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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연] 대구시립국악단 제218회 정기연주회 ‘시와 함께하는 풍류마당’… 시와 국악의 만남으로 가을 밤 물들이다

한상일 예술감독 “시와 선율의 결합, 우리 시대의 새로운 국악사적 의미”
시와 국악의 만남, 가을밤을 수놓은 풍류의 무대
김승국의 ‘나그네’, 오승하의 음성으로 피어난 감성의 절정
박수관 명창이 이끈 대미의 향연, 국악의 진수를 노래하다

 

대구시립국악단 제218회 정기연주회 ‘시와 함께하는 풍류마당’… 시와 국악의 만남으로 가을 밤 물들이다

 

대구시립국악단(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한상일)이 선보인 제218회 정기연주회 '시와 함께하는 풍류마당’이 대구 시민들에게 시와 국악이 어우러진 깊은 감동을 선사했다. 이번 공연은 국악과 문학의 만남이라는 주제 아래, 시의 언어가 음악으로 다시 태어나며 가을의 정취를 한층 더 짙게 물들였다.

 

공연의 문은 박필구 작곡의 〈폭류〉로 열렸다. 트리거의 아쟁 연주자로 활약 중인 박필구의 작품으로, 제목 그대로 강렬한 에너지와 폭발적인 리듬감으로 객석을 압도했다. 국악단체 트리거와 대구시립국악단 단원들이 혼연일체가 되어 무대를 빛냈으며, 한상일 예술감독의 지휘 아래 국악 관현악의 생동감이 극대화되었다.

 

두 번째 무대에서는 안도현 시인의 시를 바탕으로 황해도 무형문화재 제3호 놀량·사거리 예능 보유자인 명창 한명순과 박단비가 함께한 무대가 이어졌다. 같은 시를 낭송으로 들을 때와 노래로 들을 때의 감동이 다르게 다가왔고, 시와 소리가 맞물려 만들어내는 여운이 관객들의 마음을 따뜻하게 적셨다.

 

이어서 소설가이자 문화평론가인 하응백 작가가 직접 쓴 시 〈이사부의 사랑 노래〉와 〈이사부 장군의 노래〉가 무대에 올랐다. 하응백 작가의 낭송에 이어 작곡가 조원행, 가수 김형동의 노래가 어우러지며, 사랑과 용맹의 정서를 국악 선율 속에 담아냈다. 한 편의 서사시 같은 무대였다.

 

뇌성마비를 이겨내고 발가락으로 시를 써온 이흥렬 시인의 작품 두 편이 국악으로 재탄생했다.
〈앉은뱅이꽃〉은 양성필 작곡으로 완성되었고, 대구시립소년소녀합창단의 고하준, 정효빈이 순수한 목소리로 노래했다. 이어진 〈무제〉에서는 피아니스트 이지민이 작곡하고 김형동이 노래하며 시의 따뜻한 희망을 음악으로 승화시켰다.

 

다음 무대에서는 김강주의 자작시와 노래 〈에루화 헌: 슬픈 눈물 꽃 드리오리다〉, 그리고 이상화 시인의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가 낭송과 노래로 펼쳐졌다.
낭송가 양은주, 윤도현의 목소리와 함께 전해진 무대는 애절함과 희망이 교차하는 순간을 만들어냈다. 특히 ‘빼앗긴 들에도 봄은 오는가’는 조국의 독립에 대한 열망을 국악의 정서로 표현해 관객들로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았다.

 

다음은 영화 〈한네의 승천〉의 주제곡으로 잘 알려진 〈한네의 이별〉과 김승국 작가의 시 〈나그네〉로 장식됐다. 〈나그네〉는 김승국 작가가 직접 낭송해 더욱 깊은 감동을 전했다.

 

시인인 동시에 전통문화 연구자이자 행정가인 김승국 시인은 이번 무대에서 시적 감성과 국악적 정서를 절묘하게 어우러지게 하며 관객의 큰 호응을 얻었다. 두 작품 모두 국가무형유산 경기민요 전수자이자 최근 방송과 무대에서 활발히 활동 중인 오승하의 맑고 깊은 음성으로 재해석되어, 가을밤의 여운을 오래도록 남겼다.

 

마지막 무대는 김동원 시인의 〈상사가(상주모심기)〉와 〈공한가(치이야 칭칭나네)〉였다. 낭송에는 정지홍, 조희숙, 배만식이 참여했으며, 소리에는 박수관 명창을 비롯해 선미숙, 박선옥, 고미영, 강민정, 허지영, 남혜윤, 정금옥, 박윤기 등이 함께해 국악의 진수를 선보였다.

 

특히 박수관 명창은 동부민요의 명맥을 이어온 대표 소리꾼이다. 이날 무대에서 박수관 명창의 구성진 소리와 함께한 합창은 관객의 뜨거운 박수를 받으며 대구의 가을밤을 국악의 향기로 가득 채웠다.

 

이번 공연을 총괄 기획한 한상일 대구시립국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는 “시와 국악의 결합은 단순한 협업을 넘어, 언어의 생명력과 선율의 감성을 함께 전하는 작업이었다”고 밝혔다. 그는 “시는 정겨움과 강렬함, 내면적 정서가 응축된 언어예술이다. 그 시의 생명력을 선율에 얹어 의미를 더욱 강렬하게 느끼게 하고 싶었다”며 기획의 의도를 설명했다.

 

한상일 대구시립국악단 예술감독 겸 상임지휘자

 

한 감독은 특히 뇌성마비 1급 장애를 지닌 ‘발가락 시인’ 이흥렬의 작품 〈앉은뱅이꽃〉과 〈무제〉를 언급하며 “몸이 불편한 상황에서도 희망을 향한 시인의 의지와 감정이 국악 선율을 통해 더 깊이 전달되길 바랐다”고 전했다.

 

또한 그는 “전통 민요는 작가나 작사가가 명확히 기록되지 않은 채 전승되어 왔다”며 “이제는 이 시대의 시어를 가사로 삼아 함께 공유하고 전승할 수 있는 민요로 발전시켜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를 위해 서도민요와 동부권 민요에 시인의 언어를 얹어 새로운 형식의 노래로 재창조한 이번 무대를 “국악사적으로도 새로운 변화를 시도한 의미 있는 시도”라고 평가했다.

 

마지막으로 한상일 감독은 대구시립국악단의 향후 방향에 대해 “전통의 어법을 현대 감각으로 접목해, 고인 물이 아닌 흐르는 물처럼 늘 생기를 불어넣는 단체가 되고 싶다”며 “대구 시민과 함께 호흡하며 창의적인 국악 무대를 지속적으로 선보이겠다”고 포부를 밝혔다.

 

그는 인터뷰를 마치며 “국악타임즈가 국악인들의 현장을 따뜻한 시선으로 조명해주는 언론이라 늘 감사하게 생각한다”며 “앞으로도 국악계의 건강한 발전을 위해 함께 나아가길 바란다”고 전했다.

 

이날 공연은 KBS 아나운서 이동영의 진행으로 이어졌으며, “우리말과 선율의 아름다움이 가을 밤에 천천히 스며들기를 바란다”는 인사말처럼 시와 국악의 조화가 어우러진 풍류의 밤이었다. 대구시립국악단은 이번 공연을 통해 “시와 음악은 떼려야 뗄 수 없는 예술의 두 축”임을 다시금 일깨우며, 문학과 국악이 함께 만드는 예술적 울림의 가능성을 보여주었다.