렵다. 대한제국이 멸망한 뒤 일제강점기에 궁중아악대는 ‘이왕직아악부’로 개편되었고, 궁중음악의 맥을 잇기 위해 1920년 4월 아악부원 양성소 제1기생 9명을 처음으로 모집하였다. 당시 이들의 연주회 사진에서 비파의 모습을 확인할 수 있는 것으로 보아, 그 무렵까지는 비파가 실제로 연주되고 있었음을 짐작할 수 있다.

 

이왕직아악부원 1기생 연주 (사진 출처 : 손효동 박사학위 논문)


6·25 동란이 끝난 뒤, 우리 음악은 국립국악원을 중심으로 본격적인 재정비 과정을 거치게 된다. 이 과정에서 비파, 양금, 생황과 같은 악기들은 편성에서 빠지게 되었는데, 이는 우리 전통 음악의 중요한 표현 방식인 셈여림의 뚜렷한 대비나, 한 음을 길게 뻗을 때 음을 흔들며 표현하는 요성(搖聲)을 구현하기에 이러한 악기들이 상대적으로 불리했기 때문으로 보인다.

 

최근 국악과에서 비파를 전공한 연주자들이 늘고 있는 점은 그나마 다행스러운 일이다. 이들의 다양한 창작활동을 응원하며 기대해 본다. 본래 향비파는 술대(거문고의 연주에 쓰이는 도구)를 사용한 것으로 기록되어 있으나 최근 연주자들은 술대 외에도 인조손톱 등을 자유롭게 활용하고 있다. 황병기 선생이 작곡한 ‘침향무’의 비파 연주 감상을 끝으로 오늘의 이야기를 마치고자 한다.

 

침향무 비파 연주 (https://www.youtube.com/watch?v=kH8jN2Sdbdw)

 


<참고자료>
손효동, 「중국과 한국의 비파 전승과정과 연주법 비교 연구」, 한양대학교 박사학위, 2021.
최재석, 「정창원 소장품의 내용과 성격 : 정창원 소장품 여구 서설」, 『미술사학연구』 제199·200호, 한국미술사학회, 1993.
최재석, 『정창원 소장품과 통일신라』, 일지사, 1996.
박병오, 『한국악기론』, 도서출판 음의정원, 2021.
장사훈, 『한국음악사』, 세광음악출판사, 1986.
이용일 외, 『세계의 악기 백과사전』, 교학사, 2004.
이종구, 『음악인과 애호가를 위한 악기 백과』, ARTSOURCE, 1989.
이종구, 『아무도 말하지 않은 백제 그리고 음악』, 주류성, 20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